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골프를 쳐본 적이 없지만 사람들을 따라서 간 적은 있다. 그래서 골프장이 어떤 곳인지 대강은 안다. 세상을 떠나 본 적은 없지만 떠나보내 본 적은 많다. 이번에는 4살 위인 누님이 세상을 떠나서

그 곳이 어떤 곳인지는 전혀 모르면서 배웅을 하기 위해서 출발했다.

"목사님이 회피하실 때가 다 있네요?"

공항으로 픽업을 해주는 길에서 나를 오랫동안 잘 알고 있는 후배 목사가 장례를 위해서 가는 길에 애써 슬픔을 감추려는 나의 태도를 보고 하는 말이었다.

그렇다. 나는 모든 일을 정면으로 직면하는 형이었다. 그러나 직면하기 전까지는 회피 하려고 했다.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서이었다.

공항에 나가서 체크아웃 될 때까지 기다리다가 빈 좌석이 없어서 돌아왔다.

해외에 사는 사람들이 간혹 부딪치는 난관인 것이다.
 

집에서 장례기간 내내 가보지 못한 장례식을 상상했다. 평생을 성당에 다닌 누나의 장례는 많은 사람들의 애도 속에서 천주교식으로 치를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는 것에는 형식이 필요 없지만 떠나는 것에는 형식이 필요한 것은 남은 사람들이 애써 허전함을 감추기 위해서이다.

살면서 혈육을 포함해서 타인과의 애정이나 우정은 삶에 큰 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끊어질 때 오는 고통도 크다. 더욱이 이별이라는 물리적 조건에 의해서, 그것도 죽음이라는 영원한 이별에 직면해서 당하는 고통은 표현할 길이 없을 것이다.

장례가 끝나고 장례에 하지 못한 죄송함과 매형이 겪을 고통을 생각하니 통화를 하는 것이 너무 힘이 들어 말 한마디를 하는 것이 천 근은 되는 것 같았다. 혼자 남은 매형은 너무 힘이 들어 사별한 이들을 위한 연수 프로그램에 들어간다고 했다.

매형과 통화하다가 아내가 먼저 울어서 같이 울었다. 그런데 아내가 울면서 "이제는 다시 볼 수 없으니...'하는 것을 듣고 "아! 눈물마저 이기적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인에 대한 애도 보다는 내가 '다시 볼 수 없다.'는 이기적인 마음이 슬픔을 더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에 그런 이기적인 마음이 없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훨씬 슬픔이 더 할 것이다.

동시에 세상을 떠난 이에 대한 생각은 더 깊어 질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우리가 느끼는 모든 애정은 집착을 포함한다. 놓아야 할 때 놓지 못하는 것이 집착이다.

이상하게 들릴 수가 있겠지만 나는 이제까지 누구의 죽음에 대해서도 안타까워 해 본 적이 없다. 아마도 어려서부터 삶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잠시 잠깐의 즐거움 뒤에는 또 어떤 어려움이 닥쳐올까 하는 것에 대한 불안함 때문에 '삶은 괴로운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이런 증세는 초장 끝발 보다는 종장 끝발이 좋을 거라던 어느 돌팔이 사주장이의 말대로 특별한 근심 걱정을 할 것이 없는(한국 정치 빼놓고는 ) 지금도 역시 변함이 없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삶에 대한 허무함이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다석 유영모의 사상을 알고서 이런 생각을 버릴 수 있었다.

다석의 '텅 비우면 참 좋지요.'하신 그 한 마디가 그야말로 나를 뻥 뚫리게 만들었다.

죽음은 無 라는 근원으로의 회귀이다.

죽음은 ‘순간적인 있음’에서 ‘절대 없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는 연습은 ‘없음’을 연습하는 것이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모든 사람들이 ‘있음’을 요구했을 때 철저히 ’없음’으로 대답했다.

그의 ‘없음’ 앞에는 어떤 ‘있음’의 권위도 의미가 없었다.

그는 천국의 문을 연 것이 아니고 그는 有만 알고 있는 인간에게 無를 가르쳤다.

有로서 존재할 때 어떻게 존재해야하는가를.

어떻게 無로 돌아갈 수 있는지를 몸소 보여주신 것이다.

어떤 사물이든지 본래의 기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또한 돌아가야만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상에는 최소한의 “있음’이 없어서 날마다 ‘없음’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있음’을 채우기 위하여 ‘없음’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제자들이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는 ‘내 아버지께로 간다.’고 하셨다.

창조 이전부터 계셨던 즉 ‘없이 계신 이’에게로 간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도 내가 갈 곳을 정했다. 그 곳은 텅 빈 곳이다.

텅 빈, 그곳으로 가기 위한 준비와 연습을 해야 하겠다.

한국을 떠날 때 갑자기 오느라고 준비를 못해서 많이 허둥댔는데 이 세상을 떠날 때 준비를 제대로 못해서 허둥대는 일이 없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