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억울합니다. 왜 나만 갖고 비난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날 만든 이들이 맡긴 사명은 단 하나! 자질과 자격을 갖춘 총장 후보자를 공식 추천하라는 것뿐입니다. 일반적 양적 기준은 3배수입니다. 그러니까 3명만 추려서 올리면 내 소임은 다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들 나에게 욕을 합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욕을 먹어야 합니까? 그 욕의 실체는 나의 어떤 행위입니까? 혹시 당신들이 원하는 후보를 떨어트린 사적 앙갚음입니까?

나는 단 하나도 내 임의대로 행한 것이 없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든 일의 절차와 과정은 규칙과 시행세칙의 형태로 사전적(a prior)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심지어 매 단계마다 나를 구성하고 있는 각 위원들의 합의를 거쳐야 했습니다. 자세한 회의록은 나의 발자취가 얼마나 투명한지 보여주는 증거물입니다.

나는 그저 후보자만 추천하고 나면 사라질 불쌍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왜 나에게 돌을 던지냐 이 말입니다. 나는 억울합니다.

솔직히 당신들의 비난이 꼭 이해가 안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총장후보자를 추천하는 일은 영예스럽고 그만한 권위가 전제된 드문 소명입니다. 누가 최종적으로 선출되든 후보자 한 명, 한 명은 자격성에 있어서 만큼은 상호 등가적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나 또한 부끄럽지 않은 공명정대한 기준과 엄정한 집행으로 과정의 권위를 유지해야 할 부수적인 사명이 있습니다. 누구 한 사람, 후보 될 자격이 현저히 떨어진다면 걸러내야 하는 막중한 소임이 바로 나의 존재가치니까요.

오히려 그래서 나의 기준은 남들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지도, 일반상식을 벗어나지도 않습니다. 말 그대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윤리적 정서와 공감대로 충분합니다. 그것이 내가 지켜야 하는 권위와 정당성의 근거입니다.

그런데 그만 바로 그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적절치 않은 후보신청자를 ‘사전에’ 걸러내지 못한 것입니다. 작년 감신 학내사태의 최종 책임자와 학사행정 경험이 전무한 신청자를 그들의 자존심을 세워주면서 후보자 신청이 적절치 않다는 점을 원만히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그만한 정치력과 원숙한 진행역량이 부재하였습니다.

일단 모른 척 공식심사라는 제도적 테두리에 넣기만 하면 나를 구성하는 위원들이 알아서 걸러내 줄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돌이켜 보니 이것은 일종의 직무유기이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비겁한 자세였습니다. 절차적 정당성을 지켰다는 증거만 확보해 두면 나의 모든 행위는 면책될 것으로 세칙을 확대 해석하였습니다.

돌이켜보니 나야말로 총장후보자를 추천할만한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하기사 이번이 두 번째에 불과하니 ‘한번 실수는 병가지 상사’라고 다들 나를 이해해주고 지지해줄 줄 알았습니다. 제가 나이브했던 걸까요? 세속 정치의 냉정함이 현실 교계정치에서는 다를 거라고 믿었나 봅니다.

그렇다고 내가 수렁에 빠지도록 나를 방기한 이사회에 책임을 돌리고 싶진 않습니다. 어차피 나는 곧 사라질 존재이고 임무를 제대로 완수하지 못했다고 판단한다면 새로운 나를 다시 만들어 주시면 되니까 나로선 이 일에 아무런 부담은 사실 없습니다.

다만 한가지 그저 상식적인 수준에서만 일이 진행이 되었더라면 적어도 내가 욕 먹을 일은 없었을 텐데 인간적인(?) 아쉬움이 남긴 합니다. 그러니 더 이상 나를 욕하지 말아주시고 새로운 내가 만들어 지도록 윗 분(?)들께 잘 말씀해주세요. 다음 번엔 정말 잘할 자신 있다구요!

2016. 06. 08

감리교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부회장 박근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