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곰이 생각하면 나는 내 또래의 어느 누구보다도 똥과 인연이 깊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기억도 가뭇해진 똥이지만 어렸을 적에는 똥은 일상이었습니다. 집집마다 재래식 변소에서 똥을 누었고, 그 똥은 재래식 똥통에서 일 년 쯤 묵혔습니다. 봄기운이 완연해지면 어른들은 들판 한 구석에 파놓은 똥구덩이에다가 똥을 퍼 나르는 게 중요한 봄맞이 행사였습니다. 그렇게 시골에서 살다가 수원으로 이사를 왔지만 똥은 여전히 일상과 가까웠습니다. 1970년대 초반의 수원은 재래식 화장실이 대부분이었거든요. 어느 한 집에서 분뇨차를 불러 똥을 푸면 그 냄새가 몇 시간은 골목 안을 가득 메우곤 했지요.

정작 내 손으로 똥을 처리한 것은 군대에 가서입니다. 첫 번째는 1985년 이등병 시절이었습니다. 그 때는 편지를 부치면 왜 그렇게 늦던지, 군사우편으로 부치면 한 달 이상 걸렸습니다. 그래서 휴가 가는 고참에게 사제 편지를 부쳐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그게 걸리고 말았습니다. 고참이 연대본부에서 휴가증을 받아가지고 나오다가 위병소에서 적발이 된 것이지요. 신참 이등병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공포가 엄습했습니다. 중대 인사계는 군기교육대를 보낼 것이라며 엄포를 놓았습니다. 밤새 잠을 설쳤지요. 그런데 다음날 아침, 뜻밖의 일이 주어졌습니다. 똥을 푸라는 것이었습니다! 똥을 푸라는 그 말이 얼마나 반갑게 들리던지, 그 안도감 때문에 하루 종일 똥을 펐는데도 힘들었다는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두 번째 똥은 1986년 겨울에 얼음 탑으로 만났습니다. 일병으로 승진한 후 얼마 안 되어 연대 군종병이 되었습니다. 부대밖에 있는 교회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꽃보직의 끝판 왕이랄까요! 그런데 겨울이 되자 교회 변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수많은 병사들이 변소를 이용하는 게 문제였습니다. 강추위에 병사들이 누운 똥은 얼어버렸고 겨울이 깊어갈수록 그것은 서서히 높은 탑으로 변하였습니다. 탑 때문에 변소 사용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방법은 하나. 탑을 깨뜨려내야 했습니다. 긴 쇠장대를 찾아냈습니다. 장갑과 귀마개로 단단히 무장을 하고 얼어버린 똥 탑을 부수기 시작했습니다. 참 힘들었습니다. 숨은 가쁘고 땀은 나고,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어떻게 하겠어요? 계속 얼음 탑을 깨뜨렸지요. 그런데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습니다. 튀는 똥 얼음 파편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입술을 꽉 다물어 보지만 불가항력! 헉헉대다 보면 입술이 열리고 파편이 이빨에 부딪쳤습니다. 그건 약과였습니다. 화들짝 놀라서 보니 이미 입안에 들어와 있는 게 얼음 파편이라는 걸 인식하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지요. 이렇게 한참을 끙끙대며 땀을 흘리던 어느 순간 탑이 무너져 내리고, 다시 변소를 사용하는 보람(?)을 맛보았지요.

이 때 까지 똥은 그냥 보통 보다 더 지저분한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똥에 대해 깊은 사유(?)를 하게 된 것은 1988년 첫 목회지에서 똥을 푸고 난 후의 일입니다. 경기도 화성의 영광교회로 첫 목회를 나갔는데 가보니 교회 변소가 꽉 차 있었습니다. 난감했지요. 결국 6월의 뜨거운 햇볕 아래서 똥구덩이에다가 똥을 퍼 날랐습니다. 그런데 똥구덩이 주위에 흩어져 있는 똥이 발효가 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순간 내가 퍼 나르는 똥은 그냥 똥이 아니라 거름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밭에 뿌리면 자양분이 되어 생명을 살리고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하는 거름. 그 열매를 사람이 먹고, 짐승이 먹고, 그래서 하나님의 순환을 이루게 하는 똥을 그 날 새롭게 본 것이지요.

그러고 보니 내가 1988년에 펐던 그 똥은 창조질서의 순환을 이루었던 똥의 마지막 세대였던 셈입니다. 1980년대 후반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똥이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농촌에서도, 어디에서도 그 똥을 볼 수 없습니다. 현대 문명은 똥을 더러운 것, 분리해서 버려야 할 것으로 관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똥 이야기는 지금도 어디에선가 틀림없이 이어지고 있을 것입니다. 문득 권정생의 ‘강아지 똥’이 떠오릅니다. 생명을 살리는 거룩하고, 힘 있고, 따뜻한 똥 이야기가 있다는 시원한 소식이 절실한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