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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홍지향  |  ghdwlgi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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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01월 18일 (월) 23:10:59 [조회수 :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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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부령 정상에 몇 해 전까지는 식당이었지만 지금은 편의점이 된 가게가 있습니다. 전쟁이 나기 전 이북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꿈 많은 한 소녀는 학업 성적이 아주 우수한 사랑받는 딸이었습니다. 그녀는 6.25 전쟁이 시작되어 잠시 피난을 나온 것이 지금까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였습니다. 타지에서 학업을 지속할 수 없었던 그녀는 시간이 흘러 결혼을 했고 남편이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자 진부령 정상에 식당을 열고 네 명의 여린 봄 꽃 같은 딸들을 키웠습니다. 세월은 빠르게 흘러 딸들은 성실히 자랐고 이제는 모두 중년의 어른이 되어 훌륭하게 자신들의 삶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지난 주 남편은 한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수도권에 살고 있는 딸의 집으로 떠나신 바로 그 소녀의 편지였습니다. 이제 소녀는 할머니가 되셨지만, 진부령과 섬기는 교회의 담임목사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긴 정갈한 손편지를 보니 그 속에서 꿈 많던 소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전자편지나 손전화가 줄 수 없는 따듯함이 듬뿍 묻어나는 편지였습니다. 오랜만에 우표 소인이 찍힌 편지를 보니 저절로 얼굴에 웃음이 피어났습니다.

   생각해보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저도 열심히 편지를 썼었습니다. 지금도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상자에 넣어 이사를 다닐 때마다 가지고 다닙니다. 가끔 상자를 열어보면 해마다 친구들과 주고받은 크리스마스카드들, 유학생활 중 눈물을 닦으며 읽은 엄마의 편지, 방학마다 절친한 친구들이 보내 온 편지들, 온 반이 함께 작성한 생일 축하 편지 묶음, 한 친구와 일 년 동안 주고받은 교환일기 노트 등 수많은 추억들이 그 시절의 마음 그대로 상자 안에 담겨 있습니다.

   전자편지 사용이 보편화 되면서부터 마음을 담은 전자편지는 몇 있지도 않았고, 편지를 출력하여 보관할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습니다. 간혹 떠오르는 시나 글귀를 종이에 적어보지만 편지만큼 정제되지도 못할뿐더러 보존도 잘 되지 않습니다. 지금 와서 편지를 읽어보면 그 시절의 친구들은 모두 문학소녀였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펜을 꼭꼭 눌러가며 곰상곰상하게 장문의 편지를 쓸 수 있었는지 신기하기만 합니다. 아마도 제가 보낸 편지도 그렇게 쓰여 있었겠지요? 방학이면 보고 싶은 친구들에게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편지 속에 끝없이 늘어놓으며 마치 우리가 함께 그 모든 것을 경험하는 것처럼 느꼈었습니다. 개학을 하면서로의 편지 속 이야기들을 다시 상기하며 좀 더 상세히 듣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근래에 받아본 편지는 남편과 자녀들이 써 준 편지입니다. 큰아이의 편지는 주로 ‘엄마 사랑해요.’를 무한 반복하며, 길게 쓰면 ‘엄마 힘내세요.’를 첨가하고 있습니다. 작은 아이는 제 모습을 아메바처럼 그리고 ‘홍지향 엄마’라고 표시를 한 그림 편지를 줍니다. 남편은 가끔 연필로 쓴 긴 장문의 손편지를 책 사이에 끼워놓습니다. 이 모든 편지들의 공통점은 편지를 쓰기도 전에 이미 대상은 저로 정해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편지를 읽을 때는 행간을 읽습니다. 아메바에 담긴 행간이란 바로 엄마를 그리고픈 그 마음입니다.
  
   성경에서 편지를 많이 쓴 인물을 생각해 보면 바울이 떠오릅니다. 바울은 편지를 통해 자신의 상황을 알리기도 하고, 상대방에게 꼭 하고 싶은 당부의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편지를 받은 사람들은 얼마나 힘을 얻었을까요? 또 자신이 처한 정황을 이야기 하고 기도의 도움을 청할 곳이 있었던 바울은 편지를 쓰는 내내 얼마나 힘이 되었을까요?

    이렇듯 편지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지 않습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편지를 받는 대상은 편지를 쓰기 전에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편지를 쓰는 사람은 편지를 받을 사람을 떠올리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대상에 꼭 맞게 쓸 수 있습니다. 또 그 편지를 받는 사람은 편지의 내용에 맞는 자신만의 답장을 쓸 준비를 하게 됩니다.

   편지에 대한 여러 단상들을 써내려가면서 하나님의 편지가 되어 제게 오신 예수님을 생각해 봅니다. 그 편지의 수신자는 바로 저입니다. 편지의 행간에는 수많은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다 이해하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뭐 어떻습니까? 제게 온 편지이니 저는 이해한 만큼 자신 있게 답장을 할 수 있습니다. 답장은 바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저의 발걸음입니다. 주의할 것은 단 한 가지, 받은 편지와 상관없는 답장을 쓸 수는 없으니 받은 내용에 맞는 답장인지 잘 살피면서 걸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편지가 되어 오신 이를 본받아 저 역시 누군가에게 편지가 될 수 있다면 더 좋겠지요? 저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가 곰상곰상한 답장이 되어 함께 미소 지을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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