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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상화'와 개신교의 변질'설교 우상화'는 종교적 끼워팔기
신성남  |  canavillage@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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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05월 06일 (금) 06:15:51
최종편집 : 2016년 05월 11일 (수) 04:36:40 [조회수 : 1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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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원로 신학자인 어느 목사님의 쓴 경험담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분이 신학대학 교수 시절 한 교회의 초청을 받아 설교한 후 밖으로 나오다가 본의 아니게 뒤에서 걸어오시던 할머니 두 분의 대화를 들었다고 한다.

한 분이 "오늘 목사님 설교 알아듣겠어요?"라고 하니, 다른 분이 "우리같이 무식한 노인이 어떻게 박사이신 목사님의 설교를 알아들을 수 있겠어요. 당연히 못 알아들을 수밖에요." 이런 대화를 듣게 된 그 목사께서는 뒤통수를 얻어맞는 듯한 큰 충격을 느끼고, 그 후로는 아주 쉬운 설교 즉 모든 청중이 알아들을 수 있는 설교를 하기로 굳게 맘 먹었다고 한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대리자'가 아니라 '전달자'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은 일부 난해한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사실 나머지 대부분은 중고등학생 정도의 독해력만 있어도 잘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래서 과거 선교 초기에 중국에서 만든 한글 성경을 번역하던 사람들이나, 또는 그것을 조선으로 운반하던 사람들 중에는 호기심으로 성경을 읽다가 회심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비록 본격적인 설교나 강해의 도움이 없었지만 그저 하나님 말씀에 스치기만 해도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다. 이는 성경이 스스로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고 자증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그러나 필자는 어떤 경우이든 '설교무용론'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바른 설교는 매우 유익하며 공적 예배의 중요한 부분이다. 초신자에게는 물론 성숙한 신자에게도 설교는 신앙 생활에 큰 도움을 준다. 설교에 오류가 완전히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건강한 설교는 거의 대부분 성경적인 것 또한 틀림없는 사실이다.

다만 특정인의 설교를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맹신하는 것은 다소 경계해야 한다고 본다. 흔히 "설교를 하나님 말씀으로 받으라"고 주장할 때 자주 인용하는 구절이 있다. "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즉 초대교회 성도들이 사도들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으니, 현시대의 성도들도 목사의 설교를 하나님 말씀으로 받으라는 주문이다.

그러나 이런 논리에는 대단한 착각이 있다. 목사는 '사도'가 아니다. 우리는 목사와 사도의 차이를 명확히 구별해야 한다. 예수님이 직접 선택한 사도들은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특별 계시를 전하던 아주 특수한 사역자들이었다. 사도들의 설교나 가르침은 나중에 정경화하여 신약 성경이 되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그들의 증언을 끝으로 유일한 하나님 말씀인 성경이 '완료'되었다.

바로 이 점이 오늘날 우리가 사람의 설교를 함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따라서 만일 누구라도 자신의 설교가 하나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목사가 있다면, 그것은 곧 자기가 새로운 사도나 선지자라는 주장과 크게 다름이 없다. 이는 마치 자신의 설교집이 새로운 성경이라는 주장만큼이나 광오한 억지이다.

 

'사람의 말'도 들어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사역이고, 거기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있다. 정상적인 설교라면 그 내용 대부분이 하나님 말씀이라는 것 또한 옳은 표현이다. 그러나 설교에는 사람의 말과 논리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그래서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지, 설교 자체가 하나님 말씀은 아니다. "설교 속에 하나님 말씀이 들어있다"는 말과 "설교가 하나님 말씀이다"라는 말은 아주 크게 다르다.

더구나 요즘 오로지 하나님 말씀만 풀이하며 전해 주는 설교가 얼마나 있나. 설사 있더라도, 그 전달 과정에서 견해 차이와 잡설과 오류의 가능성이 늘 상존하고 있지 않은가. 다시 말해서 '배달 사고'가 수시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설교무오설'은 '목사무오설'과 같은 연장선에 있다.

물론 일반적으로 설교를 하나님 말씀처럼 중시하며 듣는 태도는 바람직한 것이다. 바른 설교라면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설교자가 아무리 경건하고 탁월하다고 해도 그는 결코 완벽할 수 없다. 하나님 말씀은 무오하고 완전하지만 인간의 설교는 그렇지 못하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우리는 '설교=하나님 말씀'이라는 도식에는 궁극적으로 동의할 수가 없고, 어떤 경우이든 설교는 그 내용을 문장마다 반드시 검증해서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설교는 시대에 따라 변한 경우가 많다. 전통적으로 기독교는 "여성은 교회에서 말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설교했다. 그러나 요즘은 여성 목사가 설교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면 과거의 설교는 잘못이고 현재의 설교는 맞는 것인가. 도대체 어느 것이 하나님 말씀인가. 설교자에 따라 하나님 말씀이 바뀐다는 말인가.

잘 살펴보면 이런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다. 노예제도, 사제제도, 유아세례, 성찬의식, 정치참여, 청부론, 동성애, 교회론, 은사론, 방언, 십일조, 주일성수, 성전주의, 성공주의, 성직주의, 그리고 기복신앙 등이 그 좋은 예이다. 이런 사안들에 대해 많은 설교자들은 다양한 견해를 갖고 서로 다른 설교를 하고 있다. 따라서 세상에 완전히 무오류로 설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의문이다. 결국 설교를 무조건 하나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비상식적인 말인지 잘 알 수 있다.

최근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세계의 몇몇 유명 여성 정치인들 있잖아요. 대부분은 육중한 몸매를 자랑하고 튼튼한 거구를 자랑하는 분들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 대통령님께서는 여성으로서의 미와 그리고 모성애적인 따뜻한 미소까지 갖고 계십니다. 이럴 때 박수를 안 치시는 분들은 좀 사상이 불순하지 않나 싶다."라고 발언한 어느 대형 교회 목사의 조잡한 설교까지 우리가 하나님 말씀으로 받을 수는 없다. 아니면 이런 저급한 설교도 성령의 감화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여전히 주장하고 싶나.

 

설교는 분별해서 들어야

그래서 설교는 분별해서 들어야 한다. 무슨 조건이나 단서를 추가하든 설교가 하나님 말씀이라는 주장은 지극히 무모하다. 그것은 설교를 우상화하는 행위이다. '하나님 말씀'은 반드시 믿어야 하나, '목사님 말씀'을 모두 믿어선 곤란하다. 아무리 훌륭한 설교라도 성경을 풀이하는 인간의 말과 논리와 이해는 온전할 수 없다.

초기 교회의 뛰어난 교부들의 가르침에도 신학적 오류는 있었다. 사실 후일 중세 교회의 신학적 변질과 타락에 여러 교부들의 책임이 적지 않다. 또한 개혁자 루터의 주장에도 오류가 있었다. 심지어 사도들의 말과 처신에도 오류가 있었다. 예수님은 사도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막8:33)"고 하셨다. 그런데 어찌 목사가 무오하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따라서 마치 성경의 '축자영감설'처럼 오늘날 설교할 때에 목회자들이 모두 무슨 특별한 영감을 받아 구약의 선지자나 신약의 사도처럼 신의 계시를 직접 대언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큰 오해이다. 보통의 인간은 무오한 존재가 아니며, 제 아무리 객관적 해석을 위한 노력을 해도 결국 설교는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목사 개인의 주관적인 해석'과 결코 무관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현대 사회에서 어떤 설교가 성경적으로 바른지 아닌지를 판정한다는 것은 지극히 복잡한 문제이다. 일반 교인들 중에 그것을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울러 지상의 그 어떤 교단이나 신학자가 객관적으로 설교를 무오하게 평가할 수 있는 절대적 권한을 갖고 있을까.

그럼에도 설교의 정의를 일반화하여 "설교를 하나님 말씀으로 받으라"고 요구한다면 그게 과연 타당한 일인가. 만약에 그런 논리가 옳다면 이단과 사이비의 설교에도 무조건 "아멘"하라는 말이나 별로 다르지 않다.

더구나 매우 유감스럽게도 그동안 설교는 오용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다. 그리고 실제로 멀쩡한 대형 교회에서조차 정말 같잖은 설교가 결코 적지 않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사과를 배라고 하면 거짓말쟁이가 되지만, 교회에서는 사과를 배라고 하면 믿음이 큰 자가 된다"는 세인들의 조소까지 나오고 있다.

잘못된 설교가 신도들을 얼마나 큰 맹신으로 이끌고 있는지를 시사해주는 말이다. 기복신앙으로 병든 한국 개신교의 실상 또한 설교 남용의 전형적인 예이다.

 

'설교 우상화'는 종교적 끼워팔기

물론 설교는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귀한 사역이다. 따라서 설교를 존중하며 경청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설교 내용 전체가 '통채로' 모두 하나님 말씀과 동격이라는 식의 주장은 정말 터무니 없는 것이다. 설교자는 진리의 '전달자'이지 결코 하나님의 '대리자'는 아니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막4:24)"고 말씀하셨다.

어떤 신학자들은 일보후퇴하여 '바른 설교라면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조건적 표현조차 매우 위험한 논리이다. 어떤 경우이든, 설사 인간의 판단으로 볼 때 제 아무리 옳고 바른 설교라고 확신해도, 그것이 절대로 성경의 권위를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설교를 하나님 말씀으로 받을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설교자가 아무리 신학적으로 또는 인격적으로 훌륭해도 결국 그가 성경을 쓴 사도나 선지자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설교자의 위치는 일반 교인과 특별히 다른 자리가 아니다.

신약의 성도들은 사도나 선지자의 정신과 사역을 물려받아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스스로 사도나 선지자의 지위에 올라서라는 의미는 아니다. 성도들은 그들의 사역을 승계하는 것이지, 그들의 신분과 지위를 승계하는 것이 아니다. 사도와 선지자는 목사나 장로처럼 회중이 세운 자리가 아니다. 예수님이 직접 택하신 사도나 하나님이 직접 세우신 선지자는 선출직도 아니고 세습직도 아니다.

따라서 "설교를 하나님 말씀으로 받으라"는 요구는 사실상 '설교 우상화'이다. 그것은 '목사님 말씀'을 '하나님 말씀'에 끼워파는 상업적 행위이다.

저들은 굳이 '하나님의 말씀'에 '목사님의 해석'을 양념으로 얹어서 이를 모두 신의 뜻으로 함께 받으라고 한다. 설교 속에는 성경의 내용이 많이 들어있으니, 나머지 부분인 인간의 해석과 군더더기도 안심하고 믿고 하나님 말씀으로 받으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과연 중세 교황적 설교관과 무엇이 다른가. "성경 해석의 최종 권한을 교황이 갖고 있다"는 중세교회 논리와 바로 직결된다. 단지 교황 대신에 목사가 그 자리를 대체했을 뿐이다.

그러니 순진한 신도들을 홀리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상술이 없다. 설교를 우상화하려는 그 속셈은 결국 '목사 우상화'에 있기 때문이다. 설교가 통채로 하나님 말씀과 동격으로 인정되는 그 순간 목사는 자연히 하나님의 대언자나 대리자로 승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마땅히 그리스도 교회의 종이어야 할 목사가 상전이 되고, 거꾸로 주의 자녀인 신도들이 앵벌이 종노릇하고 있는 작금의 일부 교회 현실 역시 이 설교 우상화 작업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특별 계시인 성경을 '온전한 하나님 말씀'으로 받았다. 거기에는 더할 것도 없고, 감할 것도 없다. 헌데 성경 외에 무엇을 또 추가하여 하나님 말씀으로 더 받아야 한다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아니면 요즘 설교자들은 주일마다 무슨 새로운 계시라도 더 알려주고 있다는 말인가.

성도에게 신구약 성경 외에 더 받아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란 결단코 단 한 줄도 없다.

"현대 교역자가 의식적으로 혹은 부주의하여 사도나 선지자의 위치에 서는 과오를 결코 범해서는 안 된다. 목사 자신이 일반 신자들과 다른 위치에 있는 듯이 자처하게 되면 그는 그런 과오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교역자는 평교인과 함께 일반 제사장의 신분일 뿐(벧전2:9) 전혀 차별이 없다. 그는 평교인과 마찬가지로 은사대로 봉사하는 자이다. 교회에는 봉사자가 있을 뿐이고 지배자는 없다." - 박윤선, 개혁주의 교리학, 영음사 2003, p.374

신성남 집사 /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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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자 (116.38.181.51)
2016-06-12 01:01:57
설교의 무용론이라????
아마 이런 주장들을 따라 가다보면 서구 유럽의 형태의 기독교(다 몰락해 버리고 신앙은 무늬만 남은)가 되어 있을것 입니다.
저자가 호주에 산다니 어느정도 가늠이 됩니다.
글 몇개를 읽어보니 동성애를 무척이나 옹오하던데...
기독교의 개혁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몰락에 관심이 있는듯...ㅋㅋ
왜냐하면 동성애자들의 전략이 교회와 목사에대한 공격과 몰락에 촛점 맞추기 때문입니다.
저자의 글들을 보면 교회의 목사님들이 하등 필요 없는 존재요 사기꾼 같이 느껴지는데...호주는 그런가??? 아닐텐데...ㅋㅋ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면 그렇게 표현하지 않습니다.
미혹당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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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강숙자 (118.222.232.36)
2016-05-18 10:30:46
신성남 집사님!~~~~~~
참으로 오랜만에 당당NEWS에 님의글,검색 했습니다
2015년 본인이 신집사님의 칼럼"칼빈은 세르베투스의 처형을 주도했다"
라는 제목으로 신집사님의 개혁측의 다수 공격에 처했을때에
성심껏 그들에게 신집사님의 글을 변호했습니다

근데: 위의글은 무슨 마른 하늘에 날벼락 입니까?
신집사님은 하나님의 선을 악으로 갚는 분이었습니까?

위의글 전체 맥락은 말씀사역자인 목회자들은
한마디로 일반종교 지도자들보다 더욱 하류급으로 작성기류가
흐르는게 말씀사역자는 도외시한 성경만 각자 알면 된다식인데
님의 사상이 과거 무교회주의자 였던 웟치만니 사상으로
결국엔 단독 인본주의로 철저한 이단이었습니다

호주에 상주하시면서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이간싸움하는데 이다지 수많은 시간을 소요하시나요?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단의영들이 님의 무책임한 열린글을 마주할때 어떤기류가 난무하겠나요?

아울러 하나님의말씀을 대언한다는 용어자체가 무례하다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미비하나마 대언한다는 목회자들의 말씀이
겸손의 표현입니다 근데! 님은 목사들이 대언아닌 전달이란 표현이 적당하단게
무슨 뜻입니까? 그리스도의영은 각 사역자와 성도들과
영혼속에 내주 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전달이란 용어가 아닌
겸허한 대언이라고 표현되는 것입니다

혹여< 주위에서 신집사님께 글만 쓸게 아니라 목사직분도
받아보시죠? 라고 부추기는 맴버가 있다면
기도후 실행에 옮겨보십시요..
(신성남집사님의 체면을 상당히 고려했습니다
믿음은 들음으로 난다는거 중대차한 하나님의 고유영역이므로
님의 자유를 그리스도의 지시 안받으면 그자유가 님을 망칠수도 있습니다
설교권이 인간편에서 죽음과도 맞바꾸는 고된작업이며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권위에 속하므로 피말리는 수고가 있다는거
알립니다

그러면 목회의소명이 얼마나 고통과단련이 수반되는 죽음의길인지
피꺼꾸러는 내면을 다시 확인하실 겁니다
신집사님은 땅을 치고 통곡할날 올 것입니다
글과 말은 자유이나 그에 따른 책임은 져야합니다

유튜브의 저를 통한 하나님의 메세지에 검색하지 마십시요
각국가별 검색코너가 뜨게 돼어있습니다 ~ 강숙자목사 드림~

PS:당당NEWS>심자득목사앞으로 신성남집사와 식사하란 금액(2015년11/25일)
돌려주십시요 그담달부터 입금한 3개월간의 후원금은 받지 않겠습니다
본인의 계좌번호:부산은행: 300.12. 008315.4번 예금주:강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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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7
신성남 (49.50.206.22)
2016-05-18 16:53:02
강숙자 목사님, 귀한 의견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지만... 의견을 달리 하신다니 저 역시 매우 유감입니다.

구약시대에는 모세나 아론같은 대언자나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특별계시인 신약 성경의 완결 이 후 신약교회에 더 이상의 선지자나 사도나 대언자는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만이 유일한 대언자이시지요.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한1서 2:1)." 그 외에 신약 성경 어디에도 다른 대언자(대리자)를 세운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아울러 '설교권'이란 말 역시 성경 어디에도 없는 말입니다. 공동체가 필요한 경우 목사가 아닌 다른 직분의 성도도 설교할 수 있다고 봅니다. 베드로뿐만이 아니라, 빌립과 스데반도 설교를 했습니다. 신약에서는 모든 성도가 왕같은 제사장이니까요.

아울러 예수님께서는 단지...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태복음 28:20)."고 하셨습니다. 사도들에게조차 단지 가르치라고 했지, 대언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목회의 소명을 부인한 적은 없습니다. 목회는 귀한 사역입니다. 그러나 목회자가 무슨 특별한 '대언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목사는 사도도 아니고 선지자도 아니고... 오히려 신약성경에 언급한 '가르치는 장로'가 목회자 본연의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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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
류인용 (1.234.194.161)
2016-05-19 22:46:39
전적으로 신집사님 말에 동감합니다
전적으로 신집사님 주장에 동감합니다
성경은 분명 교사되기를 좋아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읍니다 "[약 3: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는 말을 너무 무시하는 것은 누구인지 모르지만
신집사님 글과 같이 목회는 귀한 사역이지 특별하지도 않은 위험한 자리임을 성경은 경고하고 있으며 목사 사도도 선지자도 아닌 은사로 받은 귀한 일꾼이지 주인은 아닙니다 가르치는 장로서의 본연의 자세이지... 그러나 대부분 목사는 성경의 경고를 너무 무시하는것같아 안따까움 뿐입니다
디도서와 디모데서를 더욱 조심스럽게 상고할 필요가.....
목사가 대단한 권위의 자리도 다스림의 자리도 아닌데...
목사직을 넘 힘줘서 강하게 말하는것이 좀 거북스럽고 당혹스럽러운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넘 모르는 목사님들이 많은것 같아....
섬기는 것이지 섬김을 받는것이 아니라고 했구만 자꾸 섬김을 받을려구하니 엉뚱한 소리를 하지...
딤후2:15의 말씀과 같이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데.....
대언자니 대리자니 설교권이니 .... 로 억압할려고 하니...참....
말하는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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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0
포이멘 (183.109.99.69)
2016-05-17 05:58:21
.
설교가 왜 생겼을까?

종교개혁의 원인 중의 하나가 금속활자의 발명이었지.

성경이 번역되어졌지만 성도들이 글을 읽을 수가 없어서

글을 읽어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들이 지금의 목사가 된 것이 아닐까?

500년 전에 갑자기 나타난 목사라는 직분

성경에도 없는 직분이 생겨난 이유는

성경을 읽어줄 사람이 필요해서가 아닐까?

지금의 세상에 성경을 읽을 수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렇다면 목사의 역할도 이제 끝난 것이 아닐까?

요한복음 14장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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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0
아래 글에 덧붙여 (125.197.206.116)
2016-05-14 16:38:58
종교 업자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각자가 주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말씀 한 구절 읽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 범벅으로 만들고 성도 개개인 호명하여 칭찬하거나 망신주기도 하고 정치 이야기 하는 쓰레기 설교 꽤나 많습니다. 정신 잘못차리면 어어 하다가 그냥 뭐가 뭔지도 모르고 아멘하는 경우 많습니다. 주의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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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0
감사합니다 (125.197.206.116)
2016-05-14 16:35:08
깨우침을 주시는 글 감사합니다
일본에 살고 있는 신 집사님의 애독자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 구절을 적확하게 전할 때 그것을 하나님 말씀이라고 하지, 목사의 설교 자체는 결코 하나님 말씀이라고 할 수 없지요. 끊임 없이 깨우침을 주는 글 감사 드리며, 집사님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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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0
lois (118.217.23.37)
2016-05-11 17:55:47
주님의 보배이신 산상수훈 암송자 여러분!
본의 아닌 일이 발생 했네요 용서하세요. 하비루님의 글에 공감하며 리플로 여러분의 말씀 암송에 후속조치를 대신해서 순수하게 유언 같이 쓴 글인데 무슨 연유인지 삭제 됬군요
문자 받으시고 늦게 들어와 읽어보지 못하신 분들이 의아해 하실가봐 말씀드립니다
선포되는 말씀은 편만한데 심령에 새겨 모셔들이지 않은 주림과 갈함으로 영적 기근이 심각한 시대입니다
주님 오실때 까지 말씀이신 주님과 동행하십시요 임마누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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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
상식이 통하는 교회 (175.213.129.236)
2016-05-10 18:33:24
신성남 집사님 감사합니다.^^* 집사님을 응원합니다.
목사들에게 잘못된 설교로 쇠뇌되어서 이것이 된장인지 고추장인지 모르는 무지한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깨우쳐주는 글 감사합니다.^^*!!! 집사님이 쓴 글을 목사들이 잃으면 자기야망으로 삼는 돈사(먹사 목사)들은 아니라고 하죠.ㅠㅠ 목사들이 진심으로 주님앞에 진실되게 하면 한국 교회가 산다. 목사가 죽어야 한국교회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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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0
하비루 (175.194.201.169)
2016-05-09 00:08:21
교회의 본질
오늘날의 현대교회가 제의중심, 설교중심에 치중하다보니 이런 결과에까지 이르게 된 것 같습니다. 대안으로는 유태인들이 해왔던 신명기식성경공부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즉 가정에서부터 식구들끼리 모여 서로 질문과 토의를 하면서 공부하는 방법입니다. 특히 어린이들의 교육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되고요. 교회에서도 제의중심의 예배에서 벗어나 그룹성경공부방식으로 전환하여 성경을 공동으로 함께 생각하고 해석해 나간다면 설교중심이 아닌 진정한 하나님말씀중심의 예배가 이루어질수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물론 추락하고 있는 한국교회가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소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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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0
종교개혁이 현실이 되기를 (218.233.98.178)
2016-05-08 14:34:38
한국 교회의 타락현상
고등종교가 타락하면 가장 먼저 성직자가 급증한다고 했습니다. 현재 국내 각종 신학교에 다니고 있는 신학생 총수는, 대한민국을 제외한 세계 모든 나라 신학생 보다 더 많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대형 한인교회 역시 저마다 신학교를 운영, 미국 현지에서 배출되는 한인신학생의 수 또한 엄청납니다. 뿐만아니라 미국과 캐나다 현지의 웬만한 신학교마다 한국인이 다수를 점하고 있습니다.

제네바 대학 신학부에 지원자가 단 한명도 없는 해도 있었습니다. 그나마 유럽의 일부 대학 신학부는 한국 학생들로 명맥을 유지하고 잇습니다. 남미에서는 성직자 지망생이 없어 그곳 가톨릭 교회는 하나님은 당신을 부르십닏.라는 포스터르시내 곳곳에 부착 어렵사리 지원자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그런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국인은 예외입니다. 어딜 가나 신학생들도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지, 아니면 타라한 고등종교에서 나타나는 한국 교회 타락의 증거인지, 이미 목사가 되었거나 앞으로 되기 원하는 우리 모두 정직하게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홍수가 나면 사방이 물 천지가 됩니다. 문자 그대로 물난리입니다. 앞에도 물이요, 뒤에도 물이요, 옆에도 물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홍수로 사방이 물 천지가 되면 정작 마실 물이 없어집니다. 대한민국 사방이 교회요, 가는 곳마다 목사와 신학생 천지건만 막상 교인들은 믿고 존경할 만한 목사님이 없다고 다닐 교회가 없다고 다닐 교회가 없다고 한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체 무엇을 의마하는 것입니까?

고등종교 타락의 두 번쨰 현상은 종교기관의 급증이라고 했습니다. 이 관점으로 본 한국 교회의 실태는 어떻습니까? 한국 교회의 역사는 한 마디로 중단 없는 분열의 역사였습니다. 이것은 수요와 공급의 원칙상 당연한 결과입니다. 목회자가 급증한 만큼 그들이 일할 교회의 수 역시 늘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목회자의 수요와 공급이 맞아 떨어지기까지, 앞으로도 교회는 어떤 명분으로든 끊임없이 분열할 것입니다. 교회가 분열해야 그들 모두 일할 자리가 창출되기 때문입니다. -- 비젼의사람 채 중에서 홍성사 출판 100주년 기념교회 이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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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112.133.130.160)
2016-05-07 13:05:45
목자라고 다 같은 목자가 아니다. 성경속에 목자는 하나님 소속의 목자와 사단 소속의 목자가 있다. 하나님의 소속의 목자는 예언의 목자, 약속의 목자, 일반 목자가 있다.

예언의 목자는 이사야부터 말라기까지의 선지자들로서 예언서를 기록한 목자들이며, 약속의 목자는 모세, 예수, 예수님의 사자(계22:16 참고) 같이 하나님의 예언을 이땅에 이루는 성경에 약속한 목자이다. 일반 목자는 약속의 목자가 이룬 것을 전하는 목자이다.

오늘날 일반 목자들이 예수님 승천후 천문이 막혀 계시 말씀을 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말만 전하므로 멸시를 받는 것이 사실이나, 목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목자이니 존경을 받아야 하는 것이 맞다.

사단 소속의 거짓 목자는 봉함된 말씀을 풀지 못해 사람의 생각으로 지어내서 가르치는 목자이다. 2천년 전 하늘의 계시 말씀을 가르치는 예수님을 이단이라며 교인들에게 거짓말을 가르치고 예수를 죽였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 같은 목자들이 사단의 조종을 받는 거짓 목자이다(요8:44 참고).

하늘에서 온 계시 말씀이 아닌 사람의 계명은 배우면 배울수록 하나님과 멀어져서 하나님 소속을 핍박하고 죽이는 일을 하게 된다. 성경속에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다 죽인 자들이 사단의 목자들이다.

사단의 거짓 목자도 성경을 들고 하나님이 보내신 목자라고 말하므로 교인들이 속은 것이다. 그러니까 목자가 사단에게 속으니 교인들도 사단에게 속은 것이다. 다음 구절을 보면 금방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 데살로니가후서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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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엘 (118.222.232.36)
2016-05-08 21:05:04
성경엔 지성소가 유재열장막이며,성소가 이만희란 구절은 한군데도 없으며
배도자가 유재열,멸망자가 한국교회 목사님들,새구원자가 이만희란 해괴망측한 노정교리가 없슴을 알립니다
무등산님은 어쩌다 짬뽕짜집기
사단교리에 미혹되었는가요?
이유야 어찌됐건 속히 성경말씀만을 붙들지 않으면
성경억지자의해석하는 이만희씨를 추종한 죄로 삼위하나님께 버림받음을
명심하시어 진정한 보혜사되신 성령하나님께 바른진리만을
깨닫고 돌아오게 해달라는 간곡한 기도하시고 돌이키십시요~!!
이만희교리 듣다가는 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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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112.133.130.160)
2016-05-09 07:33:45
진정으로 나를 걱정하신다면 일대일 카톡 토론을 제의 합니다. 내 번호입니다. 010 4633 5466 저장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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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112.133.130.160)
2016-05-09 06:37:48
내가 쓴 글에 대해서만 이의를 달아주십시오. 기왕에 나왔으니 설명드리지요. 구약 성경에도 구원자가 예수라는 글은 한 글자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증거는 예수님 스스로 구약 성경의 내용대로 자기가 자기를 증거한 말씀을 제자들이 구약 성경의 내용과 예수님의 행적을 보고 듣고 만지고 깨닫고 예수가 구원자임을 인정하고 전했기 때문에 예수교회가 창조된 것입니다. 성경의 봉함된 예언은 실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일례로 이사야는 처녀가 아들을 낳을 거라고 예언했는데, 세상천지에 처녀가 아들을 어떻게 낳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출현함으로 비로소 그 뜻을 깨닫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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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멘 (183.109.99.69)
2016-05-07 18:28:32
사단의 거짓 목자 이만희도 성경을 들고 하나님이 보내신 목자라고 말하므로 교인들이 속은 것이다. 그러니까 목자가 사단에게 속으니 교인들도 사단에게 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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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112.133.130.160)
2016-05-08 18:35:05
내가 쓴 글의 내용에 대해서만 이의를 달아주십시오. 성경은 역사와 교훈의 내용도 기록되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예언과 성취의 노정이 반복된 역사를 기록한 것입니다. 모세 예수 예수의 사자 같이 성경의 노정대로 출현하지 않는 목자는 다 사단의 목자입니다. 이제 남은 예언은 요한계시록입니다.

요한계시록의 각본에는 예수의 사자의 출현 노정이 자세하게 약속이 되었습니다. 그 약속대로 출현하지 않는 자가 약속의 목자라고 말하면 그가 사단의 조종을 받는 목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약속의 목자인가 사단의 목자인가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은 그가 증거하는 말이 요한계시록의 각본과 일치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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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본부 (43.230.219.94)
2016-05-07 01:26:36
목사로 인한 트라우마 가 있는건지...
나도 평신도 이지만, 이러한 얘기를 굳이 하지 않아도 웬만한 신도들은
다 가려서, 더 박식하게 구분하여 설교를 듣고 있으니 걱정 붙들어 메시라!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기 쉽고, 재미 있게 전달한다면 그 설교의 총체적인
목적에 충실 하였다는 것을 그누가 부정하랴~

인간의 언어기술(전달력)은 다 개성에 따라, 해석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그
목적성에 있어서는 다같이 하나의 목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어느곳, 어느 분야 에서나 소수의 부정적인 사람은 다 있고~)

그러한 과정에서 당연히 인간의 논리나, 예화나 좀 남다른 전달력이 당연히 있겠지, 근데 그것을 인간의 생각이기 때문에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설교우상화? 와~ 참~

이리 속좁은 인간들이 설교를 들으며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보려하지 않고, 요대목은 "인간생각" 요대목은 "성경말씀" 머~ 이리 따지고 있나?...그러니
좋은 설교를 들어도 은혜가 않되죠~. 그리고 설교 듣고 나와 가래침이나 뱉고 집으로 가면서 투덜대겠지... 이러한 지면 할애가 아깝다!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이나 착실히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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ㅉㅉㅉ (211.44.187.137)
2016-05-14 12:14:37
혀차는 소리다..ㅉ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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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엘 (118.222.232.36)
2016-05-08 21:20:25
개혁본부님의 견해에 공감 합니다 위칼럼님이 아마
오늘날 소수 목회자의 야누스의 기질보고 다양한 각도의 견해이신거 같은데
목사설교는 말씀 전할 의무 사역자들의 고유 강단권이라

대다수 심혈을 기울이는 줄 아는데 칼럼인이 지나치게 예민반응을
보이네요. 성경외에 설교권 폄하견해는 굉장히 위험한데
칼럼인께서 각도를 수정하셔야 될거 같습니다
진리의교회는 인간종교단체와 다른 설교에서 진리가 묻어나오며
설교자의 말씀이 비중이 큰데 신칼럼인은 가볍게 언급하시는
뉘앙스가 풍깁니다 소목사는 조찬기도회때 천박한 발언으로
다수가 실망스러웠던 일은 맞습니다

신칼럼인께서 목사의 설교권 중대성은 하나님께 깊히 회개하셔야
할듯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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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얘기나 (59.27.233.30)
2016-05-07 12:24:14
구조적인 문제는
아무 얘기나 막 던지고, 그릇된 행실을 보이고, 공금을 횡령해도 별 탈이 없다는 것이다. 조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를 바로잡을 제도가 없는한 아무리 이야기해도 나아지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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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철 (59.13.41.169)
2016-05-07 08:39:38
왜 이런글이 회자 되는지 현실이 참 안타까울뿐...그러나 짚고 넘어가야 할것은 설교가 다 설교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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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a et Labora (218.155.76.123)
2016-05-07 09:41:37
신 집사님, 늘 감동적인 님의 글에 감사를 드립니다.
신성남 집사님의 글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군요!
이글의 독해력이 없이 비난하는 이들이야말로 설교를 꼭 그런식으로 듣는다는 증거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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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본부 (210.210.217.71)
2016-05-12 12:04:55
그 글 속에 숨어 있는 중심을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분은 진정성 있는 글을 쓰려는 것보다 어떻게하면
이목을 집중 시키는 제목과 내용으로 "클릭수" 더 올릴까? 그 연구가 더중요한분 인것 같습니다.
그래서 계속 공교회의 내부를 파 헤치는듯한 글을 남발하고 있으며, 얼듯보면
그글이 시원하게 느껴질지 모르나... 결국 우리 크리스챤들에게 도움이 될까?
라는 의문을 갖게 되죠.

글을 쭉~ 읽다보면 그 사람의 그 속마음도 같이 읽히게 되는데 제 개인적으로는 정말 기독교를 걱정한다면 좀더 연구하고 좀더 체계적인 논리로, 진정성이 느껴지는 그 필력으로 대중들을 감동/은혜? 시켜야 합니다.

걍 나쁜모습들을 시끄럽게 떠들어대는것....이게 글은 아니죠. 또한 크리스챤들에 대한 걱정 또한 아니라고 봅니다.

정말 이분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그 진정한 신앙의 마음이 우리에게 은혜가될수 있는 글을 쓰게 하옵소서" 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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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처럼 (59.1.64.134)
2016-05-14 11:04:08
개혁본부님의 말에 공감합니다.
신집사라 하는 분은 믿음이나 신앙에 대해 무관심한 분 같습니다.
주의해야할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 한국교회의 문제들은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원인을 제공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 토양이 되다보니까 신집사라는 분의 말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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