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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때문에 치과로 가는 사람
지성수  |  sydneytax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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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05월 21일 (토) 19:00:40
최종편집 : 2016년 06월 15일 (수) 13:34:06 [조회수 :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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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행사에서 강연을 하고 난 후에 토탈 노숙자 패션에 맹인처럼 캄캄한 밤에 시커먼 선글라스를 쓴 사람이 다가 와서 강연을 감명 깊게 들었다면서 인사를 하고 명함을 건넸다. 그 분의 노숙자 스타일의 인상착의에는 별 느낌이 없었지만 집에 와서 명함을 자세히 보니 오래 전 한국에서 쓰던 명함에 볼펜으로 호주 휴대전화 번호가 쓰여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연락처에 집 전화와 휴대폰 번호가 아닌 삐삐 호출기 번호가 적혀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역산을 해본다면 20 여 년 전 명함을 사용한다는 것이므로 기분이 참으로 묘했다. 궁금한 것을 못 참는 성격이라 어쩐지 수상쩍고 이상한 인물을 다시 한 번 만나 보기로 했다.

명함에 적힌 휴대폰으로 연락을 해서 만나서 깊이 있는 대화를 해보니 95년도 한국에서 교통사고로 얼굴의 반쪽이 부서지고 뇌를 다쳤다는 것이다.

더욱이 안타까운 사실은 윈 쪽 귀가 없고 왼 쪽 눈은 의안이라는 것이다. 그를 통해서 새롭게 알게된 사실은 호주에서는 의안은 안과에서 취급 하지 않고 치과에서 취급을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의안은 보철의 개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서야 그가 왜 아직도 20 여년 전 명함을 사용하고 있는지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명함에는 사진이 있는데 사고를 당하기 전의 얼굴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명함은 주는 것은 "나는 사고 전에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하는 뜻이 담겨져 있는 것이었다.

그의 사정을 알고 나서 다시 명함을 보니 사진 속의 그의 얼굴은 20 여년 전의 젊고 싱싱한 모습이어서 눈물이 날 만큼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앞으로 그 사람을 아우 같이 돌보아야겠다는마음이 생기면서 다시 한번 사람을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새롭게 하게 되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외모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은 어떤 사람에게는 대단히 억울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왜냐면 태어나면서부터 불공평한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도 어쩔 수가 없는 현실인데 요즘은 돈만 있으면 마음대로 시설변경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점점 더 불공평해지고 있다. 바야흐로 제 어미와 전혀 담지 않는 아기가 태어나는 세상이다.

가끔 젊은 여성들 가운데 전면적으로 구획조정을 해서 기하학적으로는 균형이 맞기는 하지만 너무 인공적이어서 목숨 걸고 예쁘게 보이려고 했던 처절한 노력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얼굴도 있다.

트랜스젠더 여성인 하리수가 서울대에 특강을 갔었는데 한 학생이 짓궂은 질문을 했다.
“성형수술은 어디 어디 하셨습니까?”
“경제적 형편으로 코 밖에 못했습니다.”
하리수의 대답에 강의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하나님이 준 것이건, 의사가 만들어 준 것이건 아름다움 자체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 돈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20 세기 말에 들어서서 인간의 사고 혹은 의식, 감정 등이 인간의 뇌에서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연구하는 뇌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인간의 뇌 속에 엄청난 수의 뉴런이 상호 연결되어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의식이다. 뉴런의 연결과 그것의 활성화, 그리고 활동에 의해 인간의 의식과 사고가 생겨난다는 뇌과학 앞에서 아마 프로이트는 울고 가게 되었지만 기독교는 설 자리가 더욱 좁아졌다.

펨블턴이란 미국의 한 대학에서 첨단 뇌과학의 연구의 성과로 뇌에서 아름답다든지, 추하다든지를 판단하는 신경회로를 차단하는 기술이 개발되었다고 한다.

'칼리그노시아'라는 이 기술은 시각에는 간섭하지 않고, 단지 눈에 보이는 것을 인식하는 일에만 간섭한다고 한다.

즉, 오뚝한 코와 뭉퉁한 코의 차이는 분명히 인식하지만, 이 차이에 대해 ‘예쁘다거나 밉다거나’ 하는 심미적 반응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마치 실어증 마냥 일종의 실미증을 유발시켜 외모를 미추에 대한 판단 없이 그저 외모로만 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는 성경의 예수의 말씀을 과학적으로 실행 할 수 있도록 조처가 되는 것이다. 외모지상주의에서 탈피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니 본인의 얼굴이 자유민주주의 형으로 생겼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이 아니 '할렐루야!'가 아닐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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