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도 박사(미주감리교신학대학교 조직신학)

한강의 기적과 순복음교회의 성장은 물질의 축복, 건강의 축복을 “복음”으로 분장시켰고, 긍정적 사유는 성장과 성공을 “복음”의 핵심이라고 소개했다. 교회성장학파들은 나름대로 단단한 성경적 근거와 선교지의 실례를 들어 이를 뒷받침해주었다. 그러나 이제 한국교회는 성장을 멈추었고, 교인 수가 감소하고 있다. 교회성장을 꿈꾸고, 성장 이론을 교단 필수과목으로 가르치는데, 성장 패러다임과 맞지 않는 이상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성공을 이룬 교회와 교인들, 그리고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교회들은 “지금”을 지키기 급하다. 소규모의 교회와 교인들 역시 번영을 꿈꾸고, 성공한 교회를 닮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녹치 않다. 아무리 애써도 성장은 멈추었고, 교인 수와 헌금액은 급격하게 줄고 있다. 남은 교인들이 힘겹게 내는 헌금은 목회자들의 사례비와 은행 빚과 사채 이자를 갚기에 역부족이다.

목회자는 여전히 특별한 대접을 받아야 마땅하며, 하나님의 종이라는 겸비의 고백은 특권의식으로 대치되고 있다. 마치 학원의 인기강사들처럼 설교 잘하는 목사들은 팬들을 몰고 다닌다. 말씀 선포에 목숨을 거는데, 말씀대로 사는 일에 목숨 걸고 있는지 궁금하다. 더욱 심각한 이상현상은 신학교에 목회 지망생이 급격히 줄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학교는 미달현상으로 존폐에 위협을 느끼고,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1) 그 뿌리는?

“한국교회는 기복신앙을 믿는다.”, “물질적 축복과 개인중심의 이기적 신앙을 갖고 있다.”, “대사회적 책임과 실천이 약하다.” 등등 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근래에 들어, 교인 수가 감소하는 원인에 대한 진단도 이어졌다. 가장 먼저 손꼽는 것이 인구감소, 지나친 교회 건축과 목회자의 추문과 교회의 내분, 가톨릭의 성장, 그리고 주5일 근무와 경제적 풍요 등이다. 하지만 그 뿌리에 대한 신학적 진단이나 분석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교인 감소의 원인을 교회 밖(세상 탓)으로 돌리거나, 교회 안에 일어나는 경제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에서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필자의 눈에는 다른 뿌리가 보인다. 곧 개신교 교리의 기반인 “이신칭의(以信稱義)”와 “대속(代贖)” 교리에 문제의 근원이 있지 않나 싶다. 500년 전, 종교개혁가들이 “오직 은총!”, “오직 성서!”, “오직 믿음!”을 부르짖었을 때, 이는 교황과 교권의 (구원에 관한) 독점적 횡포에 맞서기 위한 교리였다. 구원은 교회나 교황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희생과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으로,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라는 것이다. 면죄부나 인간적 공로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은총으로 주어진다는 것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심으로써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저 믿기만 하면 된다!”고 단순화되었다. ‘시대적 상황’과 ‘교회 권력과의 투쟁’ 속에서 탄생/강화된 교리가 시공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화됨으로써 본래의 뜻이 변질된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강조가 ‘인간의 믿음’으로 초점이 옮겨졌다. ‘면죄부를 사기보다는 가난한 자를 위해 재산을 팔라!’(95개 조항)고 강조했던 “믿음의 실천”이 ‘그저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이기적이고 편의적인 신앙’으로 변질되었다. 좀 더 뿌리를 들여다보면, 가톨릭교회와의 투쟁 속에서 빚어진 개신교 교리는 이미 어느 한 쪽으로 쏠릴 수 있는 약점을 안고 있다. 그러므로 “오직 은총”에 대한 강조를 통해 “이신칭의”의 균형을 잡아주었어야 했다.

마찬가지로 대속교리는 영지주의나 유대 희생제의의 옷을 입고 있었기에, “예수의 피 흘리심”이 무엇이 특별하고, 이들과 어떻게 다른 것인지에 대한 강조가 있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영지주의나 유대 희생제의의 신화를 되풀이하는 데 그칠 수 있다. “나는 피 흘리지 않고, 속죄양이 낭떠러지에 떨어져 나대신 죽어 내 죄를 사했다!”에 머물게 된다. 불트만의 말처럼 비신화화가 필요하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해석과 적용을 계속 했었어야 했다. 만인사제설과 더불어 모든 믿는 자들이 (자신에게 맡겨진)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대속의 삶에 대한 강조가 있었어야 했다. 개신교회는 이 점을 게을리 했다.

“문자적”으로 이신칭의와 대속교리를 이해할 때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개인중심적이며, 저 세상적 신앙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고, 확고한 성서적 기반과 간단명료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오늘과 같은 현상을 피할 수 없다. 유사한 현상이 이미 중국 교회와 멕시코 개신교회에서 나타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이 두 나라의 개신교 전파가 미국에 있는 보수적 교단의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중국에서는 조선족이 그 다리 역할을 했고, 멕시코에서는 출감자와 빈민층의 사역자들이 그 다리를 놓았다. 당장 먹고 살아야 했고, 살아남아야 했으며, 더욱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절박한 환경이 “개인중심적”, “저 세상적 신앙”을 강화시켰다. 이제 경제적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자, 하나님이 주시는 물질의 축복을 갈구하고, 경제적 풍요는 번영신학을 선호하게 되었다. 교회는 넘치기 시작했고, 교회 건축이 최우선 과제가 되고 있다. 목회자들은 학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해외 나들이가 시작되었다. 한국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다. 곧 교회는 성장을 멈추고, 분열이 반복되고, 교회 사이의 격차가 벌어지며, 대사회적 공신력을 잃어가게 될 것이다. 멀지 않은 미래의 일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예수의 피로 구원받는다.”, “예수 믿고 죽으면 천국 간다.” 이 단순화된 교리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왜 문제인가? 누가 이 교리에 대해 물으면,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스스로도 잘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설명하는 데 버거워한다. 누가 비판하면 화부터 낸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떻게 적용 실천해야 하는지는 난감하다. 입으로 외우기는 하는데, 그 뜻을 모르고, 더욱이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가르쳐주지도 않고, 알지도 못한다. 영어에서는 이것을 “클리셰(cliche)”라고 부른다. 상투적인 진부한 말이나 의례적으로 사용하는 문구를 가리키는데, 이는 죽은 말을 의미한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이신칭의 교리는 다음과 같은 성서적(로마서) 근거를 가지고 있다. 첫째, 나의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이) 구원하신다. 둘째,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 흘리심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나는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 구원을 얻는다(롬 5:9). 셋째, 이제는 한 사람(하나님의 아들)의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서 모든 사람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아서 생명을 얻게 되었다(롬 5:18). (하나님의) 은혜가 의를 통하여 사람을 지배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한다(롬 5:21).

이신칭의 교리가 만들어진 위의 모든 문장의 주어, 곧 주체는 바로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런데 불트만의 이해를 빌리면, 이는 “신화”의 옷을 입은 사람의 언어이다. 사람의 말로 하나님의 행위와 의도를 표현하는 순간 그 말은 사람들 사이에 통용되는 뜻을 넘어서기 때문에 해석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이러한 신화적 표현을 문자적으로, 동음동의어(同音同意語: univocal)로 이해하면, 신과 인간 사이의 질서와 존재론적 차이는 사라져버린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 교리를 문자적으로 믿게 되면, 하나님을 사람의 자리로 끌어내리고 만다. 그렇지 않으면 어린이들을 위한 만화처럼 ‘교리를 그림으로 그린’, “환상”을 실체라고 여기게 된다. 예수께서 정말 피를 뚝뚝 흘리시며 내 앞에 서서 “너를 위해 죽었노라!”는 개인적 체험으로 강화/제한될 뿐이다. 당사자에게는 가장 확실하지만, 개인의 믿음을 강화시켜주는, 한 차례의 특별한 경험에 머물고 만다.

이신칭의 교리의 강조점은 “교회나 교권이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여전히 죄 아래 살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은혜로 구원을 베푸셨다. 이 은혜를 깨닫고 받아들이는 자는 이 은혜가 지배하는 삶을 지금 이 자리에서 매일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도원에서 뛰쳐나올 수 있었고, 교권에 대항하여 목숨을 걸었으며, 라틴어를 모르는 평신도들도 성서를 읽을 수 있도록 그들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했다.

예수가 나를 위해 대신 죽었고, 나를 위해 피를 흘리심으로 내가 구원받았다는 말을 문자 그대로 믿으면, “내가 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가만히 앉아서 죽을 날을 기다려야 한다. 내가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조차 인간적 교만이 된다. 문자주의적 확신이, 환상을 통한 개인적 체험이, 이신칭의와 대속 교리를 현실에서는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만들어버렸다. 교회와 교인들은 이 교리 안에 갇히고 말았다. 이 교리에 대해 재해석과 현실 적용 작업이 절실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 대속과 피 흘리심의 구원교리는 개인의 문제에 국한되거나, 죽음 이후의 문제로 미루어질 수밖에 없다. “나는 피 흘리지 않아도 된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아도 구원받고 부활 영생을 누릴 수 있다.”고 오도할 수 있다. 이런 공짜가 어디에 있는가?

문자적으로 이해된 이 교리들에 의하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주일성수”, “십일조 생활”, “전도(선교)와 봉사”에 머물게 된다. 그리고 그 보상으로 물질의 축복, 건강의 축복, 그리고 현실적 성공과 성장의 보상이 주어진다고 가르쳐왔다. 하지만 경제적 성장과 교회 성장이 멈춘 오늘,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도, 너무나 헌신적인 사람도, 예수님처럼 십자가도 지고, 굶기도 하고, 때로 병들기조차 한다. 삼박자 축복은 - 건강보험제도가 잘된 대한민국에서는 - 그 약효가 다 됐다.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을 선전하고 판매하는 데 관심을 가질 사람은 많지 않다. 교인의 감소와 교회의 영향력 상실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것을 팔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일 뿐이다. 사람들은 아프면 병원에 가지, 기도원에 가지 않는다. 병원에 와서 기도해주는 것은 부차적이고 심리적인 위로일 뿐, 의사가 고친다는 것을 다 안다. 죽을병이 걸리면 담임목사보다 명의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기도원은 마지막 순간에 한 번 찾아가보는 곳으로 그 역할이 줄었다. 교회가 싸구려 복음을 팔다가 스스로를 바겐세일 해야 하는 싸구려가 되었다.

교회는 지금 이 자리에서는 별로 필요 없는 물건을 팔거나,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는 물건을 파는 곳이 되었다. 아니면, 먼 훗날 한 번 써볼지 모르는 큰 보험을 들어놓는 것과 다름이 없다. ‘세상은 세상, 믿음은 믿음으로’ 살아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다. 이 땅에서 잘 사는 것이 마치 믿음의 열매인양, “착한 부자론”, “축복과 번영의 신학”이 뒷받침해 주기 때문이다. 이제 그 약발이 다 돼서, 믿음이 아무리 좋아도 사업이 망하고, 직장에서 조기 은퇴당하고, 교인은 떠나고 교회는 파산을 경험한다. 현실을 염두에 두고 만든 교리와 성경 해석은 현실이 변하면서 그 설득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조금 더 신학적인 문제를 언급하자면, 서로 다 아는 것처럼 열을 내지만, “구원”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예수의 피로 구원받았다!”고 하지만, 그의 피를 마셔야 한다고 했는데, 성례전에서 마신 포도즙이 고작이다. 그 말의 의미를 모르며, 그 의미를 전달하지도 못한다. 주께서 피를 흘리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지배하시도록,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롬 6장), 하나님이 가르치신 대로 행하고, 말씀하신 대로 전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께 자신을 모두 위임한 삶”(요 8장)을 유비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특히 그렇게 사신 이유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양들을 위해 희생하셨기에(요 10장), “대신 죽으심”[대속: redemption]이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다. 그렇게 살 때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두려움과 불안, 현실적인 모든 위협으로부터 해방되어 진리가 주는 참 자유를 체험하고 산다는 말을 요약해놓은 하나의 공식이다.

세례 받을 때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믿는 자들은 그와 함께 다시 살아 하나님 안에서 평화를 누리고 산다. 현재형이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입에 붙은 말은, 믿는 자들 모두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였다. 우리 역시 자기를 포기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위임하고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며,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과 인생을 아낌없이 바치고 살아야 한다(요 10장). 이것이 세상을 버림으로 영생을 얻는 진리의 길이다. 십자가와 부활은 같이 간다. 이 부활의 삶은 장차 얻을 영광과 영원한 생명을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 누리고 사는 현재형이다. 이것을 누리는 것이 진리이며, 이 진리가 제자들의 삶과 가치관을 바꾸었다. 그래서 새로운 삶을 제대로 한 번 살게 된 것이다. 부활신앙은 오늘 이 자리에서부터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삶에 대한 고백이며, 실천이다.

2) 대안이 있는가?

“성장”이라는 패러다임을 팔 때, 교회에는 인적, 물적 자원이 넘쳐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멋진 찬양팀과 밴드가 연주하는 찬양을 열정적으로 따라 부르고, 눈물과 감동을 주는 목회자의 설교 속에서 한 주간의 위로를 받았다. 때로 충격도 받고, 새로운 삶을 결단해 보지만, 그러나 구원은 여전히 죽음 그 이후의 문제였다. 감리교회에서 “성화”를 많이 강조하지만 대사회적 책임이나 연대성에 대한 이론적 강조에 그쳤다. ‘200년이 지난 오늘 우리 한국 땅에서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웨슬리처럼 그 시대상에 맞는 구체적인 매뉴얼을 제시하지 못했다. 대신 성화교리는 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 의로운 인간이 되는 정도로 제한되었다. 성령의 열매를 강조하기도 하고, 인격의 변화를 요구하기도 했다. 성령운동이 휩쓸고 갔고, 시시때때로 성령충만에 대한 요청이 이어졌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새 인간으로 거듭나고, 인격이 변화되고, 성령의 열매를 맺어 완전한 사랑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성화를 위한 실천적 요소와 전제인 “자기 포기”를 놓쳤다. 내려놓음이나 비움, 하나님께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투신하고, 죽기까지 순종하는 “의로운 행위”(롬 5:19)에 대해서는 요구하지 않았다. ‘비움’과 ‘버림’은 선교사나 첫 목회를 결단하는 이들에게나 필요한 덕목으로 축소되었다. 이 땅이 좋고, 현실이 좋기 때문이었다.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은 내 믿음으로 인해 주어지는 값진 은혜로 이해되었다. 해서 놓을 수 없었다. “하나님의 축복을 왜 내려놓아야 하는가?” 하고 반문한다. 이 비움과 내려놓음, 자기포기가 고난으로, 고통으로 느껴진다. 남을 위해 내 스스로가 이 고난을 택하면, 대속이다. 내려놓음을 통해,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자기 포기를 통해, 참된 순종이 시작된다. 이끄시는 대로 따라갈 수 있다. 왜냐하면, 자기 생각과 판단을 내려놓았고, 자신의 기호와 욕망을 비웠기 때문이다. 빈 영혼과 마음속에 하나님의 계획을 담고, 주시는 힘에 실려 가는 삶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삶이다.

3) 물질의 축복, 건강의 축복을 넘어서

‘버림’ 없이 ‘구원’이나 영생은 없다. 마가복음 10장(17-22절)에 한 부자 청년이 등장한다. 그는 예수에게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예수는 단순히 계명들을 지키라는 팁을 준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어려서부터 그 계명들을 다 지켰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에게는 영생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예수는 한 가지가 부족한데, 그것은 바로 버림이라고 하셨다. 부자 청년은 버림 대신에 영생을 포기하고 쓸쓸히 돌아갔다(막 10:17~31).

바울은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 곧 [죽기까지 행하시는] 순종으로 생명이 들어왔다.”(롬 5:18-19)고 말한다. “은혜가 의를 통하여 사람을 지배하여”,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다(롬 5:21). 그리스도 예수가 다시 오시는 날, 믿는 자들의 영과 육과 혼이 완전히 거룩해지도록 우리 안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일하고 계신다(살전 5:23-24). 하나님의 작업이다. 이를 위해 우리를 비우고, 버리고, 죽이는 것이 필요하다. 아니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의 계획을, 당신의 시간표에 따라, 당신의 권능으로 일하시도록 모두 맡기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고통이 따르고, 고난의 삶이 기다린다. 그러나 기다려야 하고, 맡겨야 하고, 참아야 한다.

이것을 굳이 교리적인 공식에 담아낸다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자!”로 요약 강조할 수 있다. 이신칭의와 대속교리는 초신자들을 위해서나, 전도용으로 사용하고,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자!”는 실천적 삶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 실천적 삶의 전제는 역시 ‘고난’이다. 현실에서 경험해야 하는 고통이다. 환난이며 연단이다. 환난을 겪으며, 고통을 겪으며, 이것이 하나님의 징벌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한 과정임을 가르쳐야 한다. 기꺼이 고난을 감수하며, 남을 위해 고통 받는 자리까지 내려가도록 이끌어야 한다.

그렇다면 비움이란, 내려놓음이란 무엇일까? 물질적으로 가난해지는 것은 이를 위한 전제이거나 하나의 방편일 뿐이다. 생각과 판단도 비워야 한다. 빈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계획과 시간표가 지배하시게 해야 한다. 사람이 세우는 목회 계획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교회성장을 위한 교인관리 역시 의미가 없다. 하나님이 친히 하시게 하면 된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가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고,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만 행하셨고,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일만 하셨다(요 8장). 완전히 하나를 이루신 것이다(요 10장). 자기 포기를 통해 하나를 이루셨고, 참 인간, 참 사람을 완성시키셨다. 하나님의 형상이 어떻게 온전히 회복 완성되는지를 친히 보여주셨다. 그대로 따르면 되고, 우리 안에서 그리 이루어 가시도록 저항하지만 않으면 된다. 이 저항 역시 비워야 한다. 비움의 실천은 고통이 따른다. 현실의 안정을 포기해야 하는 두려움과 주저함도 있다. 편하게 살던 사람이 불편을 받아들이는 것 역시 처음에는 고통스럽다. 비움 그 너머에, 고통 그 너머에 진리가 주는 평강이 있다면? 하나님과 동등본체이시나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죽기까지 순응하신 그리스도 예수의 부르심이 있다면? 가야 한다.

어떻게 이 이론을, 이 교리를 실천할 것인가? 먼저 가난해져야 한다. 현실의 축복에 대해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둘째, 늘 깨어 있어야 하고,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해야 한다. 셋째, 기도해야 한다. 묵상해야 한다. 들어야 한다. 그리하면,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안에서 우리에게 맡기신 양들을 위한 대속의 삶을 살아가도록 세밀히 이끄실 것이다. 넷째, 이 인도하심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우리 앞서, 우리를 위해 사신 주님께서 지금도 부활의 영으로 우리 안에, 우리 삶 한가운데 살아계신다. 그는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구체적인 모범을 보여주셨고,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도록 힘을 주시고, 방향을 잡아주신다. 그래서 나를 구하신다. 나는 이 총체적인 사건 속에서 이 살아계신 “영의 하나님, 영의 사람”을 나의 구세주라고 고백한다. 다섯째, 그 고백의 깊이는 내가 나의 양들을 위해 내 목숨을 내어놓을 때 더욱 피부에 와 닿는다. 나 하나를 위해 살 때보다 무한이 넓혀진 자유와 더욱 풍성해진 삶을 체험하게 되며, 결국, “참 하나님과 참 인간”의 자리를 체득할 수 있다(요 17장). 나를 버림으로써, 자기 포기를 통해 인간이 신의 자리에 이르는 큰 영광과 축복을 얻게 된다. 이 영광과 축복을 물질의 축복이나 건강의 축복 따위와 바꿀 수 없다. 오늘 우리 한국 교인들은 이 자유와 풍성함, 그리고 영광을 체험해야 한다. 이 축복을 지금 이 자리에서 받고 살아가면 좋겠다.

이 실천 공식을 가장 쉬운 말로 다시 표현하자면, 조금만 더 가난하게 살면 된다. 조금만 더 불편하게 살면 된다. 조금만 더 천천히 그저 따라가면 된다. 고통이 따르고 힘겨울 수 있다. 하지만 땀 흘린 뒤에 큰 보람과 건강이 찾아오듯이, 철저히 비움과 나눔으로 인한 고통(대속적 죽음)을 통해, 연단을 거쳐 참다운 품격에 이르게 된다. 곧 참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참 사람이 되어간다. 단순히 의롭다고 칭함만 받거나 칭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완전에 이르게 하고 거룩케 하게 하신다. 이것을 믿고 따라가는 것이 고난이요, 기쁨이다. 나의 ‘버림’과 ‘비움’의 공간에 오신 주의 은혜가 나를 의롭다고 인치시고, 나로 하여금 이웃을 위해 기꺼이 고난의 십자가를 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이신칭의이며 대속의 삶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