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 //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이 스치운다.”

윤동주 사후에 출판된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에 실린 <序詩>다. 시집의 제목에 들어있는 하늘과 바람과 별을 모두 담고 있는 이 시에 담긴 정조(情操)를 ‘부끄러움’이라 칭한다면 과한 말이 될까? 폭력과 비참의 세계를 살아갔던 연약한 시인은 늘 부끄러움을 안고 살아갔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렇게 부끄러움을 안고 살아갔기에, 그렇게 부끄러움을 떨쳐버리지 않고 살아갔기에 그는 진실한 그리스도인 시인으로 악독한 세상을 살아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가능하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그리하여 어쩌다 부끄러움을 피할 수 없는 경우를 만나게 되면 속히 변명이나 이유를 만들어 부끄러움의 감정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어쩔 수 없었어,라는 식의 변명이나, 더 큰 선을 이루려는 것이었어,라는 식의 이유. 이렇게 끊임없이 변명과 이유로 부끄러움을 지우고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어느새 부끄러움을 모르게 되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한 세리가 있었다. 과도한 세금을 걷어 그것으로 연명했으니 백성들은 모두 그를 혐오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권력이 있어 아무도 감히 그에게 덤비지는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사나이가 나타나 그에게 말했다. “나를 따르라.” 그러자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즉시 일어나 사내를 따랐다.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갑작스러웠다. 이 갑작스러움, 어쩌면 자신만이 아는 부끄러움 가운데 머물고 있었기에 가능한 갑작스러움이 아니었을까?

한 부자가 있었다. 그는 세리장이기도 했다. 앞의 세리보다 더 큰 권력과 부를 소유했을 그였다. 그는 앞의 사나이가 근처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비록 키는 작았으나 비켜,라고 한마디만 했다면 모두가 옆으로 비켜서고 맨 앞으로 나서 그를 만날 수 있었을 그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는 나무 위로 올라가 그저 지켜만 보려고 했다. 그때 갑작스럽게 나무 아래 멈춰 선 사내가 그에게 말했다.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그 즉시 부자는 자신의 모든 부를 포기했다. 그것도 큰 기쁨으로. 이 갑작스러움 역시 어쩌면 그가 부끄러움 가운데 머물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부끄러움은 회개를 가능케 하는 유일한 정조다. 그리고 회개는 구원에 이르게 하니 이 부끄럽다는 마음은 얼마나 고귀하고도 결정적인 마음일까. 우리는 오직 부끄러움 가운데 머무르고 있는 한에서만 갑작스럽게 임하는 구원의 은총과 만날 수 있다. 사람으로는 불가능하나 하나님께는 가능한 구원의 능력을 입을 수 있다. 그러니 섣불리 부끄러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자. 아무도 모른다 해도 나만은 아는, 그 부끄러움을 없애려 말자. 그 가운데 머물도록 하자.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는 영혼은 그 일생이 얼마나 괴롭고 부끄러웠을까? 구원을 희망하며 부끄러워하는 모든 영혼은 복있을진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