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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눈
홍지향  |  ghdwlgi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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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04월 25일 (월) 01:47:00 [조회수 : 8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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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한 주간 지방 교역자 수양회를 다녀왔습니다. 목회를 시작하고 지금까지 상황이 여의치 않아 한 번도 함께하지 못했던 지방 수양회에 저로서는 큰마음을 먹고 참여한 것이었습니다. 두 아이와 함께 온 가족이 3박 5일의 일정으로 베트남을 여행하면서 아름다운 하롱베이의 풍광에 한 번 감탄하고 하노이 시를 달리며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만들어 내는 오토바이의 물결에 두 번 감탄했습니다. 함께 참여한 7명의 어린이들은 지루할 때마다 ‘포테토칩’게임을 하면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즐겁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친 호찌민에 대한 서너 가지 일화를 알게 되었고 베트남 국민들이 왜 그토록 호찌민을 사랑하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호찌민 유적지에는 베트남민주공화국 독립을 선언한 바딘 광장을 중심으로 호찌민의 묘가 있었고, 호치민이 마지막 노년을 지낸 생가가 있었습니다. 호찌민 가옥과 사무실을 둘러보고 그가 숨을 거둔 침상을 들여다보면서 평생을 홀로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 애쓴 영웅의 흔적을 찾아보았습니다. “나를 이끈 것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애국심이었다.”고 말한 작고 평범한 한 인간의 창조적이고 굳건한 삶은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애쓴 수많은 독립투사들의 삶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유명 관광지인 하롱베이의 비경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자연의 걸작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오랜 시간 기억하고 싶은 것은 옌뜨 국립공원 안의 자이완사원입니다. 부처가 된 왕의 전설이 내려오는 그곳에는 부처님의 진사리를 모신 석탑이 있고, 500여개의 베트남 고승들의 사리탑이 모여 있었습니다. 베트남 승려들이 일평생 한번은 꼭 다녀가야 한다는 불교 유적지인 이 사원은 오래된 뾰족 사리탑들이 모여 있는 전혀 특별할 것이 없는 작은 암자 같았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 작고 초라함이 제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죽음은 언제나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이에게도,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이야기 할 때도 우리는 죽음 혹은 죽음 이후의 삶을 생각하게 됩니다. 베트남 고승들의 크고 작은 사리탑의 행렬 앞에서도 저는 존재와 비존재를 생각했습니다. 실존주의 심리학자들의 주요 명제 중 하나는 “죽음에 대한 인식이 인간의 삶을 창조적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그 유한성을 인식하게 될 때 비로소 참 된 자기를 인식하게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아주 오래 전에 심청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심청전의 줄거리는 누구나 아는 것입니다. 다만 그 해석에 있어서, 심청이 뛰어 든 인당수는 ‘제3의 눈’을 뜻하는 ‘인당’이라고 그 저자는 해석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은 되찾고 싶어 했지만 진정한 마음의 눈을 뜰 생각을 하지 못하는 심봉사를 위해 심청이 뛰어 든 곳이 바로 인당이었습니다. 심청이 죽기를 작정하고 마음의 눈 속으로 뛰어들었을 때 심청도 다시 살고 심봉사도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심봉사가 뜬 눈은 그저 시각적인 자극에 반응하는 신체적인 능력의 회복 이상이었다고 저자는 해석했습니다.

   진리, 즉 지극히 소중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죽음과 부활이 필요합니다. 인류의 보편적인 경험 혹은 지혜를 대변하는 수많은 민담이나 설화에서도 그러하거니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지혜도 그렇습니다. 죽음은 육체가 기능을 멈추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죽고 다시 산다고 할 때, 그것은 깊숙이 자기 안으로 침잠하는 것을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보기 위해 허우적대는 것이 아니라, 참된 자기를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을 뜨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아람 왕이 엘리사를 잡기 위해 군사를 보내 성을 에워쌌을 때 그의 사환이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고 엘리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왕하6:17)

   날마다 믿음 안에서 죽고 다시 사는 것, 바로 마음의 눈을 뜨는 것입니다. 육체의 눈은 뜨고 있지만 마음의 눈이 감겨 보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어찌할 바를 몰라 두렵고 떨릴 때 육체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기 위해서는 영혼(마음)의 눈이 열려야 합니다.

  하루하루를 창조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 바로 죽음을 직면하고 인당으로 뛰어드는 용기에 있습니다. 날마다 일어나는 작은 죽음과 부활이 믿음의 장성한 분량을 이루는 한 걸음이 될 것입니다. 치마를 머리까지 올려 육체의 눈을 가리고 마음의 눈 속으로 뛰어든 심청이의 용기와 지혜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제게도 이런 용기와 지혜가 함께 하기를, ‘눈을 열어 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오늘 하루 제 마음에 내리기를 간절히 기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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