요즘 미국은 정신적으로 내전을 방불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조상들이 흑인들을 잡아와서 노예로 부려먹던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일 것이다.

지난 12월에 미국에 갔을 때 애틀랜타 시내에 있는 마틴 루터 킹 목사를 기념하는 센터를 방문했다. 역시 관광객의 대부분은 흑인이었고 백인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구경을 하면서 그가 암살 당하지 않았다면 그의 이름으로 거리가 되고 그의 생일이 국경일이 되는 영웅적, 초인적 이미지가 만들어 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마도 아닐 것이다.

급진적 흑인 운동을 추구한 말콤 엑스도 암살이 되었다. 그런데 그는 왜 킹 목사처럼 기려지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말콤 엑스가 감옥에서 회교도가 된 후 출옥한 다음에 흑인들에게 한 설교를 들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의 형제자매들이여,노예주인인 백인의 기독교는 이 황야와 같은 북아메리카에 있는 우리 흑인들에게 우리가 죽으면 날개가 돋아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특별히 마련해 놓은 천국이란 곳으로 날아가게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백인의 기독교라는 종교가 우리들 흑인들을 세뇌하기 위해 사용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였고’, ‘포옹했었고’, ‘믿었으며’, ‘실행 했습니다’ 그러나 백인들은 우리의 눈을 하늘나라만 찾게 고정시킨 동안 바로 ‘이 땅에서’ 그들의 천국을 즐기고 있습니다.”

킹은 미국이라는 체제 안에서 수용할 만한 한계 내에서 민권운동을 했고 말콤은 체제 밖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국 사회를 지배하는 백인들로서는 말콤의 죽음은 죽어 없어져 다행스러운 일이었고 킹 목사의 죽음은 잘 활용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더욱이 절묘한 것은 킹 목사도 말콤처럼 점점 급진적으로 변해갈 무렵에 암살되었다. 딱 알 맞는 시기에 암살되었기에 킹 목사는 영원히 영웅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그 점에 대하여 슬로보예 지젝은 ‘죽은 신을 위하여’ 라는 책에서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지젝에 의하면 유다의 배반은 그리스도가 사명-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 인류를 구원한다는-을 다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했다고 했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는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배반할 것이다."라고 언질을 준 다음에 제자들이 두리번거리며 ‘누가 배반할 것이냐?’는 질문에 예수는 애매하게 대답한다. 유다가 '랍비여, 저입니까?'하니까 예수는 '네가 말하였도다.'라고 대답한다. 지젝은 그것을 부인된 명령(disavowed injunction)이라 했다. 유다가 배반할 사람으로 호명되지만 예수가 직접 호명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호명의 책임은 유다에게 전가된다. 즉 배반은 유다가 자진해서 한 것이고 예수는 그것을 인정한 것이다.

어느 종교에서도 기독교의 신처럼 충성을 요구하면서 한 편으로 자신을 배반할 것을 요구하는 신은 없다. 그래서 도착적인 것이다.'도착'이란 영어로 'perverse'로 국어사전에는 '상하가 거꾸로 되어 어긋남'이란 의미다. 이것은 예수가 배반을 명령함으로써 최고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음을 나타낸다.즉 영혼의 포기까지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유다에게 자기를 배반하라고 명령함으로서 목숨 뿐 아니라 제 2의생, 즉 사후의 명예까지 버리는 최고의 희생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킹 목사의 죽음은 헤겔이 지어낸 율리우스 카이사르(시저)의 논리를 따른다. 시저는 암살 이후에 ‘카이사르’라는 그의 이름 자체가 황제를 칭하는 단어가 되었다. 즉 개인의 죽음으로부터 보편적 개념이 출현한 것이다. 브루투스는 시정의 독재로부터 로마 공화국을 구하겠다는 의지로 시저를 배반했으나 시저는 '카이사르(황제)'라는 보편적 호칭으로 귀환했다. 그렇듯이 킹의 이름은 온건한 민권운동가라는 보편적 의미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안 된다는 것을 지금 미국 사회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