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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변기 파리 조준, 중년은 달라야 한다[책 뒤안길] 중년의 위기를 넘는 법 <중년의 배신>
김학현  |  nazunj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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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04월 28일 (목) 13:13:48
최종편집 : 2016년 04월 30일 (토) 07:25:31 [조회수 : 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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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이맘때면 강변에 가 삘기를 뽑아 먹으며 놀던 기억이 난다. 학교를 파하고 나면 동네 녀석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강변으로 내달린다. 상류 저수지로부터 내려오는 물은 항상 마르질 않았다. 그 강변(어릴 때는 ‘간살’이라고 불렀다)이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봄이면 나물을 캐거나 삘기를 뽑고, 여름에는 물장구를 치며 물고기도 더듬어 잡고, 겨울이면 썰매를 탔다. 그런데 계절에 불문하고 강에 이르면 치르는 의식이 있었다. 강둑 중 가장 높은 곳에 나란히 서서 강물을 향하여 오줌을 누는 의식이다. 소위 ‘오줌발 경기’다. 누구의 오줌발이 더 센가를 시합하는 경기다.

난 꼭 2등을 했다. 친구 수영이를 이길 수 없었다. 덩치는 작은데 오줌발이 어찌나 힘센지. 물론 오줌을 좀 참는 것도 오줌발 올리기의 비법 중 하나긴 하다. 그러나 아무리 오래 오줌을 참았다 해도 오줌발의 세기는 한계가 있다. 수영이는 따라 갈 수 없었다.

힘 자랑! 그렇다. 내겐 오줌발을 가지고 힘자랑을 하던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있다. 이게 사나이들의 오기다. 어렸을 때부터 사내란 족속들은 그렇게 길들여져 살아간다. ‘남자는 배짱, 여자는 절개’ 혹은 ‘남자는 힘, 여자는 미’라는 구별된 표현, 참 많이도 들으며 살았다.

피워리스, 중년의 위기?

   
▲ <중년의 배신> (김용태 지음 / Denstory 펴냄 / 2016. 4 / 288쪽 / 1만4000 원)

이런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어느새 남자는 힘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어깨’처럼 살아간다. ‘마초 콤플렉스’가 만연한 이 사회에서 남자로 살아가다 느닷없이 닥친 중년. 남자들은 이 시기가 되면 그 ‘힘’이란 게 맥을 못 추게 되는 걸 알아챈다. 순간 ‘내가 왜 이러지?’ 하며 무너진다.

그리 흔하지는 않지만 어떤 공중 화장실에는 소변기 아래 중앙 부분에 파리(혹은 벌)이 까맣게 그려진 세면기가 있다. 내 어릴 적 ‘오줌발 경기’와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하는 이미티콘이다. ‘남자가 흘려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 혹은 ‘한 발짝만 앞으로 나오셔서 쏘세요’의 다른 버전이다.

남자의 오기에 찬 경쟁 심리를 자극하는 파리 그림. 왜 한결같이 남자들은 그 그림을 박살내지 못해 안달일까? 맨 처음 왜 그려 놓았는지 몰랐다. 나중에야 그게 오줌이 밖으로 튀지 않도록 하는데 유용하다는 걸 알았다. 이 사실을 안 후 한동안 화장실에 진입하면 오줌발을 일발 장전해 파리 때려잡기에 충성을 다했다. 허.

파리를 맞추느라 애를 쓰다 보면 당연히 오줌 줄기가 변기 밖으로 튀는 불상사는 막을 수 있지 싶다. 그런데 이런 기발한 발상이 통하는 것은 다른 면으로 참 슬픈 남자들의 자화상이다. 힘자랑하기 좋아하는 남성, 우리 사회는 그렇게 힘깨나 쓰는 족속으로 길들여 남자들을 돈벌이의 최전선으로 내몬다.

그런데 그 힘센 남자가 어느 날 좌초한다. 돈과 권력, 명예를 제공했던 직장에서도 밀려 나고, 몸은 노화로 볼품없어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성적(性的) 능력도 줄어든다. 결국 중년의 남성은 돈 벌어다 주던 기계에서 아무 쓸 데 없는 ‘고개 숙인 남자’로 전락한다. 직장에서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가족에게 외면당한다. 그간 일을 핑계로 가족에게 소홀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상담학과 김용태 교수는 <중년의 배신>에서 ‘상실이 시작되는 중년이라는 나이와 파워 지향적 삶의 충돌’이라고 말한다. 열심히 일하면 되는 줄 알았던 중년 남자의 위기는 어느 날 갑자기 닥쳐올 수 있다. 남자들은 성적 정체성이나 사회·심리적인 이유로 파워를 추구하는 존재다. 그러나 중년이 되면서 파워를 잃게 되고, 이로 인한 상실감은 의외로 크다.

중년은 또 하나의 기회

“중년기에는 누구나 직장, 가정, 성적인 영역에서 파워의 상실을 경험한다. 이 상실의 때에 존재적 삶을 살지 못하고 파워로 환원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크나큰 위기를 맞이한다. (중략) 인간은 나이 먹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누구나 중년을 맞고 중년기에 이르면 여러 면에서 이전 같지 않다. 중년기에 경험하는 다양한 상실은 앞으로의 삶이 이전과는 다른 것임을 암시한다.”- 본문 77쪽

저자는 왜 남성들이 파워를 좇는지, 중년의 상실과 파워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이런 파워 상실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남자들은 대부분 마음을 털어놓고 아내나 가족과 대화하는 법을 모른다. 그동안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았기 때문이다.

일 할 동안에, 힘을 소유하고 있을 동안에는 성공에 가려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일을 잃고 힘이 모자라는 중년이 되면 한꺼번에 밑바닥이 보이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기 정체성을 모르는 ‘성인 아이’일 수 있다. 열등감, 의심, 창피, 불신 등이 한꺼번에 전면에 부상하면서 인생을 헛살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년은 인생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다. 인생의 내리막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 있던 인생을 바로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남은 인생을 성숙하게 살지, 위기 속에 빠져 살지’를 결정한다.

일에 지배당하고 살던 삶을 멈추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진심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다. 그간 일 지향적, 타인 지향적, 사건 지향적인 삶을 살았다면, 이제부터 자신을 위한 삶에 눈을 떠야 한다. 외적 관심을 내부로 돌려야 한다. 채우기의 삶에서 비우기와 쉼을 갖는 삶으로 전환해야 한다.

어릴 때 ‘오줌발 경기’나 화장실에 들어가서 파리에 오줌 줄기 총을 쏘는 파워 경기는 잊어야 한다. 소변기 파리 조준 사격은 청년 때까지다. 중년이 되면 ‘몸과 마음의 나이’를 일치시켜야 한다. 그래야 회의에 빠지지 않는다. 회의에 빠지지 않아야 중년 이후에도 행복할 수 있다. 저자의 충고가 정답이다.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면 자신을 다시 한 번 살펴봐야 한다. 길은 딱 하나밖에 없다. ‘아! 나도 이제 늙어 가는구나!’ ‘기능이 없어져 가는구나!’ ‘이제 몸으로 승부할 때는 지났구나!’를 인정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훈련을 해야 한다.”- 본문 242쪽

<중년의 배신> (김용태 지음 / Denstory 펴냄 / 2016. 4 / 288쪽 / 1만4000 원)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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