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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티모어에서 다시 시작하는 미주자치연회와 기독교대한감리회
유은식  |  kmch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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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05월 13일 (금) 11:31:27
최종편집 : 2016년 05월 18일 (수) 23:46:09 [조회수 : 3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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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미주특별연회가 미 동부 볼티모어의 러블리레인 교회(Lovely Lane United Methodist Church)에서 지난달 26일 개최됐다. 1883년 보빙사절단이 고종으로부터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 알아오라는 특명을 받아 미국을 방문했다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와싱턴으로 가는 기차안에서 당시 러블리레인 교회의 담임목사였던 가우처가 볼티모아에서 탑승해 우연히 만나 조선선교에 물꼬를 튼지 133년 만이다.

   
 

볼티모어에서 시작된 미국의 조선선교는 선교사를 파송하고 교회를 세우며 자라나더니 오히려 한국인 스스로 세계 곳곳에 한국인 교회를 세우기 시작해 1993년 4월 1일 국외선교연회로 시작하여 미주특별연회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어느 때 부턴가 연회석상에서 고성이 오가더니 급기야 2010년에 감독을 선출하는 문제로 연회가 분열되며 6년동안 처절한 성장통을 겼어야 했다.

통합과 분열을 반복하던 미주특별연회는 지난해 23회 연회에서 극적으로 봉합되면서 자치권을 갖는 보다 책임있는 연회로 거듭나기 위해 1년여의 준비를 가진 뒤 조선선교 첫 출발지인 볼리티모어에서 2016 자치 원년의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볼티모어 연회의 매튜스 감독이 환영사에서 “여러분은 이 모든 것이 시작된 곳으로 돌아오셨다.”고 말했다. 미국감리교회를 출발케한 볼티모어 러블리레인 교회가 조선선교를 시작케 했고 또 미주특별연회의 자치 원년의 출범의 장소가 되었다.

연회장소인 러블리레인교회는 1772년 볼티모어에 모인 감리교도들이 예배처소를 마련하기 위해 지은 러블리 레인 미팅하우스로 시작했다. ‘미국감리교회의 어머니 교회’로 불리는 러블레레인 교회는 1784년 12월에 미국 감리교회가 설립된 역사적인 크리스마스 연회가 열린 곳으로써 미국감리교회의 출발지이다. 1883년 이 교회에 가우처목사가 부임하고 9월 우리 조선의 보빙사절단이 그를 만나 조선선교를 요청을 했고 또 가우처가 매클레이를 움직여 고종황제로부터 선교윤허를 받아 조선선교가 시작된 것이다.

 

   
▲ 볼티모어의 러블리 레인 교회

볼티모어 러블리 레인교회!

단순히 미주 특별연회의 연회 장소로서의 의미를 말하려는게 아니다. 또 조선선교를 가능케 했던 역사적 장소였던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미주특별연회의 지난날의 아픔을 이곳에서 마무리 하고 또 미주 자치 원년의 출발을 이곳에서 하게 된게 너무나 극적이고 미주특별연회원들의 정체성 확립에 유의미하다는 것이다.

지난 6년간 아니 십수년간 논쟁이 있었다. 지구촌의 한인교회들이 모여 국외선교연회를 조직하더니 시간이 지나 미주에 있는 이민교회들만 모여 미주선교연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특별연회를 만들어 감독을 선출한다 했다. 이게 분쟁의 시발점이었다. 2008년 발발한 감리회사태의 축소판이 미주연회에서 고스란히 재현됐다. 오히려 더 치열하고 선이 분명히 그어져 ‘서로 안보니까 행복하다’는 지경에까지 갔다. 한 연회에서 안 보고 살수는 없어서 2011년부터 올 해까지 모이기와 헤어지기(분열-분열-통합-분열-통합-통합)를 반복했다.

그런데 이것은 구성원들의 자질도 문제거니와 본토 지도자들의 과욕이 겹쳐 빚어낸 산물이기도 했다. 이런 문제가 대두될 때 지난해의 클레어먼트 연회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관리감독의 행정명령에 의한 지방 경계와 임시감리사 임명으로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 연회개최전 연합지방회 소집으로 연회개최의 법적시비를 해소 하고 통합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클레어먼트 연회(제23회 미주특별연회)에서 미주연회원들은 미주 현실에 맞는 자치법을 제정하기로 결의하고 지난해 10월 제31회 총회 입법의회에서 “미주특별연회는 의회조직과 직무는 미주특별연회 자치법에 준한다.”, “자치법은 미주특별연회에서 자치법이 공포된 날부터 시행한다.” 라는 한 줄의 개정안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후 미주연회는 장정개정위원회격인 발전위원회를 조직해 자치법 초안을 만들어 제24회 미주특별연회에 상정했다.

제24회 연회는 그 무엇도 중요하지만 이 자치법을 과연 통과시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연회 전부터 자치법 내용을 두고 몇몇 지방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미주연회를 한시적으로 태평양교구와 대서양교구로 나눠 치유와 회복의 시간을 갖자는게 2개교구제의 취지였지만 이게 분열을 영구화 하고 일부 기득권자들의 정치적 나눠먹기라고 비난 받았다.

 

   
▲ 24회 미주특별연회

둘째날 오후 자치법 심의시간이었다. 본토 연회도 그러하지만 언제나 중요결의 시간에 나타나는 문제는 의결정족수다. 의결정족수나 부결에 의해 자치법이 의결되지 못하면 미주특별연회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왜냐하면 2012년도 교리와 장정은 한시적이나마 미주특별연회의 조직과 직무에 대해 ‘임시조치법’으로 규정하고 있었지만 2016년도 교리와 장정에서는 미주특별연회의 조직과 직무에 대해 단순 규정인 “자치 법에 준한다.”고만 했으니 그동안 준비해 온 자치법이 부결된다면 미주특별연회는 미주특별연회라는 이름만 있지 조직도 직무도 없는 그야말로 빈 깡통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치법이 부결되면 모법으로 돌아가면 된다.’는 말이 돌았다. 그러나 돌아갈 법이 없다. 이미 2016년도 장정에는 미주연회 관련 조항이 다 삭제되고 ‘자치법에 준한다.’는 것만 남겨있기 때문이다. 다른 연회에 적용되는 교리와 장정을 차용하여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자치법을 도모하다가 겨우 그런 결과를 만들어 낸다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뿐 아니라 본토의 ‘인내심’이 극에 달해 ‘호적 파서 나가라’는 여론이 들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18년 제32회 입법의회에서 다시 법을 제정할 수 있지만  이것은 더 어렵다. 어찌 보면 1993년 국외 선교연회 조직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는 꼴인데 그 때에는 선교연회를 조직한다는 희망을 가지고 협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6여년의 긴 시간이 걸렸다. 이런 정서 없이 천가지 만가지로 갈라져 부결된 자치법을 다시 제정한다 한들 만들 수나 있겠는가? 감독회장의 표현대로 자치법을 결의해 내지 못하면 ‘법적 미아’가 될 수 있는 미주특별연회였다.

 

   
▲ 2교구제 안을 놓고 투표하는 모습

그래서인지 전용재 감독회장은 개회 벽두부터 “역사는 역사로 풀어야 한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안 된다. 반대는 대안을 가지고 해라. 의결정족수가 차야한다”고 시간마다 강조했다. 아니나 다를까!!

개회벽두 연회원 재적 363명중 226명이 등록하여 개회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연회자료집 p 13에 보면 정회원-342명, 평신도-235명으로 기재해 연회재적이 577명임을 밝혀주고 있다. 이대로라면 적어도 289명 이상의 등록과 출석을 해야 개회정족수에 도달한다. 그런데 부담금을 전년도 말에 완납한 교회와 연회회원에 사전등록한 수를 합한 363명(준회원 포함)을 재적회원으로 본다며 개회를 선언했다. 사실 이것이 미주연회의 특성 중에 하나이다. 본토 교리와 장정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면 미주연회는 항상 개회정족수도 의결정족수도 차지 않는다. 목회자는 연회에 참석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평신도 연회대표들은 광활한 지역적인 문제와 생업의 문제로 연회참석이 무척 어렵다. 그러기에 미주만의 자치법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의결정족수에 대해 교리와 장정은 “재적회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회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506단 제19조)”고 밝히고 있다. 이 법에 준해 감독회장은 연회등록인원 226명을 출석회원으로 보고 의결권이 없는 준회원 31명을 제한 195명중 과반수인 98명의 찬성을 얻으면 결의가 된다고 알렸다. 그런데 실제 참석은 110여명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정족수 미달로 더 이상 연회를 할 수 없다하여 산회를 선언함이 법적으로 마땅한 일이나 그렇다면 미주특별연회에 대한 조직과 직무는 모두 날아가는 상황이었다. (실상은 재적회원 363명에서 31명의 준회원을 빼면 332명이라서 166명이상이 참석해야 하고 이것을 조건으로 84명의 득표를 얻어야 함이 규정이다)

그래서 나온 묘수(?)는 재석수를 세지 않은 채 ‘장부상의’ 출석회원(195명)을 재석인원으로 보고 과반(98명) 결의를 이끌어 내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만만치가 않았다. 결의가 되려면 참석자 110여명 대부분이 찬성표를 던져야 했기 때문이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자치법을 찬반토론과 함께 투표한 결과 발전위원회에서 지난 1년 동안 준비한 자치법안의 골격이자 첫 조항인 2개 교구회 설치안이 찬성 64, 반대 48, 기권 4표로써 ‘장부상의’ 출석회원(195명)의 과반수(98명 이상)의 찬성을 얻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표결시 앉아있던 실제 재석회원 과반 수 이상의 찬성을 얻고도 부결이 된 것이다.

그러나 법안 모두가 부결된 것은 아니었다. 단지 1안인 2교구제가 부결된 것이다. 하지만 자치법 반대의 정서가 일부에서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게 문제였다. 어떤 법안을 내놔도 통과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위기가 회의장을 지배했다. 자치법을 만든 발전위원회는 긴급 모임을 갖고 대책을 강구했지만 묘수를 찾지 못했다. 작년 연회에서 연회 스스로가 결의했던 것을 뒤집는 결과에 대해 배신감도 컸다. 이들은 2교구제 부결의 책임을 스스로 지우며 전원 사퇴 했다.

이때 감독회장은 “대안 없는 반대는 안 된다.”며 찬반토론에서 자치법(특히 2교구제)을 반대한 이들을 구체적으로 거명해 대책위원회를 즉석에서 조직한 뒤 이들에게 대안을 마련해 오라고 하고 장시간의 정회를 선포했다. 아마도, 발전위원들의 전원사퇴는 배수진일 것이고 대책위원들이 어떤 법안을 만들어 와도 통과되지 않을 것을 감독회장이나 발전위원들은 미리 알았을 것이다. 불과 10여명만 반대표를 던져도 ‘턱도 없는 과반수의 올무’에 걸려 어떤 법안도 통과되기 어려운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대책위원들이 주어진 시간을 넘겨서까지 의논하여 마련해 온 개정안은 교리와 장정의 규정을 거의 카피해 오다시피 했다. 다만 ‘2교구제’를 ‘한 연회’로 문구만 바꿔 자치법의 골격 자체를 바꿔왔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재석한 회원 거의 모두가 찬성한다면 몰라도 난상토론을 거쳐 투표에 붙여진다면 과연 의결정족수를 충족한 결의가 될 수 있었을까? 찬성이던 반대이던 의결정족수는 부족하고, 자치법안을 두고 이해가 엇갈리며 갈등이 표출되어 있는 상태였으며, 대책위의 수정안이 상정되었지만 급조된 만큼 완성도가 미흡하니 이때즘에 이르러 거의 자포자기하는 분위기 까지 감지됐다.

그때, 누군가 일어나 미주특별연회의 사정을 잘 아시는 감독회장에게 전권을 위임하여 우리는 그대로 받자고 했다. 이에 감독회장은 감독회장이 아닌 실행위에 넘김이 어떠냐고 했다. 이것마저 의결한다면 정족수에 걸리니 정족수를 세지 않고 ‘가하시면 예하시오’로 결의하자고 했다. 여기에 발전위가 차기 감독선출 방법론으로 상정한 간선제 역시 의견이 분분할 것으로 예상되어 미리 직선제와 간선제를 두고 찬반토론 후 ‘여론조사’를 빙자한 사전 투표를 실시해 압도적 표차(75:25)로 지지를 얻은 ‘3무 선거방식의 간선제’를 포함한 자치법 수정안을 실행위에서 만들어 오게 했다.  이때가 둘째 날 저녁회집 때였다.

실행위가 밤새워 자치법에 대해 토론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들리기로는, 그날 밤부터 다음날 까지 이어져도 결론을 내지 못했던 쟁점은, 자치법 초안은 감독의 권한을 2개 교구장에게 분산했었지만 2교구제가 부결되었으므로 이들의 권한을 감독에게 환원시키되 총무를 1명만 둘 것인가 2명을 두어 사실상의 2교구제를 시행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한다.

연회 셋째날인 다음날의 점신시간이 지나 오후 마지막 회무시간에도 타협안이 나오지 않았다. 어두운 분위기가 지속되었다. 그러다 막바지 타협안이 나왔다는 소식이 들렸다. 1감독-1총무-2간사제였다. 권한이 대폭 축소된 2교구제 하의 감독이 아닌 실권을 가진 감독이 선출되는 것인 만큼 총무 역시 2개로 나눠진 권한이 아닌 정상적인 권한의 총무여야 할 것이 설득력을 얻은 결과였다. 교구가 나뉘지 않은 상태에서의 2인총무제는 혼란을 유발할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이번 회기에 한해 실행위가 선거인단이 되어 감독을 선출하기로 했다.

이렇게 미주자치연회법안이 실행위에서 나왔고 이 자치법안은 본회의에 상정되어 만장일치로 결의가 됐다. 그야말로 좌충우돌 우격다짐의 자치연회가 출범된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주자치연회는 조직도 직무도 없는 “볼티모어에서 탄생해 볼티모어에서 사망한” 연회가 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였을 것이다. 미흡한게 틀림없을 자치법안은 자치법 개정위원회를 실행위 내에 두어 차후 보강해 가기로 안전장치를 둔게 불만을 잠재우는 효과를 냈다.

자치법의 통과가 공포됐을 때, 그리고 단독 추대되어 실행위에서 선출된 박효성 목사가 자치원년의 감독으로 소개될 때 연회원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모두 기립하여 아주 크고 긴 박수를 쳤다. 위기를 극복하고 양보와 협의로 이루어낸 자치법을 향한 자긍심의 표현이었을지도 모른다. ‘법적 미아’를 운운하며 자치법 결의를 호소반 사정반으로 이끌어 낸 감독회장 역시 큰 박수를 받으며 ‘관리감독’의 멍에를 벗고 단을 내려갔다. 모두가 승리자였다.

 

   
▲ 자치원년의 감독으로 선출된 박효성 목사가 소개되자 전 연회원이 기립하여 맞고 있다.

그런데 필자가 이 과정을 이렇게 힘들여 강조하며 기록하는 이유가 뭘까?
이번 연회의 주제가 “가우처, 조선선교 133주년, 볼티모어에서 볼티모어까지!”이다. 이는 미주선교역사는 물론 조선(한국)선교 역사를 함축하는 것으로 그 역사의 깊이를 담고 있는 표현이다. 볼티모어에서 출발한 조선선교가 시간이 흘러 미 본토에 한인들의 연회를 세우기  까지 성장했으나 만만찮은 성장 통을 겪었고 이제 그마저 이겨내며 볼티모어에서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자치연회로서의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옥동자를 낳는 심정으로 양보와 타협의 정신을 발휘한 미주특별연회원들의 성숙한 회의문화도 평가 받을 만 했다. 서로가 무엇을 원하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를 몰랐던 지난 세월을 거울삼아 자치법이라는 틀과 방향을 정해 타협과 대화로 문제를 스스로 풀어낸 것이다. 이번 연회에서 상황의 급박함으로 인해 제대로 실현해 내지는 못했지만 제비뽑기로 선거인단을 선출하고 후보와 정책과 선거운동이 없는 상태에서 선거인단이 무기명으로 3인의 후보를 추천하여 감독을 선출하려는, 한국도 못해낸 금권차단의 선거방식을 실험적이나마 제도화 했다는 점은 그 실효성 여부를 떠나 높이 평가 받을 만 하다. 미주로부터 불어온 이 훈풍이 개혁의 실패로 좌절감에 빠진 본토 기독교대한감리회에 어떤 영향을 줄지 사뭇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자치선언이 해피엔딩은 아니다. 이제부터 미주자치연회는 성숙을 향해 가야 한다. 그동안의 아픔과 갈등을 치유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완성도 높은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성회복이 일어나야 하며 교회는 부흥을 위해 기치를 높여야 하고 그 모든 것들을 행정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회복된 안정이나 권좌의 달콤함에 안주하지 말고 영성과 행정력을 갖춘 지도력이 발휘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또 한 번의 사반세기를 달려갈 원동력으로서의 새로운 집행부와 아픔을 훌륭하게 극복하고 새 출발하는 미주자치연회에 기대를 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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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감리교회가 거듭나나요? (61.101.168.94)
2016-05-13 12:07:30
이제부터 미주자치연회는 성숙을 향해 가야 한다. 그동안의 아픔과 갈등을 치유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완성도 높은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성회복이 일어나야 하며 교회는 부흥을 위해 기치를 높여야 하고 그 모든 것들을 행정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회복된 안정이나 권좌의 달콤함에 안주하지 말고 영성과 행정력을 갖춘 지도력이 발휘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또 한 번의 사반세기를 달려갈 원동력으로서의 새로운 집행부와 아픔을 훌륭하게 극복하고 새 출발하는 미주자치연회에 기대를 걸어 본다.

의미있는 대목이네요.
그동안 갈등과 대립 속에서 생각을 그리고 행동을 달리했던 이들을 내치는 행정이 아니라 보듬고 안고 함께가는 그런 행정이 되어 바른 영성을 보이겠지요.
리플달기
12 3
박승복 (118.47.188.144)
2016-05-14 12:39:55
“가우처, 조선선교 133주년, 볼티모어에서 볼티모어까지!”
라고 쓰고, "하나님, 한국교회의 미래 감리교회에서 감리교회로"라고 읽고 싶다.

상당히 소상하게 밝혀진 연회 과정에서 진통과 약간의 편법이 보이기는 하지만 지혜도 함께 그려지는 것을 보고 마음이 따뜻하다. 물론, 이것은 또 다른 시험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시험을 당당하게 풀어갈 줄로 믿는다.
이번 볼티모어에서 되어진 일 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고, 마음에 새겨야 한다. 타산의 돌을 가져다가 우리집 밑 받침으로 사용하는 지혜가 오늘 한국 감리교회에 필요하다.

기도하며 응원한다. 미주 연회가 모범적 해법들을 내온 연회원들의 흔들림 없는 믿음에도 박수를 보낸다. 감리교 구성원으로 자랑이 되는 연회가 되어 새 바람을 불어 내기를 소망한다. 새로 선출된 감독과 총무에게도 하나님의 숨결이 귓가에 향기로 거하기를 기도한다.

하늘이 기뻐하는 일을 하는 감리교회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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