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교인들과 선거

어제는 3.1운동 97 주년 되는 날이었다. 한국교회가 적극적으로 참여한 그 운동의 정신은 근대적 시민혁명의 성격을 갖는다. 그 정신은 민족의 자주 독립,민주공화국 건설, 신분제 폐지, 비폭력 투쟁, 국제 평화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민족이 분단된 가운데 , 우리가 이룩한 돈이 왕 노릇하는 사회는 그 위대한 3.1정신을 퇴색시키고 있지 않은가.   그동안 맘몬사회에서 기복신앙, 성공주의 신앙, 소원성취 신앙에 빠진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그 퇴색에 기여해 오지 않았는가. 오늘은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무들 가운데 하나인 선거를 생각하고자 한다.

4월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내년엔 대통령선거도 있다. 흔히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물론 민주주의가 속살이 찌려면 단지 선거만 갖고는 안 된다. 민주주의가 형식적 수준에 머물지 않으려면, 시민들이 평소 선거만이 아니라  갖가지 정치적인 참여 활동을 활발히 해야 한다. 여기서 그리스도인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시민권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신령한 사람일수록 올바른 정치적 참여와 활동을 해야 한다. 영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리 해야 할 것이다. 예수 재림을 열망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마태6:10)

자신의 소중한 선거권을 가볍게 여기거나 함부로 행사하는 사람들을 흔하게 본다.  인류 역사에서 차별 없는 선거권을 누구나 갖게 된 게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다. 미국만 해도 여성(백인)에게 선거권이 주어진 게 1920년이고 ,흑인에게 온전히 주어진 게 1960년대이다. 차별 없는 선거권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숱하게 많은 사람들이 피와 눈물을 흘렸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정당한 이유 없이 선거권을 포기하고 투표를 하지 않는 행위는 세상을 경영하시는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권리를 내버리는 사람에게는 불이익을 주는 제도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벌금을 물리는 나라도 있다. 아니면 투표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이득을 주는 것도 좋다고 본다.

'막걸리 선거' ,'고무신 선거'라는 말이 있다. 이는 지난 60 ~70년대 한국 사회의 선거 풍토를 비웃던 말이다.돈 몇 푼에 자신의 고귀한 선거권을 파는 사람들이 많았던 시절 얘기다. 지독한 친일파라도 고무신 한 켤레를 받고 찍어주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런 천박한 선거 풍조가 아직도 진하게 남아있는 데가 있다. 한국교회다. 각 교단은 말할 것도 없고 교단 연합체인 한기총까지 선거 과정에서 후보들이 많은 돈을 뿌리는 것이다. 5억이니 10억이니, 하는 돈을 교단이나 연합기관의 대표직에 출마한 후보자들(물론 예외도 있겠지만)이  매표를 위해 쓴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나는 멋모르고 받은 돈봉투를 되돌려준 경험이 있다.

'부동산투기 선거'

80년대 이후 한국사회 선거 풍토의 특징은 이렇게 이름 붙여도 좋다는 생각을 한다. 지방자치단체 선거든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선거든 그동안 선거를 크게 좌지우지한 요소는 부동산투기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누가 나에게 유리한 부동산 투기를 조성해줄까? 내 아파트 , 내 땅의 값을 올려줄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이게 후보들 가운데 어느 사람을 고르는 큰 기준이 아니었나? 나라를 팔아먹을 사람이라도 부동산 투기를 일으킬 공약을 하면 기꺼이 찍어주는 속성을 가진 사람들이 아직도 허다하다. 이 속성은 마음 중심에 돈우상을 우뚝 세운 사람의 속성으로서 쇠심줄보다 더 질기다.

'연줄 선거'

이 또한 한국사회의 선거를 좌우하는 크나큰 속성이다. 학연,지연,혈연 등 연줄에 따라 사람을 골라 투표하는 행위는 우리 사회의 오랜 습성이다. 나는 이를 '근친애적 선거'라고도 부르고 싶다. 이 선거 행위는 근친애적 심리에서 비롯된다. 이는 가까운 사람이나 익숙한 집단에 매달려 안전을 보장받거나 어떤 이득을 보려는 유아적인 심리이다. 이 미숙한 심리의 바탕엔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 그 불안에 휘둘리면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못한다. 가령 사기 전과 10범인 후보인데도 동창 혹은 동향이라고 무조건 찍어주는  경우다.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자율성이나 독립성을 저버리고 오직 가까운 사람이나 집단에게만 애착을 보이는 마음에 이끌려 하는 선거 행위는 일종의 장애다. 이는 개인 이기주의, 가족 이기주의 ,집단 이기주의, 지역 이기주의 등을 끝없이 낳는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일 게 있다. 학연, 지연, 혈연에다가 '교연'을 더하고 싶다. 즉 종교 연줄이다. 단지 믿는 종교나 다니는 교회가 같다는 이유로 어느 후보를 선택한다면 그 또한 연줄 선거 이다. 연줄로 인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 흐려진 선거는 하나님의 뜻 실현을 방해한다.

'느낌 선거'

피상적인 느낌이나 감정, 기분이나 흥취에 따라 선거를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사회가 떠안는 부작용은 커진다. 정보화시대에 느낌 선거는 더욱 기승을 부린다. 온갖 매스컴을 이용한 돈 -선거운동이 번창할수록 인위적으로 포장된 인물들이 득세를 하게 되고, 그 와중에 대중은 피상적 느낌에 휘둘린 선택을 하게 된다.느낌이 무성할수록 거품은 일어나 , 느낌 선거를 치룬 뒤에 밀려오는 사회적 공허와 피해는 자못 크다. '그 후보가 불쌍하게 보여서 찍었다'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이런 식의 느낌 선거를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가련해진다. 불쌍하게 보이도록 연출한 후보, 동정표를 구걸한 후보는 당선된 뒤에 돌변하여 시민들을  불행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아무튼 가벼운 느낌 선거는 불행을 자초한다.

'계층 배반 선거'

성경을 관통하는 사건인 출애굽사건에 빗대어 생각해 보자. 히브리인들이 노예살이를 하던 고대 이집트 시대(BC 14세기 전후)는 노예제 시대였다. 노예주와 노예의 관계가  그 시대 사회의 주요 관계였다. 물론 노예주는 소수(그 정점은 파라오)이고 노예는 다수였다. 히브리인들은 당대 노예 계층 가운데 일부였다.  그런데 히브리 노예들에 대한 착취와 학대가 극심하던 시대(파라오 라마세스 2세)에 히브리인들의 출애굽 문제를 걸고 투표를 했다고 가정해 보자. 노예주들을 위한 정당과 노예들을 위한 정당 그리고 중도 정당이 있는 가운데 자유로운 공개 선거를 했다고 치자. 그 때 만약 어느 노예들이 노예주들을 위한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는 투표를 했다면 ,그것이 바로 계층 배반 투표(선거)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돈이 왕 노릇하는 사회다. 이 사회는 수령주의적 전체주의 체제인 북한 못지않게 비인간적인 사회요, 하나님 나라와 거리가 먼 사회다. 사랑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섬기시는 사회와는 상치된다. 돈이 주인 노릇하는  사회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사는 삶을 원천적으로 방해한다. 구조적으로 파괴한다. 이 사회는 사람보다는 돈, 사랑이나 협동보다는 무한 경쟁, 생명보다는 이윤의 극대화를 밤낮없이 부추긴다.

한국사회는 ‘헬조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극심한 불평등 사회요 양극화된 사회다. 또한 이 양극화의 구조는 갈수록 심화되며 대물림되고 있다. 1:99 사회라고 할만큼 빈부의 격차는 심하고 부익부빈익빈 현상은 날로 심화되고 있다. 시민들이 땀흘려 만든 열매들을 극소수가 독차지하는 구조가 IMF 이후 심화되다가 이제는 콘크리트처럼 굳어져 있다.(가령, 자산 상위 10% 인구가  나라 전체 자산의 70%를 소유하고, 하위 50%는 겨우 1.7%의 자산을 갖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공정한 경쟁이나 기회의 균등은 점점 약화되고 있다. 나라의 경제 규모는 세계에서 상위권인데 공정한 나눔이나 분배는 하위권이다. 여기서 이른바 낙수효과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사회가 갈수록 노쇠해지는 가운데 행복지수는 점차 낮아지는 추세다. 여기서 자본권력은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고 사회 전체를 주무르는 실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맘몬신에게 절하며 찬양한다.  야만스러운 이 사회가 얼마나 지속 가능할까? 언제까지 지속되어야 하는가?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 임하시는 성령은 과거 출애굽사건을 일으키신 야훼의 영이시다. 부활하시어  만물의 주主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의 출애굽 사건을 지구촌에서 쉼 없이 일으키신다. 물론 온전한 출애굽은총은 인간 내면의 출애굽과 사회적 출애굽을 동시에 일으킨다. 아무튼 민주주의 시대에 선거는 출애굽사건을 만드는 중요한 기회(은총)이자 도구다. 과거 출애굽 시대엔 출애굽을 방해한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는 비극이 있었지만, 오늘날엔 굳이 피 흘리지 않아도 될 만큼 진보되었다. 제도적 장치는 마련된 것이다. 선거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출애굽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었다.

선물처럼 주어진 조건에 오늘 어떻게 응답하느냐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출애굽사건은 그리스도인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가리킨다. 출애굽정신은 자유와 평등 그리고 형제애다. 출애굽의 목적은 자유롭고 평등한 사랑의 공동체(사회, 세상)를 이루는 데 있다. 사도행전 2장과 4장이 소개하는 처음교회공동체는 이 출애굽정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 좋은 본이다. 작지만 위대한 본이다. 그리스도인의 선거와 모든 정치 행위는 자유와 평등을 확장하고 형제애를 높이기 위해 행해져야 한다 . 주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오늘의 출애굽 은총을 누리려면. 그리스도인 특히 가난한 교인들은 무엇보다 계층 투표를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오늘 문제가 되는 가난은 절대적 가난보다 상대적인 가난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한국교회 안에서 대다수이지만 소외되어 있기도 하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의 할례'를 받으라고 했다(로마서2장). 마음의 할례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과 어긋난 마음 자락을 베어버리는 은총이다. 남근의 표피 끝을 칼로 베어버리듯이 우리는 그리스도와 어긋난  마음을 날마다 베어버리는 은총으로 살아야 한다. 고무신 선거, 부동산 선거, 느낌 선거, 계층 배반 선거 등을 하도록 하는 욕구는 우리가 성령을 의지하면서 베어버려야 할 것이다. 바울의 표현을 따르면 이 욕구는 '육체의 욕망'(sinful nature desires)에 속한 것으로서 성령을 거스른다.(갈라디아 5:17) 이 욕구를 자신 속에서 발견할 때마다 주님 앞에서 자백하는 일은 마음의 할례를 위한 첫걸음이다. 마음의 할례를 늘 받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주권에 순종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유유히 흐르는 출애굽 역사의 물결에 합류하게 된다.

김달성목사(평안감리교회 .'교회에서 신을 만드는 사람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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