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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메오 나귀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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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03월 20일 (일) 00:31:21 [조회수 : 2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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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귀는 성경의 흥미진진한 드라마에서 까메오처럼 깜짝 등장한다. 그래서 모든 나귀들은 하나같이 친밀감을 준다. 무엇보다 신실한 모습으로 그 부르심에 충성을 다하고 있어, 나귀는 명예로운 이름의 대명사처럼 들린다.

  제물로 바칠 아들을 태운 아브라함의 나귀(창 22:3), 애굽으로 되돌아가던 모세의 가족을 태운 나귀(출 4:20), 주인의 잘못을 책망한 발람의 나귀(민 22:30), 평화로운 임무를 수행한 오뎃의 나귀(대하 28:15), 강도만난 사람을 태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나귀(눅 10:34)가 대표적이다.

  가장 유명한 나귀는 단연 예수님을 등에 태운 ‘어린 나귀’(요 12:14)이다. 나귀 등에 타신 예수님은 모든 왕 중의 왕이며, 모든 종 가운데 종으로 오신 메시아였다. 볼 품 없는 나귀 새끼는 평소 겸손하고 온유하신 주님의 성품을 연상케 한다.

  나귀는 본디 체질이 강건하고, 병에 대한 저항력이 크며, 먹음새가 좋은 짐승이다. 무엇보다 인내심이 강해 예부터 온갖 험한 작업에 동원되었다. 그러나 늘 말과 비교 당하면서 나귀는 조롱당하기 일쑤였다. 말과 달리 나귀는 덩치가 작고, 앞머리에 아름다운 긴 털도 없다. 사람들은 모욕적으로 종자타령을 했다.

  이솝이나, 셰익스피어는 물론 심지어 피노키오 이야기까지 나귀의 어리석음을 놀려댔다. 나귀는 동서를 막론하고 업신여김을 받았다. 동양에서 ‘나귀의 해와 달’은 오지 않는 시간을 의미한다. 쥐띠, 소띠, 호랑이띠 하듯이 12지간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장 초라한 시골뜨기 짐승인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셨다. 예루살렘에 입성하면서 황금수레를 타고 붉은 옷을 입은 경우의 메시아를 상상해 보라. 어쩌면 더 근사했을지 모른다. 말발굽 소리 요란하고, 열병의식 장엄한 로마군대의 개선행진을 연상한 사람들에게 나귀 새끼를 탄 메시아의 모습은 차라리 우스꽝스럽다.

  높이 앉아 내려다보는 말과 달리 나귀에게는 위엄이 없다. 나귀는 다리가 짧아 그 등에 앉아도 서있는 무리와 얼굴과 얼굴을 맞댈 정도였다. 나귀에 탄 사람이나 거리에 선 사람이나 눈높이가 같은 상태로 예수님은 들이대는 군중 가운데를 비좁게 지나가신 것이다.

  메시아의 행렬과 뒤뚱거리는 나귀의 초라한 모습은 서로 조화가 되지 않는 일이다. 복음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의외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상식과 관행에 어울리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주님은 보잘 것 없는 나귀를 쓰시길 원하셨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슥 9:9). 스가랴의 예언은 겸손한 짐승 위에 타신 메시아의 속성을 분명하게 짚어서 전한다. 나귀 등에 타신 메시아는 본래 겸비한 분이라고.

  나귀는 메시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웅변한다. 나귀는 말과 정반대의 이미지다. 말은 전쟁을, 나귀는 평화를 상징한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이기러 가는 모습이 아니라, 지러 가는 모습이었다.

  그리스도교 전통에 따르면 교회의 착한 봉사자들은 나귀로 비유하였다. 세계적인 봉사단체들은 나귀를 자신의 상징 동물로 삼고 있다. 복음을 위한 일꾼들은 모두 나귀의 임무를 맡은 셈이다. 비록 짐이 크고, 멍에가 무겁지만 기쁨과 은총을 약속받았다. 주님은 그들의 온유하고 겸손한 성품을 사용하신다.

  레너드 스위트가 말한 서부 개척시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나귀이야기는 흥미롭다. 금을 캐는 광부는 신실한 동반자로서 말 보다는 당나귀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구부러진 벼랑길, 미끄러운 강가의 돌길을 가로지르기에 말의 발굽 보다는 나귀가 훨씬 안전하고 익숙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짐인 금가루와 금괴를 나를 수 있는 짐승은 오직 나귀뿐이었다.

  칼 바르트는 80번째 생일잔치 때 이렇게 말했다. “나귀는 예수님을 예루살렘으로 싣고 가도록 허락받았습니다. 제가 이 세상에서 무언가를 이루었다면, 당신의 중요한 짐을 싣도록 부름을 받은 나귀와 같은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마더 테레사의 코치는 참 적절하다. “우리는 성공을 위해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 신실함을 위해 부름 받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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