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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숭배와 역사 의식
이광섭  |  h-stai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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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년 12월 21일 (월) 00:10:10 [조회수 : 2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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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가 역사를 대하는 태도는 매우 아이러니합니다. 역사적 인물을 인용하거나 그 업적을 기리는 데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한국교회 강단에서 가장 빈번하게, 가장 긍정적으로 인용되는 역사적 인물은 누구일까요. 아마도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손꼽힐 것입니다. 그의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최고의 인용구입니다. 그런데 마틴 루터 킹이 한국의 현실에서 다음과 같이 외쳤다면 어떤 평가를 받을까요? “정의로운 법은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정의롭지 않은 법에 대해서는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정의를 지키는 것이다.”

이 말은 마틴 루터 킹이 앨라바마주의 버밍햄 감옥에 갇혔을 때 쓴 <감옥으로부터의 편지>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당시 기독교 주류에 속한 사람들은 이 말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실정법을 지키는 것이 곧 정의라고 믿었던 까닭입니다.

이 구절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생애를 집약해서 보여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마틴 루터 킹의 흑인 민권 운동은 실정법을 뛰어넘는 새로운 세상, 새로운 질서를 추구하는 하나님나라 신앙에 바탕을 둔 운동이었던 것이지요. 그런 까닭에 그가 벌였던 흑인 민권운동은 극단주의와 무정부주의로 의심받으면서 온갖 공격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그는 실정법 위반으로 체포와 구금을 밥 먹듯 당하면서 수도 없이 감옥에 갇혔습니다.

이런 변혁적인 인물을 한국교회가 위대한 신앙의 인물로 빈번하게 인용한다는 것이 참 이상합니다. 그 배경은 무엇일까요. 만약에 킹 목사의 흑인 민권운동의 가치와 정신이 아메리카합중국의 주류 정신(spirit)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어도 그랬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여기에서 답은 간단하게 나옵니다. 한국교회는 킹 목사의 변혁적이고 역사적인 삶, 그 행동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업적을 차용하여 자신을 강화하는 데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지요.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개신교회에서 손꼽히는 대표적인 교단에서 만든 새해 달력을 한 부 받았습니다. 달력이 참신했습니다. 매 달 마다 역사적인 신앙의 인물을 소개했습니다. 한국교회와 사회에 큰 영향력을 끼친 신앙의 인물로 손색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12월 인물을 보고는 아연실색했습니다. 윤치호가 주인공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많은 기독교인들은 윤치호를 애국가를 작사한 훌륭한 애국지사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윤치호의 젊은 시절 이야기입니다. 윤치호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가 갑신정변이 실패로 끝난 후 상하이에 망명하면서 기독교로 개종을 하고, 남감리교회의 후원으로 미국 밴더빌트와 에모리 대학에서 공부하고 귀국했을 때 그의 가슴은 뜨거웠습니다. 조선을 근대사회로 전환시키려는 민족 변혁운동에 대한 뜨거운 심장이 그에게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1920년대 이후 친일단체에 깊숙이 관여하면서부터 더 이상 이전의 독립운동가 윤치호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1937년 중일 전쟁 발발 이후에는 더욱 노골적인 친일행적으로 그의 생애는 얼룩졌습니다. 윤치호의 친일행적이 다른 어떤 사람보다 더 나쁘게 평가받는 것은 초기 윤치호의 그릇된 명망성의 그림자 때문에 사람들의 의식을 흐리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는 일제 마지막 시기, 귀족원 의원을 지내는 것으로 그의 화려하고도 부끄러운 친일 행적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교회의 주류는 윤치호를 위대한 신앙의 인물로 추앙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이렇게 훌륭했다.” 역사의 공과(功過)를 평가하지 않고 역사의 단면을 무조건 숭배하는 것만큼 공포스런 일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역사의 위대한 인물로 평가받는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자랑한다고 교회가 덩달아 훌륭해지는 것 또한 아닙니다. 그의 신앙과 삶을 주목하고 그 정신을 따르려는 역사의식을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 피상적으로, 편리한대로 역사를 이용하면서 계속되는 쇠퇴의 길로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사회의 변화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생생한 역사의식으로 하나님나라를 이루는 길로 나아갈 것인지 미룰 수 없는 선택 앞에 서 있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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