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오늘의칼럼
이슬람 포비아(공포)
조성돈  |  huioscho@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6년 03월 16일 (수) 21:20:56
최종편집 : 2016년 03월 16일 (수) 21:22:26 [조회수 : 1367]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선거가 얼마 안 남으면서 교계에서 이슬람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되고 있다. 아마 교인들의 대부분은 이슬람이 우리나라를 습격해 오는 것에 대한 내용이 담긴 문자나 카카오톡, 또는 다양한 SNS를 접했을 것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정말 우리나라가 이슬람의 습격에 직면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더군다나 이슬람이 늘어나면서 사회가 어떻게 비관적으로 변해 가는지를 보여주는데 공포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이에 교계에서는 압력을 행사하여 이번 선거에서 후보자들이 이슬람이 이 땅에 자리하지 못하도록 해야한다는 입장을 밝히도록 하고, 심지어 기독교정당을 직접 만들어서 저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교계는 그 동안 두 차례에 걸쳐서 이슬람 관련된 일을 막아섰다. 먼저는 수크크법으로 알려진 이슬람 금융 관련된 것이었다. 이슬람 사람들은 독특한 금융제도를 가지고 있어서 이슬람권의 자본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고자 하면 이 법이 먼저 정비되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 때 국회에서 관련된 법을 통과시키려 했다. 그런데 교계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 법의 통과를 막았다. 당시 교계의 단체들이 정당과 국회의원들을 찾아가 이 법이 통과되면 선거에서 이를 승인한 정당과 국회의원에 투표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협박을 했고, 그 덕에 법이 통과되지 못했다. 또 하나는 최근에 모슬렘, 즉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이 정한 식품인 할랄식품을 만드는 단지를 익산에 들이겠다고 했는데, 이 역시 실력을 발휘하여 저지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미 상당히 진행된 사항이었는데 기독교계의 거센 반발로 무산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기독교인들은 이슬람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가지게 된 것 같다. 경계를 의미하는 경각심의 수준을 넘어서 이슬람이 곧 우리나라를 종교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더 나아가서는 경제와 정치적으로 공격해 들어올 것 같은 공포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공포심이 우리를 지배하게 만들었다. 우리의 많은 부분이 이 공포심에 의해서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그제는 필자가 교수로 있는 학교에 학생, 학교에는 현역 목회자들이 학생인데, 이들이 찾아와서는 이번 학술제의 주제를 이슬람으로 잡겠다고 한 것이다. 물론 타 종교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마음은 이해가 되는데 한 학기에 한 번 있는 귀중한 자리에 등장할만한 주제인지는 확신이 없었다. 그리고 어제는 기독교 관련 단체에서 총회를 하는데 한 회원이 이 심각한 이슬람의 폐해에 대해서 이 단체는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었다. 물론 기독교 단체에서 이슬람에 대해서 입장을 갖고, 이에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약간 격앙된 톤이었고, 듣기에 따라서는 그런 것을 안 한다는 것은 잘못을 저지르는 것처럼 비쳐졌다. 그러나 이 단체 역시 이슬람 문제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데 마치 모든 기독교 단체들은 이슬람 관련된 문제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것처럼 되어 버린 것 같다.

한국사회는 다문화 사회이다. 개신교는 그 중 18% 정도를 점하고 있다. 한국에서 개신교는 절대로 다수라고 할 수 있는 단체는 아니다. 우리가 개신교인이라고 해서 가정이나 사회에서 박해를 받았던 시절이 그렇게 멀지 않다. 그런데 어느덧 우리가 힘이 세어졌다고 이 사회에서 압력단체의 역할을 하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더군다나 이 사회에서 한 종교에 대해서  이 땅에 들어오는 것의 승인내지는 저지하는 역할을 우리가 하겠다는 것은 더 큰 오류일 수 있다.

다시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해 보자. 이슬람 지역에 우리 선교사들이 음으로 양으로 얼마나 많이 들어가 있는가. 더군다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 땅에 머무르고 방문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그들에게 차별이 있고, 박해가 있다면, 물론 실제적으로 그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실제적으로 이슬람을 저지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입장이나 개신교의 입장이 그들에게 전달된다면 그들을 우리의 선교사들이나 국민들을 어떻게 대하겠는가. 성경의 환대의 사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역지사지의 생각만 있어도 이런 개신교의 자세들은 한 번 돌아서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조성돈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176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