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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셨다고?오류와 착오 내용상 모순으로 구성된 성경
박경은  |  0117669763@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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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05월 24일 (화) 21:48:30
최종편집 : 2016년 05월 26일 (목) 11:28:18 [조회수 : 16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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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와 착오로 구성된 성경- “없는 이야기”를 당당하게 추가한 마태복음

마태복음은 ‘없는 이야기(28절~32절)’를 추가하여 내용을 부풀렸고,

누가복음은 이야기 자체를 통째로 생략해 버렸으며, 요한복음은 축소시킨,

수상도하(水上渡河) 이야기(마14:22~33; 막6:45~52; 요6:15~21 대조비교)

 

   예수의 ‘물 위를 걸은, 수상도하 이야기’는 마가복음에만이 아니라 요한복음에도 나타납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이 복음서들 중에서 가장 먼저 기록되었다고 보는 학계의 시각에 따라 마태복음의 본문을 마가복음과 비교해 보면, 마가복음 본문과 요한복음 본문에서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 마태복음에 추가되어 있음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됩니다. 그것은 ‘베드로도 물 위를 걸었다’는 내용입니다(마14:28~32a).

   마가복음 저자는 베드로도 물 위를 걸었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었으면서 삭제한 것일까요? 마가복음이 생략한 내용을 마태복음이 원상복구한 것일까요? 요한복음은 마가복음 본문보다 짧게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요? 누가복음은 왜 이 놀라운 사건을 통째로 생략한 것일까요?

   이와 같은 이적 이야기는 복음서 저자들이 ‘역사적 발생사실을 있었던 그대로’ 가감없이 보고하듯 기록한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임을 직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관련 역사를 전하기 위해 복음서를 쓴 것이 아니라 구원을 위한 말씀을 전하기 위해 복음서를 쓴 것이기 때문입니다(요1:1,14 참조).

   이에 대해서는 본문자체의 배경 및 상황적 착오, 혹은 시간적 오류 등에 대한 문학적 시각을 통해 ‘복음서 저자들의 종교문학적, 신앙적 창작’ 측면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서를 대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은 이적사건은 역사적으로 발생했던 사실을 있었던 그대로 기록해 놓은 것이 아님을 알고....

   대체 무슨 말씀을 전하려고 이렇게 기록한 것인지를 질문하고 그에 대해 답해야 합니다. 과연 마가복음은 무슨 말씀을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복음서 저자들은 왜 서로 다르게 쓴 것일까요?

 

   
 

   먼저 마가복음에 나타나는 논리적 오류, 혹은 상황적 착오를 몇 가지 지적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마가복음에 의하면 오천 명을 먹이신 식사이적 사건이 끝나자마자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셨습니다(6:45). 그렇다면 오천 명 식사이적 사건은 벳새다 맞은편 어느 곳에서 있었다는 뜻인데 지도를 보면 ‘디베랴’인 곳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면 문제가 생깁니다. 디베랴는 당시에 헤롯 안티파스가 다스리던 지역의 수도였습니다. 디베랴는 헤롯 안티파스가 로마의 티베리우스 황제를 기념하여 세운 갈릴리와 베레아의 수도였습니다. 여기에 유대인 남자들이 오천 명이나 모였다면 정치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쿠데타를 의심받아 군대가 곧장 파견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오천 명을 먹이신 식사이적 사건은 ‘한적한 곳’이어야 합니다(6:32,35). 그러나 디베랴는 당시의 수도였기 때문에 맞지 않습니다.

   그러면 정치적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오천 명이 모여서 식사를 할만 했던 장소로 디베랴가 아닌 다른 장소를 찾아야 하는데 벳새다 맞은편의 어느 곳에 남자만 오천 명이 모일 수 있었다는 것인지, 그리고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소서(6:36)’라고 말했던 제자들의 말을 염두에 둘 때 과연 그런 곳이 어디이겠는지.... 벳새다 맞은편에 남자들이 오천 명이나 운집할 만한 곳이 없습니다.

   장소문제와 관련하여 또 다른 문제는 이적발생 장소가 매우 불명확하다는 점입니다. 마가복음에 따르면 예수께서 제자들을 보내실 때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셨습니다(6:45). 그런데 도착한 곳은 게네사렛 땅이었습니다(6:53). 벳새다는 갈릴리호수의 북동방향에 위치해 있고 게네사렛은 갈릴리호수의 서북방향 위치해 있습니다. 제자들이 어디서 출발했길래 이처럼 처음에 목적했던 곳이 아닌 다른 장소에 도착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도무지 모를 일입니다.

   요한복음에는 제자들이 배타고 가버나움으로 가려고 했다(6:17)고 되어 있습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호수 북단의 북서방향에 위치해 있는 장소입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제자들이 배타고 갈릴리호수를 건널 때 그들이 탄 배는 마가복음에서처럼 다른 곳에 도착하지 않고 가려고 했던 가버나움에 제대로 도착한 것으로 읽게 됩니다(6:21).

   하지만 요한복음에 나타나는 ‘장소’는 문제가 더 큽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오천 명 식사이적 사건은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에서 일어났습니다(6:1). 그러므로 이것은 마가복음과 정반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디베랴 건너편이면 벳새다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오천 명 식사이적 사건 이후에 제자들은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기 위해 배를 탔습니다. 그러나 지도를 보면 벳새다에서 가버나움으로 갈 때 배타고 가느니 차라리 걸어가는 것이 낫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제자들의 도착지가 마가복음과 똑같은 게네사렛입니다(14:34). 그런데 마가복음과는 달리 처음에 가고자 했던 곳이 어디였는지에 대해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다만 제자들을 보내실 때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다’고 되어 있고(14:22) 도착한 곳이 게네사렛이기 때문에 갈릴리호수를 가운데 두고 게네사렛 맞은편이 어디인지를 찾게 됩니다. 그러나 그럴 경우 마태복음에서는 문제가 더욱 더 커지게 됩니다. 게네사렛 맞은편은 데가볼리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본문에 묘사된 시간대도 매우 적절하지 않습니다. 마가복음에서 오천 명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수의 사람들이 식사를 했던 때는 ‘저물어가는 중’이었습니다(6:35). 오천 명이나 되는 엄청난 수가 식사를 마치자 그들을 다 보내신 예수께서는 기도하러 산으로 가셨습니다(6:46). 그리고 저물자 제자들이 탄 배는 바다 가운데 있게 되었고 예수께서는 산에서 언제 내려오셨는지 벌써 뭍에 계셨습니다(6:47).

   예수께서 뭍에 계신 때는 ‘저문 때’였습니다(6:47). 이 ‘저문 때’를 아무리 이르게 잡아도 해가 져서 캄캄할 때일 것이므로 밤7시경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배가 얼마나 컸길래 바다 가운데서 제자들이 노를 젓고 있던 배를 보고 계셨다는 것인지, 도무지 그림이 그려지지를 않습니다. 휘황찬란한 조명이 있었던 때도 아니고....

   시간대와 관련하여 더욱 더 난감한 것은 예수께서 바다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신 때가 ‘밤 사경’으로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6:48). 밤 사경은 새벽 3시~6시를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저문 때부터 밤 사경 때까지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고 계셨다가 새벽 3시부터 6시 사이에 바다를 걸으셨다는 뜻이 되는데 시간대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시간이 엉켜버리고 맙니다. 제자들이 배타고 바다를 건너가는 모습을 뭍에서 지켜보고 계시던 때는 ‘저문 때’였으므로 시간을 아무리 늦춰 잡아도 밤8시경을 넘길 수가 없습니다. 날이 저물었다고 할 때의 시간대는 완전히 캄캄해지기 전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에 밤8시 정도 이후로는 양보되기가 어렵습니다.

   예수께서는 밤 사경에 제자들에게 바닷물 위를 걸어서 가셨습니다(6:48). 하지만 마가복음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노 젓느라고 애를 쓰고 있는 제자들을 그대로 지나쳐가시려고 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6:48). 그것도 밤 사경에 그러셨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무려 6시간 내지 7시간 정도를 뭍에서 지켜보고 계셨다가 그것도 밤 사경에 제자들을 지나쳐 가시려 하셨다는 뜻이 됩니다(6:47~48). 도무지 시간대가 말이 되지를 않습니다. 아무리 문학적 표현이라고 해도 그렇지, 정도가 지나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물 위를 걸었다는 본문의 내용을 역사적 발생사실 있었던 그대로라고 우겨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누가복음은 이 내용을 통째로 삭제시켜 버렸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예수께서 배타고 먼저 가고 있는 제자들에게 물 위를 걸어서 가신 시간대에 대해 오류를 느끼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요6:16~19).

   요한복음에는 날이 저물었다는 등의 저녁을 암시하는 표현이 없으므로 오천 명 식사이적 사건은 마치 점심식사였던 것으로 생각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에 따라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간 때와의 시간적 간격이 상대적으로 길게 설정되어 나타날 뿐만이 아니라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서 그들에게 가셨을 때와 관련되어 나타나는 시간대의 문제가 마가복음이나 마태복음에서처럼 모순적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요한복음의 내용은 역사적 사실 있었던 그대로 기록한 것일까요?

 

   다음으로, 장소문제와 시간문제에 더하여 우리는 마태복음을 읽을 때 ‘물 위를 걸은 베드로’의 모습도 발견하게 됩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었던 사건이 역사적 사실 있었던 그대로라면 도대체 이 사건이 왜 다른 복음서들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요? 마태복음보다도 먼저 쓰인 마가복음에 없는 이 내용이 마태복음에 들어있고 요한복음에는 나타나지도 않을 뿐만이 아니라 누가복음에는?....

   누가복음에는 베드로가 물 위를 걸었다는 내용은 고사하고 예수께서 물 위를 걸으셨다는 이야기 자체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내용이 역사적 사실 있었던 그대로라면 이 놀라운 사실이 왜 누가복음에는 없는 것인지....

   이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물 위를 걸었을 뿐만이 아니라 베드로도 물 위를 걸었다는 마태복음의 내용은 마가복음에 없는 내용을 첨가하여 내용을 부풀렸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은 이런 내용을 통째로 빼버렸으며 요한복음은 간단하게 축소시켰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문제들을 제기하면서, 성경은 절대 오류가 없고 어떤 착오도 없으며 앞뒤가 일치하기 때문에 일점일획 틀림이 없을 뿐만이 아니라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으므로 본문의 글자 하나하나가 모두 다 성령의 감동에 의해 기록된 것이라는매우 좋은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에게 묻습니다.

   성서본문의 이적사건들을 역사적 사실 있었던 그대로의 일로 보아야 할까요? 아니면, 믿음을 위한 신앙상의 종교문학적 창작이라고 보아야 할까요? 그것도 아니면 대체 이렇게 의문투성이의 본문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당신들의 믿음을 최대한 강화시키기 위해, ‘한 번 선택받았으므로 취소될 리가 없는 영원한 구원’을 받은 신실한 자로서, 그리고 성경은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이 앞뒤가 정확히 들어맞는다고 주장하는 입장에서 이를 멋지게 설명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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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믿냐도대체 (175.115.148.163)
2016-05-28 10:21:36
누구나 천국 못갑니다.
교회에 출석한다고 해서 누구나 천국가는거 아니죠.
영생을 얻고 천국가는 핵심은 성경이죠.

안타깝지만 성경은 매우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게 기록되있죠.
누구나 성경의 참된 깊은 진리를 깨닫지 못합니다.

인간의 이성과 지식으로 도저히 알기 힘든게 성경이죠.

이해가 안간다면 괜한 비판 하지 말아주세요.

성경 원본까지 부정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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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3
왜? (67.173.221.80)
2016-05-28 22:07:31
성경
성경원본이라는것이 있나요? 수많은성경사본 어느것이 진짜일까요? 질문과 토론이 없는 종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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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7
프스미 (59.16.4.27)
2021-04-14 08:40:58
성경은 이미 검증된 말씀입니다.
성경 기자들이 말씀을 기록할 때, 그 말씀은 이미 교회에서 전해지고 있던 말씀이었습니다.
따라서 마태가 의도적으로 이 부분을 추가했다면,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발 벗고 나서서 오류를 수정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쳤고, 또한 성경 말씀을 가감없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이 말씀이 '사실이냐? 가짜냐?'를 판단할 권리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말씀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냐?'를 연구하고 묵상해 볼 권리만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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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류인용 (1.234.194.161)
2016-05-29 20:34:03
믿음은 누가주나 구원은 누가 주나...
저자의 요점은 무엇인지요 지금까지 여려편의 글을 다양하게 파해치면서 성경의 말도 않되는 이야기들과 사건들을 올려서 우리에게 무엇을 주고자 하는것인지 정확히 말하여 주세여...
그래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 말도 않되는 이야기들은 거짓이고 신화고 추종자들에 의해서 미화되고 종교로 탈바꿈 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것인지.... 아니면 그런 신화적 미화적인것은 버리고 좋은글과 말을 양식으로 삼을지언정 믿지는 말자고 이야기 하는것인지...

종교적허구를 떠나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현실적으로 그리고 현대적 문화으로 비평하고 바로 보아야 한다는것인데.....

나도 성경을 보지만 말도 않되는 말들이 많기는 많더니만....
예수구원 떡 사먹고 예수 닮기를 원하고 거룩하기를 원한다면 도덕과 윤리성을 강조하지 왜 구지 예수 믿으라고 닥달하는지.....

참 선을 행하세여... 수도를 하면 얼마나 좋은데...참선을 해보셨는지...
예수믿고 구원 받으라고 예수 믿지 않아도 구원이 있는데 왜 굳이 예수를 믿어야 구원얻는다 하는지...사기도..이런 사기를...
모든 종교는 착실히 살라고 한다 착실히 살면 구원 얻는것이 정답이다..
예수에게만 구원이 있다고 사기치고.. 그만들 생까라...
예수 없어도 구원은 있다 박경은 목사의 말을 들어보라 구원은 어디에도 있다 그만 목사님에게 속지 말고 헌금 다발주지말고 불우한 이웃에게 과부에게 상처받고 아픈이들에게 줘라... 그려면 그 선행이 구원을 줄것이다..
이것이 진리다... 선행을 하면 사회도 아름다워진다... 서로가 서로가 선행하는데 아름다워지지 않겠는가... 구원이 그속에 있다..

제발 구라 치지 말고 독선적이지 말고 선행도 해라 말로마 떠들지 말고 예수쟁이들아(나도 예수쟁이다) 목사들이여 기독교만이 참 진리고 구원이 있다고 사기치지 말고 좀 자유를 줘라 니들은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교인들에게
얼마나 많은 족쇄를 지울려구 그리도 구질구질하게 설명하고 강조하노 목사 니들끼리도 예수의 말이 맞네 틀리네 하면서....ㅎㅎㅎㅎㅎㅎ

나도 예수 믿지만 박경은 목사글보면 참 그냥 믿지 멀 그리 파해치고 분석하고 논리를 말하는지...
인간의 지혜로 얼마나 전능한 하나님을 안다고....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넘이 누구인고....참.... 가소롭다...
나도 내 자신을 모르는데 신을 안다고 깝죽깝죽..... 분석을 하는지....

그래서 믿음은 성령이 아니고서는 믿을수 없다고 하는데도....꼭 분석할려구.....
믿음은 하나님이 주는것이지 내가 믿는것이라고 착각하면 .....
구원은 나에게서 오는것이 아니라 예수에게서 나오는것이다...
아무리 잘 믿어보라 예수가 구원을 주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
지식이 많다고 깝죽깝죽....하지 말라
예수가 욕한다 독사의 자식이라 그당시 종교 지도자들에게 오늘날 목사에게..
독사의 자식 외식하는넘들 너희도 들어가지 못하고 남도 못들어가게 하는 종교지도자들이여.... 지식이 많으자들이여....
하나님나라는 지식으로도 못가고 부자라고 못간다고..... 노래도 못들어 보았는가....쯔쯔.... 그 지식으로 많이 많이 파해치시라....
믿음은 결국 하나님이 주시기 않으면 믿지 못하는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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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
믿음 (121.135.246.106)
2016-05-29 00:54:15
성경에 그것말고도 우리가 보기에 오류로 보이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 오류가 있던지 없던지 그게 그렇게 문제가 되나요? 자연만물이 하나님이 계신것을 계시하지 않나요.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교통하십니다. 성경에 오류가 있는지 없는지 하나님께 알려달라고 전심으로 물어보세요. 당신이 전심으로 물어보시면 하나님은 외면치 않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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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
왜믿냐도대체 (175.115.148.163)
2016-05-28 10:21:36
누구나 천국 못갑니다.
교회에 출석한다고 해서 누구나 천국가는거 아니죠.
영생을 얻고 천국가는 핵심은 성경이죠.

안타깝지만 성경은 매우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게 기록되있죠.
누구나 성경의 참된 깊은 진리를 깨닫지 못합니다.

인간의 이성과 지식으로 도저히 알기 힘든게 성경이죠.

이해가 안간다면 괜한 비판 하지 말아주세요.

성경 원본까지 부정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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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3
왜? (67.173.221.80)
2016-05-28 22:07:31
성경
성경원본이라는것이 있나요? 수많은성경사본 어느것이 진짜일까요? 질문과 토론이 없는 종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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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7
유다 (183.97.157.59)
2016-05-26 20:01:26
성서와 예수
누군가 잘난 자가 말했지요.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문자 그대로의 성서해석은 예수를 죽이는 길입니다. 시대는 미이라가 되어버린 성서를 떠나 살아계신 예수를 따르는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여전히 성서라는 가전보도로 예수를 죽이고 있습니다. 목사들 대부분이 이를 알면서 딴청을 부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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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왜믿냐도대체 (220.70.232.205)
2016-05-26 10:52:33
기독교 망치지 말고 출교하세요
성경 저자들이 무지해서 오류 투성이로 기록한 것으로 쓰셨네요?

성경의 저자들이 하나같이 실수라도 했다는 말입니까?

모두 다 이유가 있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기록한 것입니다.

성경을 믿지 않으시는데 교회는 왜 다니고

말씀 그 자체이신 주님은 왜 믿습니까?

선량한 교인들 현혹하지 마시고 그냥 교회 다니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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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7
지나가다 (118.33.209.74)
2016-05-26 09:11:53
? 왜... 물위를 걸으시면 안되는 일이 있는가?!!!!
왜 예수님이 물위를 걸으시면 안되는 일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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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0
광야의 소리 (122.35.176.192)
2016-05-26 08:18:25
요즘은 성경의 기록이 일점일획도 오류 없는 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이 줄어든 줄 압니다. 위에서 지적된 것처럼 서로 다른 기록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적 이야기는
예수님의 신비성을 강화하기 위한 방편이겠죠. 우리는 한국인의 승려들
의 경우에도 예를 들면 신돈의 경우도 이런 신비로운 사건을 언급합니다.
특히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분이 그런 신통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죠. 우리가 어느 분울 존경하고 따를 경우에
그분에 대한 신비감을 어느 정도 갖고 있습니다. 내가 도무지 따를 수
없는 어떤 능력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특히 종교에서는 그런 신비감이
꼭 필요한 것 아닌가요? 그런 신비감을 정면으로 깨려고 한다면 그것은
그 지도자를 따르는 신앙심을 훼손하게 됩니다. 어느 정도 그 신비감을
남겨두는 것은 좋은 일일 것입니다. 유치원 학생에게 네 선생님도 화장실
에 간다고 꼭 알려주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 애가 커가면서
그 사실을 알 때까지 그냥 놓아두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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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7
웨슬리 (108.28.149.89)
2016-05-26 00:09:19
다림줄 님과 똑같은 질문을 다시 드리며..
도대체 이런 허잡한 주장을 싣는 당당 뉴스 ,,, 그 당당함에 놀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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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
송정실 (118.33.51.88)
2016-05-25 23:56:05
제가 다는 모르겠지만 느낀대로 써보겠습니다.

저자의 질문.


마가복음에선 제자 일행이 도착 장소를 벳새다로 정하고 가는 중이라고 하는데 요한복음에선 가버나움이라고 정하고 갔다. 이 차이는 무엇인가?

에 대해서만 답하겠습니다.



지도를 찾아보니 벳새다와 가버나움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고장이었습니다. 물론 그 거리는 상당하지만 하여간 중요한 것은 두 고장이 붙어있다는 것이고, 당시 사람들에게 시간과 공간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 없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현대 과학에서 공간과 시간은 같은 것으로 보고 있잖아요.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개념이란 거죠.


그러므로 정확한 개인 시계가 없어서 시간에 대한 분간 개념이 없으므로 공간에 대한 분간 개념도 그만큼 떨어질 게 분명합니다.


예컨대 우리 나라에선 초록불을 파란 불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이는 색에 대한 분간이 그렇게까지 중요치 않은 문화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아마 그들이 가려던 곳은 정확히 벳새다나 가버나움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들이 아는 랜드마크, 예컨대 화개장터 어디메? 그 학교 어디메? 라고 정하고 갔을 겁니다.



심지어 우리 나라 지역 방언 중에서 개떡같이 말하고 찰떡 같이 알아듣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요.


예수님이 몇 번지에 가거라...라고 말씀하시자 예? 어디요? 하고 당장 알아듣지 못하니 옆에 있던 좀 영민한 제자가,아 왜 거시기 있잖아 거시기. 이녁이 몇 년 전이냐, 술마시고 깽판치며 거시기하던 거시기. 하고 서로 대충 알아들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제자는 거기를 벳새다란 지역으로 알아들었을 수 있습니다.


하여간 그 지방 방언을 모르는 한은, 이 언어가 정확히 어떤 식으로 전개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하지만 문서로 기록할 때 거시기라고 적을 순 없으므로 이런 차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뭐 하여간 대화를 할 당시엔 이것이 기록될 테니 매우 정확하게 말해야 해, 라고 했을 린 없고 매우 대충 대충 알아들었을 테고, 때문에 일상 대화를 문서화할 때 차이가 발생하는 건 자주 있는 일입니다.
(제가 방송 프리뷰 알바를 했기 때문에 잘 압니다.)

그만큼 우리의 일상적 대화는 부정확하고 또 다른 감각들에 의존하잖아요.

이번 총선 때 반대편 후보를 밀어달라고 한 대표도 있었던만큼 현실의 대화란 건 그만큼 부실함이 있음을 전제하고 문서를 해석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의 대한민국 불타버린 기록실에서,

모월 모시에 김무성이 노원구에서 안철수를 뽑아 달라고 했다.
라고 써 있는 파피루스 조각이 발견했는데

모월 모시에 김무성이 노원구에서 이준석을 응원하는 유세에 나섰다.

라는 기존의 기록이 있다면 이는 당연히 모순입니다. 그래서 사정을 모르는 나중 사람들은 어느 한 쪽 기록이 틀렸으므로 이는 모순이고 그러므로 이는 사실이 아닐 것이다. 라고 결론 내린다면 오늘 날 사람들은 답답하다고 할듯요.

왜냐하면 둘 다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저는 이런 일도 경험했습니다.


예전 유치부 선생님들이 회의를 하는데 방에서 애들이 만화영화를 보고 있어서 비워질 때를 기다렸습니다. 좁은 복도인지라 줄지어 서 있는데 누군가, 무슨 만화야? 라고 물어보자 처음 사람이 뭐라고 뭐라고 했는데 끝에 가선 전혀 다른 내용이 전달되는 것을, 그 줄 밖에 서 있던 내가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루머가 퍼지는구만? 라고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이때 인원은 열명 남짓이었고요.


서로 인지 능력이 달라서 말은 구전으로 전달하는 순간 암기가 아닌 이상 조금씩 변동이 발생합니다. 그게 어려 차례를 거치면 아예 달라지기까지 하고요.

(그렇기에 성경의 목격 기록이 이 정도로 서로 비슷하다는 것은 외려 불가사의하달까요.)


그렇다면 열두명의 제자와 플러스된 사람들끼리 어디 가는 것이메? 라고 물어보니 응.. 거시기 가. 거시기. 라고 말하다 서로 다른 곳으로 인지했을 수 있습니다다. 그래서 그들 입장에선 사실인 거고요.



성경은 이천년을 흘러내려온 단지 문자 뿐인 기록입니다.
때문에 우린 많은 것을 상상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집마다 거리마다 몇번지 하고 다 붙어 있는데다 네비까지 있는데도 길 찾아가기 어려워서 전화걸고 거기 어디에요? 하고 묻는 마당에 그런 표지판이나 도움이 하나도 없던 시절에 정확히 가버나움을 가자? 해서 가버나움을 갔다.. 라는 건 비현실적입니다.


게다가 종로구에 가자. 라고 하면 종로구가 얼마나 넓은데, 종로구 어딜 가도 종로구니까 막연하게 가자고 했을까요?

즉 이 기록은 기록을 위해 양해된, 매우 생략되고 제한된 정보입니다. 그런만큼 추측할 여지를 다양하게 주고 있는 사복음서는 그만큼 진실한 거고요.



무엇보다 저자에 대한 성향 파악이 필요합니다. 제가 만약 예수님의 공생애를 기록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밤잠을 못 이룰 거 같습니다. 제 기록이 후대에 끼칠 영향을 생각하면.



즉 기록의 가감이란 건, 진정한 믿음이 있기에 두려움도 있는 제자라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 입장에서 접하거나 본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적었기에 외려 이런 차이가 발생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록의 정확성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기존의 것을 베꼈겠죠. 하지만 그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가장 객관적인 기록을 하다 이런 차이를 만듭니다.


그러므로 이런 차이는 외려 이 기록이 사실이란 뜻입니다. 서로 짜고 쓴 게 아니란 뜻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자기가 알아들은대로, 인지한 대로 썼을 뿐입니다. 그게 진실의 한 조각임에는 분명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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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림줄 (1.220.214.82)
2016-05-25 09:21:49
설명하기전에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은 이해가 되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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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68.55.50.158)
2016-05-26 08:08:06
이해는 안되지만 믿으려고 하지요. 그럼 설명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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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지마라걍 (175.115.148.163)
2016-05-28 10:02:23
어쩔수 없습니다.
안믿어지면 그냥 믿지말고 교회 다니지 맙시다~ 예전부터 수많은 목사님들의 설교로도 이해가 안가면 어쩔 수 없네요;
성경의 원본까지 부정하지말고, 교회다니지 마세요^^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하기 힘들고 믿기 힘든게 성경입니다.
무식하게 성경 원본까지 부정하면서 추잡스럽게 굴지말고 믿지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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