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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의미 ‘꽃’
홍지향  |  ghdwlgi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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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년 12월 21일 (월) 21:27:17 [조회수 : 1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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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유난히 타인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몇 년을 함께 지내고도 얼굴을 보면 알지만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상대방이 알면 섭섭하겠지만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이름이 외워지지가 않습니다. 학창시절에는 한 반에 50명이 채 되지 않는 반 아이들과 새 학년이 되어 헤어질 때까지 이름을 모르는 친구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름을 외지 못하니 차라리 별명이나 ‘어디서 만난 친구’, ‘언제 같이 밥 먹은 친구’ 혹은 ‘어느 동네 사는 친구’등으로 부르는 쪽을 선택할 때도 많았습니다.

   또 가까운 몇몇 사람과 깊은 사귐을 갖는 저는 많은 사람을 기억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서울에서 남편이 부목사로 사역하던 시절에는 길을 가다가 일단 눈이 마주치면 먼저 인사했습니다.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니 혹시 교인을 못 알아보고 지나쳐 버릴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날마다 인사하니 좋아하시던 한 할머님은 몇 개월이 지나서 보니 교인이 아니셨지만 제 인사를 그렇게 반갑게 받으실 수가 없었습니다. 또 한 번은 길을 가는데 누가 저를 빤히 쳐다보셔서 처음 보는 얼굴이라 어린이집 학부모인가 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희 어디서 본 적이 있죠?” 했더니 상대방이 “교회에서요.”하고 멋쩍게 웃었습니다. 저는 순간 “제가 살짝 안면인식장애가 있어요.”하며 큰 소리로 웃었지만 속으로는 제 머리에 꿀밤을 주고 있었습니다.

   이름을 못 외우거나, 아니면 얼굴을 기억 못하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둘 다 모르는 저와 함께 사는 남편도 때로는 답답하기도 할 것입니다. 항상 사람을 만나는 목회자와 사모에게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는 일은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답답하니 집에는 항상 사진이 들어간 교인수첩이 눈에 띄는 곳에 놓여 있었습니다. 누가 다녀가시거나 전화가 오면 수첩을 찾아들고 확인을 합니다. 그리고 개인수첩에 그 날 다녀간 교인의 성함을 써 두고 외웠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저 자신은 이처럼 상대의 이름과 얼굴을 잘 외지 못하면서, 정작 상대방이 저를 부를 때는 제 이름을 불러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엄마, 여보, 사모님, 선생님 같은 역할에 따른 호칭들이 있지만 가장 듣기 좋은 것은 “지향아”, “지향씨”, “홍지향”입니다. 그래서 저도 친근감을 표현할 때는 항상 상대의 이름을 부르는 쪽을 택합니다. 혹은 직위나 직분에 따른 호칭을 써야 하는 경우에는 앞에 이름을 넣어서 부릅니다. 어느 목사님은 제게 호칭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느냐고 물어보셔서 이름을 불러달라고 했더니 줄곧 저를 “지향씨”라고 불러 주십니다. 제가 그 분을 8년간 알아오면서 가장 고맙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삶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부르는 것은 상대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상대가 나에게 지극히 의미 있는 존재이며 그 소중한 존재를 내 삶 속으로 초대하는 한 행위입니다. 김춘수 시인은 그의 시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잊혀 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는 길이 바로 이름을 불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 그렇게 잊혀 지지 않는 어떤 의미가 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창조의 정점이 어느 부분인지는 사람마다 생각하는 것이 다르겠지만, 저는 아담이 들짐승들과 공중의 각종 새들의 이름을 부를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름을 불러 줌으로써 ‘몸짓’으로 존재하던 짐승들의 ‘빛깔과 향기’가 드러났고 세상 안에서 존재의 의미를 부여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담도 하와도 짐승들도 모두 서로에게 존재의 의미를 확인해 주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태초의 피조물은 그들의 역할로 관계를 맺은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의미로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 이렇게 가슴 설레는 일입니다. 이름을 잘 외지 못하는 저이지만 오랜 시간 불러 온 이름, 오랜 동안 잊지 못하는 이름, 꼭 불러보고 싶은 이름, 모두 제게는 꽃이 되는 이름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저의 이름을 불러 주셨을 때 저는 하나님에게로 가서 꽃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제가 처음 여호와를 불렀던 19살 여름, 하나님은 제게로 오셔서 꽃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꽃이 되는 이름들입니다.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는 아름다운 꽃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그 아름다운 꽃의 ‘빛깔과 향기’를 마음껏 드러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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