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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진리와 신앙 고백서’(교리)가 교회헌법의 근원적 전제세상의 법적 권세가 진리와 계시를 체포하고 십자가에 죽여
황규학  |  hpastor@ms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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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07월 12일 (수) 00:00:00 [조회수 :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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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는 종교개혁시대, 17세기는 교파적 정통을 주장하던 시대

   

서구 기독교의 16세기가 종교개혁의 시대라면, 17세기는 종교개혁의 결과 나타난 교파들이 상호 배타적인 입장에서 교파적 정통을 주장하던 시대이다. 그런 흐름 속에 긴 세월동안 갈등과 전쟁을 겪어 오면서, 서구 기독교 세계는 계몽주의 시대로 가고 있었다. 꿈에서 깨어났다고(계몽(啓蒙)) 생각한 서구의 인간들은 자신의 이성(理性)을 따라 살려고 했다. 계몽주의 이전에는 성경과 교회가 절대권위를 가졌다면, 이제는 인간의 이성이 절대 권위를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정통주의 시대는 근원적인 진리의 판단과 해석보다는 교회법 개별 조항이 보다 큰 위력을 발휘하던 시대

갈등과 분쟁의 정통주의 시대에 교회의 많은 문제들은 전통적인 교회의 틀 안에서 해결되기가 어려웠다. 성경적 판단이나 교리적 해석이나 신앙적 권면의 범위 안에서는 해결이 불가능했다는 말이다. 교회에서 당회를 할 때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나 삶”에 나타난 “보다 더 근원적인 진리의 판단과 해석”보다는 교회법 몇 조 몇 항에 나타난 법적인 문장이 더 큰 위력을 나타내기도 했다.

파생적 진리가 근원적 진리를 심판

때로는 신앙과는 무관한 듯이 보이는 세상법이 교회의 문제들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그야말로 세속적인 상황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 시대의 인간들은 인간의 법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심판할 가능성을 나타내기 시작한 셈이다. 파생적 진리가 근원적 진리를 심판하기 시작한 것이다.

부패와 타락으로 자정 능력을 잃어버린 교회들이 그런 법적 절차를 거쳐서라도 다시 바람직하게 회복된다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하면서 받아들일 만하다. 현재 한국 개신교의 상황에서는 그런 생각도 할 만하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그런데 기독교인인 우리는 어려운 현실에만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이런 점을 생각해야 한다.

세상의 법적 권세가 진리와 계시를 체포하고 십자가에 죽여

진리와 계시의 근원이요 그 자체이신 성자 하나님은 “신성모독죄”라는 유대인들의 종교법적 판단과 로마인들의 정치적 법적 판결에 의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셨다. 세상의 법적 권세가 ‘진리와 계시’를 체포하고 재판해서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것이다. 그리고 그 법적 판결의 최종 책임자인 빌라도는 사도 신경을 통하여 이 세상 끝날까지 이후에도 영원토록 인류 최악의 범죄자로 남게 될 것이다.

노회와 총회의 해석과 판단은 세상의 법적판단이 아니라 근원적 진리를 인식하는 신앙적 자세가 필요

하나님 앞에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이 세상 법정에 서야 하는 일들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오늘날의 한국 개신교의 교회들이다. 세상의 법정까지 이미 진행된 문제들이라면 어쩔 수 없이 세상적 법적 방식으로 판단하고 해석하더라도, 교회와 노회와 총회의 해석과 판단은 그런 방식이 아니라야 한다.

세상적 법적 판단 이전에, 하나님 앞에 바로 서려는 근원적 진리를 의식하는 신앙적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전하신 그 사도적 복음 진리에 비추어서 판단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런 의지와 판단이 전제되고 나서 법적인 해석과 판단이 제시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성경적 진리와 신앙 고백서’(교리)가 교회헌법의 근원적 전제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에서 출판한 ‘헌법’의 내용을 보면, “제1편 교리, 제2편, 정치, 제3편 권징, 제4편 예배와 의식, 참고사항, 부록”의 순서로 되어 있다. 정치나 권징 이전에 가장 먼저 “교리”가 나와 있다. 그리고 제 1편 ‘교리’에는 "사도신경...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서"의 내용이 들어 있다. ‘성경적 진리와 신앙 고백서’(교리)가 교회헌법의 근원적 전제라는 것으로 이해된다.

오늘날 치리회 재판은 진리와 신앙보다는 세상법적 해석을 앞세우려고 해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그 정반대의 현실을 보면서 고통스러워 할 때가 있는 것이다. 진리와 신앙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채로, 곧바로 법적 해석을 앞세우려고 하는 것이다. 바로 이 역전(逆轉)된 순서를 본래대로 되돌려서, 성경적 진리와 신앙을 근원적인 위치에 자리잡게 하려는 의지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회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을 것이다.

* 칼럼 필자 강희창 목사는 서울대와 장신대학원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신학박사를 받고 현재는 서초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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