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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때문에 회당에서 쫓겨난 사람(2) (요한복음 9: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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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07월 09일 (일) 00:00:00 [조회수 : 2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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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통해 하나님의 일이 드러난다는 예수의 말을 듣는 순간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 '도대체 하나님의 일을 드러내는게 뭔데... 다른 방법으로 다른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통해서 할 수 있는 일을 왜 하필 나를....'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논리였으며 나를 조롱하는 말처럼 들렸다.


   
내가 눈먼 것이 나와 부모님의 죄 때문이 아니라는 진단에는 해방감에 흔쾌히 소리없는 환호성을 질렀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드러내시려는 것이다"라는 그 분의 말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당시 내 처지가 속에 있는 말을 대놓고 할 수 있는 것이 되지 못해 약간 불편한 마음으로 그 분의 말을 계속 경청했다.


그러나 보게된 지금은 그 말씀의 뜻을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청천벽력과 같은 선언이었다. 세상에 감히 누가 자신을 두고 "빛"이라 말할 수 있는가? 그가 진정 하나님에게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면 미친게 분명했다. 반면, 미친게 아니라면 그는 진정 하나님으로부터 온 분이 틀림없다. 미친 사람이 즉 바알세불의 제자가 눈을 뜨게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말씀 후 그 분은 땅에 침을 뺕어서 그것으로 진흙을 개어 내 눈에 발랐다.

내가 비록 평생 죄의식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구원을 얻기 위해 죄를 씻기 위한 노력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선에서 율법을 지키려고 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살려고 했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서 벌어지는 일은 너무도 엄청난 일이었다. 누구도 감히 넘어선 적이 없는 선을 이 분은 가볍게 어기고(?) 계셨다. 목숨보다 소중한 안식일 법을 무시하고 나를 고치기 위한 치료행위를 하고 계신 것이다. 속으로 '이러면 큰일나는데...' 염려하면서도 뿌리칠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정성껏 진흙을 바른 그 분이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명령하였다.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명령받은 군인처럼 아무 이의제기를 하지 못하고 나는 실로암을 향해 걸어갔다. 구경꾼들이 나를 따랐다. 1km도 안되는 실로암 못까지 걸어가면서 나는 상당히 힘겨운 내면의 싸움을 해야만 했다.


'정말 낫는 것일까? 다른 이들처럼 간절히 고쳐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고, 낫는다는 믿음도 없는데... 그 분을 향한 나의 믿음이 확인되지 않았는데 그 분이 스스로 나를 치유해 주시다니..'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서 상대가 원하지 않았는데 행한 유일한 치유행위였다고 한다.


실로암 못까지 걸어가는 길은 짧았지만 지금까지 어느 걸어온 인생길보다 길게 느껴졌다. 그분에 이끌려 걸었던 걸음걸이가 밑져야 본전이라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변해가며 혼란스러워졌다.


'괜히 우스겟꺼리나 되지 않을까'

'아니야, 평생 그렇게 살아왔는데,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은들 조롱당하는게 뭐 대수겠어!'

'돌아 가버려! 안식일법도 어긴 자의 말을 믿는다는건 너도 율법을 어기는 것이야! 어리석은 짓이야!'

'아니야, 내가 어긴게 뭐가 있어! 내가 요구한 것도 아니고, 그가 하라고 해서 한 것인데, 그게 뭐가 잘못이야!'


두 마음이 옥신각신, 왔다갔다하며 마음을 흔들어 놓았지만 발은 익숙한 걸음으로 실로암을 향해 가고 있었다. 강렬한 햇볕에 말라버린 진흙이 눈을 압박해 오고 있음을 느꼈다.


복잡한 느낌과 달리 실로암은 너무도 가까웠다. 못 아래로 내려갔다. 더듬더듬... 내 생애 마지막 더듬거림이 될줄은 상상도 못한채 조심조심 내려갔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물을 떠 얼굴을 씻었다. 익숙한 세수였지만 생애 처음하는 세수였다. 세수할 때 감기는 눈은 세수를 마친 후에 떠져야한다. 그래서 눈이 뜨이지 않는 내게 실로암 못에서의 세수는 생애 첫 세수인 것이었다.


조심스럽게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처음으로 느끼는 감각이었다. 이런 감각이 내게도 있었다니... 눈이 부셨다. 이것 또한 처음 느끼는 감각이었다. 이상했다. 눈이 부시다니... 희미하게 뭔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벳새다에서 고침받은 눈먼 사람이 그랬던 것같이 내게도 나무같은 것들이 걸어다니는 것이 보였다. 그러면서 서서히 뚜렷히 모든 것이 보였다.


신생(新生)이란 이런 것일까? 보지 못하던 것을 보고, 느끼지 못하던 것을 느끼며, 포기했던 마음에 희망의 새싹이 돋는 것. 이것이 거듭남의 징조라고 믿게 되었다.


눈을 뜸과 동시에 그 분의 말씀이 생각났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의 눈을 고쳐주신 그 분은 '나의 빛'이셨다. 그래서 나처럼 어둠에 갇혀 마지못해 사는 인생들의 아픔을 아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높으신 양반들이 그렇게도 숭배하는 율법의 한계를 넘으신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기에 충분하셨다. <계속 designtimesp=2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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