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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하고 소소한 것들
홍지향  |  ghdwlgi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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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02월 22일 (월) 23:06:09 [조회수 :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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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간도 안녕하셨는지요? 저도 큰 사건 없이 다시 한 주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진부령의 바람이 어찌나 거센지 틀이 맞지 않던 안방의 바깥 유리창이 마당으로 떨어져 내렸습니다. 밤마다 울어대는 노루 소리에 등골이 오싹해 해가 지면 절대 혼자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간이 생기다가 말았다고 놀리시던 친정어머니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래도 집 앞을 가로질러 흘러가는 구름과 밤하늘을 수놓는 별들을 보고 있노라면 살면서 이런 호사가 또 어디 있으랴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이제 곧 큰 아이는 개학을 하고 2학년이 될 테고, 작은 아이는 인제군에 있는 초등학교의 병설 유치원에 입학을 합니다. 큰 아이의 학교에 누가 새로운 선생님으로 오시게 될 지가 저희 가정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아이들과 동고동락 하시던 킹쌤과 알럽티쳐(분교의 두 선생님의 별명입니다.)는 각자 다른 학교로 발령을 받아서 가시게 되셨고, 새로운 선생님 두 분이 오시게 될 것입니다. 부디 성실하고 따듯하신 분이 오셔서 아이들을 잘 지도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큰아이와 분교에서 함께 놀던 언니 오빠들도 이제는 각자 집이 가까운 곳으로 전학을 했습니다. 이제 분교에는 유일한 마을의 아이인 큰아이 한명만 남았고, 새로운 선생님과 함께 또 어떤 새로운 친구들이 오게 될지 기대하고 있습니다.

올해 마을에 사는 여학생 세 명이 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하루에 다섯 번을 운행하는 마을버스 아침 첫차를 타고 읍내의 중학교에 등교했다가 저녁 막차를 타고 집으로 귀가하던 아이들입니다. 이제 고등학교에 입학할 이 아이들은 읍내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야 합니다. 진부령 흘리 마을에서 읍내까지는 마을버스비 3,500원으로 25킬로미터를 달려야 합니다. 흘리 뿐만 아니라 고성에 몇 없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기숙사에 들어가야 합니다. 다행히 읍내 학교 가까이에 살지 않는 이상 말입니다. 장로님 댁의 자녀들도 고성에 하나 있는 상업고등학교를 다녔었는데, 학교가 너무 멀어 할 수 없이 학교 근처에 작은 방을 얻어 주셨었다며 이곳 학생들의 진학의 어려움을 이야기 하십니다.

작은 학교 통폐합이라는 말이 여전히 들려오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가까운 중고등학교라고 해도 이동 거리가 이정도인데 효율성을 따져서 통폐합을 한다면 아이들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시간보다 차를 타고 등하교하는 시간이 더 길어질 것입니다. 효율성의 잣대 앞에서 살아남을 학교라고는 고성 전체의 초중고를 통틀어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와는 판이하게 다른 현실입니다. 그렇게 되면 부모들은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더 교육여건이 좋은 곳으로 이주해야 하거나, 자녀의 교육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하게 됩니다. 당장 저희도 분교가 없어지면 큰아이를 홈스쿨링으로 키워야하나 고민하기도 합니다. 본교까지의 거리도 거리이거니와 길이 워낙 험해서 겨울에는 학교에 가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효율성이 중요한 곳도 있지만 효율성만을 잣대로 쓸 수 없는 영역도 분명 있습니다. 효율성을 따지자면 어떻게 가정에서 자녀를 낳아 기를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자녀를 양육하고 미래세대를 길러내는 영역은 다른 모든 지출을 점검하며 절약한 것을 제일 먼저 투자해야 할 영역입니다. 저희 집에서도 가계지출의 1순위는 아이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들입니다.

효율성과 합리성이라는 잣대로 사람들의 삶을 속속들이 파헤치고 잘라내서 오직 물질적 목표만을 바라보고 달리도록 만드는 사회는 개인의 삶을 고단하고 슬프게 만들며, 설혹 물질적인 목표를 이루었다고 해도 공허와 불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올무를 씌우고 있습니다. 다수를 위해서 소수가 희생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고, 사회의 더 큰 이득을 위해서 개인이 희생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세상이 목소리 높여 외친다고 하더라도, 예수를 믿는 사람은 바로 그 소수에게 한 작은 배려와 사랑이 그리스도를 대접하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작고 사소하고 소소한 것들로부터 천국이 가까워집니다. 어린아이들이 천국에 가깝고, 가난한 자가 하나님을 보며, 버려진 돌이 모퉁이 돌이 되었습니다. 크고 원대하고 멋진 꿈만 꾸는 삶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누구도 관심 가지지 않는 사소하고 소소한 일들에서 행복을 찾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보면 어떨까요? 주어진 하루에 충실하고, 작고 여린 것들을 소중히 돌보며, 바람이 부는 날에도 하늘을 바라보고 감사할 수 있는 보석 같은 마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있기에 이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오늘 하루 효율성을 따지며 몸과 마음이 조급해 지기 보다는, 사소한 것들에 대한 감사와 소소한 즐거움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충만한 하루가 되기를 기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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