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K는 소도시 작은 아파트에서 혼자 산다. 아내와 사별한 그는 두 자녀 모두 결혼한 뒤 국민연금(100만원)만 갖고 생활한다. 텃밭을 가꾸며 소박하게 산다.  그의 재산은 소형아파트(공시지가 1억 4 천만원 정도)와 경차가 전부다. 그런데 얼마 전 그와 만나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그가 내는 건강보험료를 알게 되었다. 그가 매달 내는 건강보험료(지역가입자)는 11만원이 넘었다. 그 금액 산정 기준을 살펴보니 경차까지 고려하여 부과되고 있었다. K는 작년 전립선암 수술을 받고 치료하느라 빚을 졌다. 그런가하면 서울 사는 나의 선배는 자기 소유 아파트가 6억 정도 나가고 연금 수입만 해도 일 년에 수천만원인데  건강보험료는 단 한 푼도 안낸다. 자기 고급차도 끌고 다니는데 말이다.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인 아내의 피부양자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우리 건강보험 의료체계의 모순을 잘 드러내는 단적인  사례이다. 국민건강의 중요한 보루인 건강보험체계 중 보험료 부과체계의 모순이 심각하다. 소득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주택은 물론 전세, 월세 그리고 경차마저 재산으로 간주해 상대적으로 더 많은 보험료를 부과하는 점, 많은 소득이 있지만 피부양자로서 무임승차할 수 있도록 하는 점, 근로소득 외 별도 소득이 있는 직장 가입자에게 별도 소득에 대해 보험료를 부과하지 않는 점 등은 대표적인 모순이다. 이런 모순점들을 관통하는 특징은 가난한 자들로부터 보험금을 더 많이 걷어 부자들을 돕는다는 것이다. 이는 개인과 사회의 건강을 해치고 사회복지의 기본정신을 배신하는 체계요, 부익부빈익빈 사회구조를 조장하는 구조다. 합법적인 수탈 구조다.

누가 봐도 명백한 모순을 가진 건강보험체계를 국회는 왜 안 고칠까? 정부 관료들은 또 왜 가만히 있을까? 이와 관련된 학자들은 왜 침묵할까? 애당초 왜 이런 체계를 만들었을까?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돈을 더 많이 걷어 부자들을 더 부유하게 만드는 일!'

이 일을 자신의 사명이자 임무로 여기고 사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많이 박혀 있다. 소수의 부자들이 휘두르는 자본권력에 암암리에 매여 있는 대다수 국회의원(여, 야를 막론하고), 정권, 정부 관료, 학자들은 부자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부자들에게서 더 많은 돈을 걷어 가난한 사람들을 이롭게 하여 사회를 보다 더 건강하게 가꾸어 나가는 일은 더구나 할 수 없다. 아예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재분배(복지)에 소극적일뿐만 아니라 불의한 분배 자체 문제, 원천적인 임금격차 문제를 거론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은 공격적으로 대처한다. 자본권력에 성실하게 수종들수록 자신도 부자가 되거나 신분 상승할 수 있다고 믿고 경쟁적으로 부자들을 위한 법을 제정하거나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사람들의 강고한 세력이 우리 사회에 엄존한다. 미국이나 우리 같은 천민자본주의 사회일수록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언론은 독점자본권력의 시녀 노릇을 충실하게 하는 경향이 짙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7년 동안 깎아준 기업들의 법인세가 41조나 된다. 대기업들이 쌓아놓은 사내유보금이 1,000조가 넘는데 말이다.

북한에서 수령에게 하듯 여기서 자본권력에 충성하는 사람들이 제정하려고 꾸준히 애쓰는 법이 하나 있다. 그것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으로 거기엔 의료산업마저 재벌 대기업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만들려는 깊은 의도가 담겨있다. 문어발식 경영을 일삼아온 재벌들에게 의료사업까지  이윤추구의 도구로 내어주려는 숭고한 뜻이 그 기본법에 담겨있다. 사람보다 자본, 생명보다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독점자본이 더 질주할 수 있는 대로를 건설해 주는 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엔 참 많다.  최근 몇 년 동안 재벌 100대 기업이 쓸어간 순이익이 나라 전체 순이익의 60%가 넘는데, 의료마저 본격적으로 영리화하도록 판을 깔아주면 그 수치는 쭉쭉 더 올라갈 게 뻔하다. 그 100대 기업은 고용은 고작 4%만 하면서 그 많은 이익을 긁어간다. 그 대기업들은 이익은 철저히 사유화하고 손실이나 비용은 사회에 전가하는 생리를 유전자처럼 갖고 있다.

현실 기독교는 어떤가?

개신교, 가톨릭교회를 막론하고 대다수 교회들도 독점자본에게 수종들기는 마찬가지다. 돈이 왕 노릇하는 사회에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것은 예수를 마음과 삶의 왕(주권자)으로 모시고 산다는 것이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많은 목회자와 교인들은 돈왕을 거부하고 사랑과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기는커녕 오히려 정반대로 나간다. 즉 예수 이름을  이용하여 돈을 좇고 더 부자 되기 위해 매진한다.

복음서 특히 공관복음서가 우리에게 소개하는 예수의 치유 활동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1)가난한 사람들을 치유하는 일에 우선적으로 집중했다.

예수님은 그의 공생애 3년 대부분을 갈릴리 지역에서 보내셨다. 그곳은 당시 이스라엘의 변방으로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살던 곳이다. 그곳에 살면서 그는 각색 병자들을 많이 고치셨다. 당시 이스라엘사회는 심히 기운 운동장 같은 사회였다는 점을 염두에 둘 때, 이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경제 생산의 주역이지만 소외된 특히 의료적인 차원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예수의 치유 은총이 우선적으로 집중된 점은 매우 중요한 점이다. 한편 부활하신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자신을 만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오늘 예수의 영은 의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 속에서 활동하신다. 모든 이윤의 원천을 창출하지만 의료 혜택에서 소외된 사람들 속에 더욱 임재하시며 활동하신다.

(2)돈을 받지 않고 치유하셨다.

이는 토지공개념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점이다. '의료공개념'을 도출할 수 있는 사실이다. 병의 치유는 마치 공기와 같아서 누구나 차별없이 받아야하는 은총이다.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는 '아파도  치료비 걱정 없는 나라'다.  돈 받고 병 치유 기도하는 종교 사기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의료를 이윤의 극대화를 위한 도구로 삼는 행위나 체계는 예수와 상극이다.

(3)사회 구조적인 악을 고치는 사역

예수의 병 고침 -치유사역은 사회구조적인 고침과 더불어 진행되었다.  갈릴리지역에서 개개인의 병을 고치는 일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의료의 사회구조적인 악과 마주하게 된다. 즉 착취하고 수탈하는 구조가 농후한 사회 속에서 노동을 하거나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착취와 수탈을 당해 제대로 먹지 못하고 몸 관리도 허술하게 하게 되어 병들 수밖에 없는 현실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소수 지배계층(종교, 정치, 경제 등의 지배 계층)과 로마제국의 식민지배 권력자들은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을 착취, 수탈하여 병들게 하는 주범이었다. 로마제국은 소수 이스라엘 지배계층을 이용하며 일반 백성을 누르고 수탈하며 착취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큰 재앙이 있을 것이다' ,'슬피 울며 이를 갈 게 되리라' 등 날 선 비판을 쏟아부었다. 성실하게 일하며 사는 사람들을 병들게 하는 주범들과 그들이 만든 불의한 체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말과 행동을 예수께서는 지속적으로 하셨다. 결국 그 주범들에게 잡혀 죽임을 당했지만 예수의 영(생각과 뜻)은 그의 제자들에게 부어지고 이어졌다.  십자가 사건은 예수와 불의한 자들의 충돌 지점, 예수와 불의한 체계와 맞부딪친 지점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그러나 부활사건은 세상을 경영하시는 하나님께서 예수가 옳았음을 만천하에 드러낸 사건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예수 이름으로 하는 치유사역(육체 질병, 정신질환, 내적 치유 등)이 개인의 치병 차원에만 머문다면 그것은 절름발이 치유라 할 수 있다. 더구나 그 치유사역이 사회구조적인 악을 보지 못하도록 하는 경우라면 그것은 예수의 성령을 거스른다. 가령, 병든 원인을 오로지 개인의 잘못이나 귀신같은 영적 존재에게 돌리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는 것이다.  이렇게 성령을 거스르는 사역은 결국 착취와 수탈을 통해 사람들을 병들게 만드는 사악한 자들의 악을 조장하는 짓이 된다.

'부자가 더 부유해질수록  가난한 사람도 더 잘 살게 된다.'

'강자가 더 강해져야 약자도 더 보호를 받는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이나 의식, 신념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결코 건강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분명 병든 생각과 신념이다.

예수는 불의한 현실 체계에 맹종하거나 순응한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그는 그에 도전하는 사람이었다. 도전하는 사람이라야 그리스도의 사람이다. 건강한 사람이다. 도전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건강해지기도 한다. 돈이 주인 노릇하는 체계에 도전하면서 사랑이신 하나님의 주권을 세우는 삶을 사는 사람은 영생한다. 예수를 믿음으로 얻는 칭의-구원은 도전하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곧 예수를 마음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그를 따라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달성목사(평안감리교회 .'옆구리 뚫린 아담의 기쁨'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