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오늘의칼럼
화려하고 쓰라렸던 행진
이진경  |  jinkyung.lee@yahoo.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6년 03월 18일 (금) 22:54:36 [조회수 : 1246]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내일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의 들어가신 날을 기념하신 ‘종려주일’이다. 성문을 향한 주님의 행진은 앞으로 펼쳐질 어둡고 무서운 사건들에 앞서 폭죽의 마지막 불꽃처럼 짧고도 화려한 빛을 발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화려한 입성이 정말 밝기만 했던 것일까? 다른 복음서와는 차별되게 이 사건을 전하는 요한복음은 그 밝음을 둘러싼 또 다른 어두움을 우리에게 소개해준다.

우선 다른 복음서들과 달리 요한복음은 사람들이 흔들었던 가지의 수종(樹種)을 분명히 알려준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이 그저 나무의 가지라고 전했던 그 나무를 요한복음만 확실하게 ‘종려나무’라고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누가복음에는 심지어 나뭇가지가 등장하지도 않으니 요한복음이 없었더라면 이 종려주일은 뭔가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말았을 터였다. 그러나 나무이름보다 더 크고 확실한 차이는 행진 내내 호산나를 외친 무리들의 정체에 있다. 요한복음을 제외한 모든 복음서들에서 호산나를 외치는 사람들은 제자들의 무리다. 이들은 성으로 들어가면서 “호산나!”, “구원하소서!”라 외친다.

하지만 요한복음은 이것과 완전히 다르다. 호산나를 외치는 사람들은 제자들의 무리가 아니라 유월절 명절을 위해 이미 방방곡곡에서 예루살렘에 모여들었던 군중들이었다. 이 군중들이 앞서와는 반대로 성 안에서 밖으로 예수님을 마중 나오며 호산나를 외친다. 요한은 무언가 다른 기조로 사건을 전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군중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나 열렬히 예수님을 환영했을까? 그들의 의도는 이미 오래 전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보았던 순간의 태도로부터 읽을 수 있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달려들어 억지로라도 왕으로 모시려는 낌새를 알아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피해 가셨다.”(요 6:15)

예수로부터 기적의 풍요를 맛보았던 군중들은 여전히 그 풍요를 고대했던 모양이다. 그 사실을 요한복음은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확인시켜준다. “예수께서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실 때 그 자리에 같이 있던 사람들이 모두 그 일을 증언하였다. 군중이 예수를 맞으러 나간 것도 예수께서 이렇게 기적을 보여 주셨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요 12:17-18) 그들은 한 치도 변하지 않았다. 풍요와 기적을 원하고 바랐던 군중들, 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이었을까?

“예수께서는 새끼 나귀를 보시고 거기에 올라 앉으셨다.”(요 12:14) 다른 복음서들과 요한복음의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이 한 문장에 있다.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시는 모습이야 모든 복음서가 다 전하는 바이나 문제는 바로 ‘호산나’와의 순서다. 다른 복음서들에서는 주님께서 먼저 나귀를 타신 후 행진하실 때 제자들이 호산나를 외친다. 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마중 나온 군중들이 먼저 호산나를 외치고, 그 호산나를 들으신 예수는 말없이 새끼 나귀에 오른다. 즉, 이것은 행동으로 보여주신 예수님의 대답이었던 것이다. “왕좌에 오르길 기대하며 외치는 너희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나는 이렇게 초라한 새끼 나귀에 오른다. 나는 결코 너희 기대에 보답해 줄 수 없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결국 배신당했다고 여긴 군중들은 오래지 않아 같은 입으로 이렇게 외쳤다. “없애 버리시오! 없애 버리시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19:15) 행진은 화려했으나 쓰라렸다. 하지만 더욱 쓰라린 사실은 이것일 테니, 우리는 오늘도 이 군중들 속에 섞여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여전히 발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진경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195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