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인은 과학에 의존하거나 지배 받으며 살고, 비문명인은 감각에 의존하거나 영에 지배 받으며 산다. 문명인은 상대적 빈곤 속에서 초조하게 살고, 비문명인은 절대적 빈곤 속에서도 여유 있게 산다. 문명인은 산아제한으로 인구가 서서히 줄어들고, 비문명인은 주신대로 낳아 인구가 계속 늘어난다.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셨다.

▲ 하윌리 마을 올라가는 하천바닥 길

지난 밤 늦게 도착하여 로하스에서 하룻밤 쉬고, 아침식사 후 하윌리 산속으로 들어왔습니다. 해마다 수십 차례 지나가는 태풍이 어김없이 이곳을 또 강타하였군요. 나무뿌리가 뽑혀 개울 바닥에 처절하게 쓰러져 있고, 산에서 밀려 내려닥친 홍수에 하천바닥은 더 깊게 패이고 바윗돌들이 널브러져, 그 위를 걸어 다니는 마을사람들이 더 힘들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황량하여 산짐승들조차 살 수 없어 달아나 버린 황폐화된 산속입니다. 대나무와 나뭇잎으로 지은 허름한 꾸보 하우스는 태풍으로 인해 거의가 무너졌든가 무너지기 직전에 있고, 그런 집들 사이에 용케도 사람들이 버티고 삽니다. 산족들이 야생동물보다 더 강인해서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짐승은 다른 산으로 이동하면 되지만, 사람들은 많은 가족들을 데리고 막상 어디로 갈 데가 없지요. 도시로 나간들 받아 줄 사람도 없어 그냥 눌러 앉아 있는 가 봅니다.

하나님 잘 믿으면 복 받는다고 선교사가 알려 주었는데, 복은커녕 더 망가져 버린 상태가 되었으니 나도 면목이 없습니다. 아니 나보다 하나님이 더 면목이 없어 침묵하고 계시겠지요. 그래도 이들은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쓰러져 가는 움막 사이에 버티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젊은 부인들은 아이들을 연실 낳아, 거의가 갓난아이를 등에 하나 없고, 팔에 하나 안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전혀 궁색해 하거나 불안해하지도 않고, 태연한 모습으로 오랜만에 만난 선교사를 맞이합니다. 하늘이 배신하고, 자연이 외면하고, 선교사가 복 받는 다고 가르쳐 준 말도 모두 틀렸지만, 그들은 아무에게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산속에 자생하는 나무뿌리(발링호이)를 캐 먹으며 그저 운명이려니 하며 삽니다.

▲ 반갑게 맞이하는 일하던 아낙네

치유선교사로 이곳에 오지만, 실은 올 때마다 그들보다 내가 더 많은 치유를 받습니다. 형용할 수 없는 평안의 기운이 나에게 스며들며 긴장이 풀리고 쉼을 얻습니다. 그윽한 영혼의 생수가 나의 마음과 몸과 혼을 적십니다. 그래서 난 더 이상 약을 먹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이곳에 머무는 동안, 이들이 절박한 상황에 직면하여 어떻게 대처하는지 그리고 세상이 무너져도 걱정근심 하지 않는 이들의 배짱을 배우렵니다. 비록 나무뿌리를 캐어먹을지언정 비굴하지 않고, 평온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심보로 함께 살아보렵니다. 문명인들이 필수품으로 갖추어야 할 위선의 옷조차 걸치지 않은 이들 앞에서, 내 더러운 위선의 옷을 벗어 던지고 함께 살아보렵니다. 선생이 아니고 친구가 되어 함께 먹고 뒹굴며 더불어 살렵니다. 이들은 성경은 잘 모르지만 가르쳐 주면 배운 대로 삽니다. 신의 음성을 예민한 감수성으로 알아듣고, 자연의 이치와 섭리를 본능으로 깨닫습니다. 무위자연의 삶을 삽니다. 이들의 이런 질박한 삶 속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관찰할 것입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 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크게 요동치 아니하리로다.”(시6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