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천당,불신 지옥'과 노동이사제

'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이는 한국교회가 전도 할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표어라 할 수 있다. 이 표어는 예수를 믿으면 천국 가고, 그렇지 않으면 지옥 간다, 로 풀이된다. 여기서 천국은 물론 내세 천국을 의미한다. 교회에 다니면서 예수를 자신의 구원자로 믿고 세례를 받으면 내세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을 얻는다는 믿음은 한국교회만이 아니라 대개의 세계 개신교회가 가진 믿음이다. 이는 현재만이 아니라 16세기 종교개혁 이래 5백년간 주류 개신교회가 꼬옥 지켜온 유산이기도 하다.

종교개혁운동은 마르틴 루터가 '칭의稱義의 복음'을 재발견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성경 중에서 특히 로마서와 갈라디아서 연구에 집중한 그의 칭의론을 대변하는 성구는 로마서 1;17, 3:21-26 등이다. 1장17절을 보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칭의'란 이신칭의以信稱義(Justification by  faith)로서 사람이 예수를 자신의 구원자로 믿음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는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다.그러니까 대속의 제물로 죽은 예수를 믿음으로 ,예수로 말미암아 죄인인 인간이 무죄 선언을 받고 의인이라 칭함(의인의 신분)을 값없이  받는다는 것이 칭의- 구원론의 핵심이다. 여기서 하나님은 마치 법정에 앉아계신 재판장 같다. 예수는 죄수의 형벌을 대신 받는 존재 같다. 그리고 신자는 자기 대신 형벌을 받은 자를  덕입어 무죄 선언을 받고 석방되는 사람 같다. 그래서 이런 칭의론을 '법정적 칭의론'이라 한다. 루터가 발견한 것이 바로 이 칭의론이다. 그러나 구약과 신약 전체를 관통하는 칭의의 복음은 그게 다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루터가 발견한 칭의의 복음은 소극적이고 부분적일뿐만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 더 적극적이고 근본적인 칭의의 복음이 있다.

'칭의'의 관계적 의미

칭의의 근본적인 차원은 관계적인 의미이다. 성경에서 의義란 본래 관계 개념이다.의는 '관계에 신실함'이다. 칭의의 법정적 의미는 인간이 자신의 죄를 용서 받아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해방됨이지만 ,관계적 의미는 죄로 인해 왜곡된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게 회복됨이다. 인간의 '자기고집의지'(self assertive will)는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를 뒤틀리게 한다. 그러나 관계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의 씻음과 그로 인한 관계 회복의 길을 마련하셨다. 여기서 의인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이다.그 관계에 신실한 사람이다. 피조물의 의무를 다 하지 못한 죄-불의를 예수로 말미암아 씻음 받고 ,그 죄로 인해 만들어진 하나님과의 갈등이 해소되어, 이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들어가 사는 사람이 의인이다. 의인은 이제 무한한 하나님의 신성에 참여하여 그의 신적 생명 곧 영생을 지금 여기서부터 누리며 산다. 칭의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힘입어 사랑이신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해 사는 관계로 들어간 상태이다. 소위 '탕자의 비유'를 갖고 말한다면 탕자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와 아들로 다시 받아들여진 사실과 아들로서 사는 과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탕자가 이제까지의 죄를 용서받고 아버지의 아들로  다시 받아들여지고 인정받은 은총이 법정적 칭의라면 ,이제  아버지와 올바른 관계를 맺고 아버지 집에서 살아가는 과정이 칭의의 관계적 차원이라 하겠다.   관계적 칭의 없는 법정적 칭의는 아무 의미가 없다. 해롭기까지 하다. 위험하다. 그것은 구원론을 심히 왜곡한다.

칭의의 법정적 의미만을 취하는 교인이나 목사는 방종한 생활에 빠지기 쉽다. 대부분의 한국교회나 미국교회가 타락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는 그릇된 구원론에 있다. 그 구원론의 골자는 법정적 칭의론이다. 이 칭의- 구원론은 많은 목회자나 교인들이 내세 천국 가는 티켓을 이미 받아놓은 당상으로 여기게 만든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이미 다 용서 받고, 그 티켓을 벌써 받은 줄로 굳게 믿는 사람들이 그 다음에 몰두하는 것은 대개 현세에서 부자되고 높아지는 일이다.어떻게 살든, 무슨 짓을 하든 그 구원의 확신만 갖고 교회만 열심히 다니면 내세 천당 가는 특권(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잃어버릴 여지는 없다고 굳게 믿으면서 이제 그들은 돈이 왕 노릇하는 세상에서 성공하고 부자되기에 매진한다. 인간의 욕심을 곧추 세우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이용하고 성경 구절을 아전인수격으로 힘껏 활용한다. 관계적 칭의가 없는 법정적 칭의는 교인들을 도로 탕자가 되게 한다. 탕자의 비유를 다시 빌어 말하면,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 탕자가 다시 아버지 집에서 탕자로 살게 된다는 말이다. 이전에는 아버지를 등지고 집을 나가 탕자로 살았으나, 이제는 아예 아버지 집에서 버젓이 탕자로 사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대다수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갖고 있는 '구원의 확신'의 근거인 법정적 칭의론은 아버지 집에서 탕자로 사는 짓을 부추긴다.17세기부터 북아메리카에 들어가 원주민 3천만 이상을 죽인 개신교도들을 보라. 그 만행을 합리화하고 부추긴 종교심의 뿌리엔 이 왜곡된 칭의- 구원론이 있다. 이는 1492년부터 2-3백년 동안 남미 원주민 5천만 이상을 죽인 천주교도들과는 또다른 종교적 양상이다.

노동이사제

지금은 칭의의 관계적 의미를 강조해야 할 때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교회의 퇴락은 더욱 가속도를 내게 될 것이다. 진정한 칭의- 구원은 사랑이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일치와 연합)를 얼마나 돈독하게 맺고 사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는 곧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이다.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는 곧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이고(마태25:31-46 양과 염소의 비유 참조). 돈이 왕 노릇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관계의 중심 뼈대는 자본과 노동자의 관계다. 이 관계의 화목 없이는 모든 인간관계의 화평은 없다.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화평도 없다. 이 둘 사이의 대등하고 화평한 관계는 경제민주화의 지름길이자 핵심이다. 민주화나 노동운동, 하나님 나라운동의 목적은 임금 몇푼 더 받는 것이나 인권신장 정도에 있지 않다. 인간과 자본과의 관계 재정립에 목적이 있다. 주종, 갑을관계 타파가 목표다. 기업경영에 노동자가 실질적으로 얼마나 참여하느냐가 모든 사회운동의 핵심 관건이다. 회사 경영에 노동자의 민주적 참여 정도는 그 사회의 성숙이나 민주화 수준을 재는 척도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척도도 된다. 즉 사랑이신 하나님의 나라가 얼마나 임했는가를 재는 척도이다. 나아가 민족의 통일도 그렇다. 자본과 노동자 사이의 동등하고 화평한 관계없는 통일은 허구다. 자본이 왕 노릇하거나 수령이 왕 노릇하는 통일 사회는 아무 의미 없다. 그 자체가 모든 고통과 번뇌의 뿌리다. 그 사회는 하나님 나라와는 상극이다.  더구나 수령주의적 왕조체제는 돈이 왕 노릇하는 구조보다 더 시대착오적이고 유치하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최근 서울시가 도입하기로 한 '노동이사제'는 매우 고무적이다. 지난 5월 10일 서울시는 시 산하 15개 기관(SH공사, 서울메트로,세종문화회관 등)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한다는 발표를 했다. 국내에선 처음이다. 노동이사제는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하는 제도다.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유럽에서는 많은 나라가 시행하고 있다. 유럽연합 27개국 가운데 18개 나라에서 노동조합이나 종업원 대표가 기업의 최고의사결정에 참여한다. 대체로 사회가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단단한 북유럽 국가들이 이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독일은 대표적이다. 법적으로 보장된 이 제도를 독일(독일에서는 공동결정제라 함)은 공기업과 500명 이상 민간기업에서 시행하고 있다. 독일엔 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이사회를 선출하고 감독하는 감독이사회가 있는데, 그 감독이사회는 주주총회에서 선출된 주주이사와 노동조합 등에서 추천한 노동이사가 같은 비율로 구성된다. 즉 최고 의사결정조직에 노동자가 자본을 대변하는 사람들과 동수로 참여해 최고 경영진의 선출 및 해임, 투자계획 등 기업 전반의 주요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다.

서울시가 이번에 도입하기로 한 노동이사제는 매우 미흡하다. 보완하지 않으면 유명무실해질 수도 있다. 크게 2가지 점에서 그렇다. 첫째는 노동이사의 수가 너무 적다. 300명 이상 사업장은 2명, 미만인 경우는 1명으로 한다는 계획인데 그 수는 터무니없이 적다. 그 숫자로는 독점자본의 횡포가 심한 이 나라에서 노동이사제의 구실을 하기가 힘들다. 둘째는 노동이사가 되면 노동법상 노조를 탈퇴해야 하는 점이다. 노조를 탈퇴한 노동이사는 무력해지거나 어용으로 변질되기 십상이다.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하는 노동이사제가 자본권력에게 교묘하게 이용당하는 속빈강정이 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보완되어야 한다. 노조나 종업원들을 민주적으로 대표하고 대변하는 노동이사들이 최고의사결정조직의 절반 정도 참여하는 제도가 되어야 한다. 그리 될 때 그 제도는 우리 사회를 평화적이고 민주적으로 변혁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힘입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동시에 타인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며 살도록 부름받은 사람이다. 이 부름은 마치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살면서 그 열매를 풍성히 맺는 삶으로 부름받은 것과 같다.  일터는 그리스도인이 성령의 도움을 받으며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주요 현장이다. 한국교회 회중 대부분은 노동자와 그 가족이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보다도 노동이사제와 같은 제도가 정착되도록 기도하고 힘써야 할 것이다. 더이상 임금노예가 아니라 자유로운 시민(하나님 나라 시민)으로 살려면 이런 제도 같은 것을 위해 수고해야 한다. 태초에 노동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으로서 노동을 고통이 아니라 기쁨으로 삼으려면 그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노동이 단지 생존의 수단이 아니라 자아실현의 수단이 되려면 더욱 그리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일을 방해하는 어두운 세력을 우리는 결코 간과할 수 없다. 그 세력은 우리 밖에만이 아니라 우리 안에도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또한 외면할 수 없다.

여기서 우리 안이란 마음 속을 말한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노동이사제 같은 것을 통해  자유인으로 사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거부하는 흑암세력이 강력히 버티고 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 애굽의 노예생활로 집요하게 돌아가려했던 일은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 우리의 이야기다.  인간속에는 자유인으로 살려는 욕구가 분명 있다. 그러나 타인(강자)을 의존하거나 타인을 억압하며 살고픈 욕망도 그  못지않게 강하다(로마서7:15-24 참조). 더구나 오랜 기간 동안 수직적 군사문화에 찌든 우리에겐 자유로부터 도피하려는 욕망이 더욱 강하게 있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그 흑암의 세력마저 극복하고 이긴 사람(자유인)이기 때문이다. 그런 분의 영을 모시고 그 영을 따라 살면 우리는 그 흑암의 세력까지 극복하고 이기며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된다.  

예수의 성령을 환영하자. 자신의 흑암을 날마다 주님께 고하며 그 영을 충만히 모시자. 그리고 그 성령을 좇아 살자.

김달성목사(평안감리교회 . '예수 믿지 않는 기독교인'저자)

노동하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