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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거울을 보자
김기석  |  vorblick@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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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04월 03일 (일) 23:49:33 [조회수 : 8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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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까지만 해도 화가들은 '자화상'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물론 군중들 가운데 자기 모습을 슬쩍 끼어넣거나, 사도들의 모습에 자기 얼굴을 그려넣는 이들은 있었다. 라파엘이나 마사치오, 엘 그레코 같은 화가가 여기에 속한다.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면서 화가들은 과감하게 자기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 알베르트 뒤러의 자화상이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이들의 시선을 잡아 끄는 것은 그것이 최고의 자화상이기 때문이 아니라 거의 최초에 속한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

본격적으로 자화상을 그린 화가는 17세기의 네덜란드 화가인 렘브란트이다. 그는 삶의 어떤 단계에 이를 때마다 자화상을 그렸는데 그 수가 유화와 데생을 포함하여 80점이 넘는다 한다. 초기의 자화상들은 그의 자신만만함과 지적 허영심이 느껴진다. 연출된 것 같은 표정과 차림 때문이다. 하지만 후기로 갈수록 그의 자화상에는 시간의 풍상을 견뎌낸 고목 같은 질박함이 드러난다. 자기를 미화하려는 젊은 날의 열정이 스러지면서 자기 내면을 응시하는 그의 시선이 깊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렘브란트의 초상화를 인간의 진정한 존재에 대한 깨달음에 다다르려는 몸부림으로 이해했던 발터 니그는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보고 있으면 인간은 임금이되, 왕위에서 쫓겨난 임금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고 말한다.

자화상은 아니지만 내게 가장 큰 충격을 준 것은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채플에 그린 <최후의 심판> 장면 속에 표현한 바돌로매의 모습이다. 형형한 눈빛과 근육질의 바돌로매는 그리스도의 발치에 앉아 오른손에 자기 살가죽을 벗겨낸 칼을 들어보이고 있다. 왼손에는 벗겨진 그의 살가죽이 들려 있다. 미켈란젤로는 아마도 바돌로매의 순교 일화를 염두에 두고 그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그런데 후대의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은 미켈란젤로가 벗겨진 살가죽 얼굴에 자기 자신의 모습을 그려넣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왜 자기를 살가죽이 벗겨진 자로 표현했을까? 그것이 예술가의 운명이라는 것일까? 하나님께 자기가 겪고 있던 적나라한 고통을 바치고 싶었던 것일까? 거룩함 혹은 궁극적 아름다움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은 한 순간도 평안할 날이 없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던 것일까? 여하튼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찬란한 예술가는 영혼에 불이 붙은 자였고, 자기의 한계와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함으로써 그 너머를 보려 한 사람이었다.

초상화가들은 자기가 그리는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볼 수 있다 한다. 얼굴 속에 그가 겪어낸 시간의 흔적이 새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석 유영모 선생은 얼굴을 가리켜 '얼의 골짜기'라 했다. 타고난 모습이 어떠하든 성인의 얼굴은 그가 머물고 있는 영혼의 풍경을 드러내는 법이다. 아름답지만 깊이가 없는 얼굴이 있고, 볼품없어 보이지만 알 수 없는 깊이를 드러내는 얼굴이 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당신의 형상에 따라 만드셨다고 가르친다. 이 말은 지금 우리의 존재 그 자체가 곧 하나님의 자화상이라는 말이 아닐까? 나이 사십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을 듣곤 했다. 모름지기 기독교인이라고 한다면 이웃들이 나의 얼굴을 통해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하고 있나 묻고 또 물어야 한다.

함석헌 선생은 우리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참 얼굴 하나 보러 왔다고 했다. "그 얼굴만 보면 세상을 잊고,/그 얼굴만 보면 나를 잊고,/시간이 오는지 가는지 모르고,/밥을 먹었는지 아니 먹었는지 모르는 얼굴,/그 얼굴만 대하면 키가 하늘에 닿는 듯하고,/그 얼굴만 대하면 가슴이 큰 바다 같아,/남을 위한 주고 싶은 맘 파도처럼 일어나고,/가슴이 그저 시원한,/그저 마주앉아 바라만 보고 싶은"(<얼굴> 부분) 얼굴 말이다. 세상이 삭막한 것은 그런 얼굴을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모두 거울을 보자. 그리고 나의 존재와 삶이 하나님이 쓰신 편지요, 하나님이 그리신 자화상임을 잊지 말자.

교회와 목회자들이 세상의 놀림거리가 된지 이미 오래다. 파행을 겪는 신학교 현실을 보며 사람들은 혀를 찬다. 문득 살가죽이 벗겨진 것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참람한 생각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우리들 각자가 삶으로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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