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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과 기성, 그리고 미성
이진경  |  jinkyung.lee@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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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04월 30일 (토) 01:07:31 [조회수 : 6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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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이 짓는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생각이 에너지다’,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잘 자, 내 꿈 꿔’ 등 어디선가 들어본 이 유명 광고 카피들을 창작한 광고인 박웅현이 출연했던 방송을 우연히 들은 적이 있었다. 거기서 그는 기존(旣存), 기성(旣成), 미성(未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불교에서 그런 얘기 하죠. 9할 이상은 기존이고 나머지 1할의 9할 이상은 기성이다. 미성은 1할의 1할일 뿐이다.” 그러면서 그는 그 단어들의 개념을 이렇게 설명했다. 기존(旣存)은 이미 존재하는 것이다. 이 기존의 것들은 결코 손대거나 바꿀 수 없다. 예를 들어 태어난 시대, 시대가 굴러가는 모습, 정치 등은 바꿀 수 없는 90%의 기존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노력할 부분은 나머지 10%에 해당한다. 그런데 다시 이 10%의 90%는 기성(旣成), 즉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만일 내 나이가 20대라면 어떤 집에 태어나 어떤 부모 밑에서 어떻게 자랐고 어떤 좌절과 실수를 겪으며 살아왔는지는 이미 이루어진 일에 속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 9할의 기존과 남은 1할의 9할인 기성을 제외한 것이 미성(未成), 즉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100 중에 하나, 단 1%만이 아직 이루어지지 일이며 지금의 내가 어찌해볼 수 있는 부분인 셈이다. 광고인의 결론은 바로 이 1%의 미성에서 자존(自尊)의 확보가 결정된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지금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지금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잡아내는 것이야말로 자존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방송의 진행을 맡은 소설가는 광고인의 말을 들은 후 이런 코멘트를 달았다. “선생님 말을 듣고 보니까 ‘기존’과 ‘기성’이 상당히 무서운 언어였다는 생각이 확 드는데요? 그냥 습관적으로 쓰던 말이었는데...” 기존과 기성이 그렇게 무섭고 무거운 말인지 나 역시 그때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기존의 것과 기성의 것은 이미 손 댈 수 없는 것임에도 많은 사람들은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는 착각과 환상 속에 살아가곤 한다. 마치 내 결심에 모든 변화가 달린 양 지나치게 사태를 낙관하다가 번번이 나의 무지와 연약함으로 무릎을 꿇어버리고 만 일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겪어왔던가. 이런 경향이 신앙이라고 예외일 리 없다. 특히 기도를 생각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이 기도를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절대적 마스터키인 양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기도만하면 모든 것이 내 뜻대로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을 믿음이라는 말로 포장하는 실수는 얼마나 흔한가. 저 광고인의 충고처럼 신앙의 자존 역시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절대적 99%와 내가 겨우 어찌 해 볼 수 있는 1%를 자각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결코 자만을 큰 믿음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자만과 자존은 다르다는 사실 또한 명심해야 한다. 신앙의 자존은, 다시 말해 자신의 어떠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존귀하게 여기고 스스로 무언가를 해내려는 마음은, 이미 내 손을 떠난 것과 오래 전부터 하나님의 계획 안에 들어 있는 99%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자만으로 가득 찬 어리석은 인간을 향해 전도자는 이렇게 말했었다. “지금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오래 전에 생긴 것이다. 인생이 무엇이라는 것도 이미 알려진 것이다. 사람은 자기보다 강한 이와 다툴 수 없다.”(전 6:10)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성(未成)의 영역, 현재와 미래의 모든 신비와 역사는 바로 이 1%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의 모든 노력과 기도의 자리는 바로 이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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