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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령 편지 -마음을 지키는 일
홍지향  |  ghdwlgi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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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년 12월 07일 (월) 22:42:02
최종편집 : 2015년 12월 07일 (월) 22:49:17 [조회수 :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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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퇴근을 하고 집에 오니 두 아이가 뛰어나와 제 팔을 한 쪽씩 붙잡고 반갑게 맞이합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저녁시간 남편이 아이들을 훈육한 것 같았습니다. 그 날 두 아이가 먹고 입고 씻는 것을 저와 함께 하겠다며 아무도 아빠에게 가지 않았습니다. 왜 남편이 아이들을 혼내게 되었는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미운 행동을 두 아이가 커플이 되어 할 때는 제아무리 저명한 교육가라 해도 견뎌낼 재간이 없습니다.

  조금 있으니 큰 아이가 와서 제 귀에 대고 살짝 말을 합니다. “엄마, 이건 비밀인데요, 아빠가 버럭 괴물이 자꾸 나와요.”합니다. 그 모습을 본 둘째 아이가 달려와서는 큰소리로 “엄마, 아빠가 엄마 없으면 자꾸 눈치도 안보고 화내요.”합니다. 두 아이의 다른 성격이 바로 이런 면에서 나타납니다. 저는 작은 아이의 말이 너무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물어보았습니다. “누구 눈치를 안 보는데?” 하고 물으니 “당연히 제 눈치를 안보죠.”합니다.  저녁에 아이들이 잠든 후에, 이제 ‘눈치를 보고’ 화를 내도록 하자며 남편과 둘이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저 역시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른 기억이 세 번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멀리 여행을 다녀와서 멀미약을 많이 먹고 피곤하고 졸릴 때였습니다. 짜증을 내는 두 아이에게 화를 내고 잠이 든 기억이 납니다. 두 번째는 여름휴가 예약을 다 해 놓았는데 갑자기 남편이 교회 일로 못 가게 되어 저 혼자서 두 아이를 데리고 제주도에 간 때였습니다. 잠을 거의 제대로 자지 못하고 두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지친 셋째 날 밤, 저는 두 아이에게 ‘징징이’를 그만 하라면서 화를 냈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세 번째가 바로 칼럼을 쓰고 있는 오늘 저녁입니다. 요즘 상상력이 한참 자라느라 집 안에서 다섯 발자국만 혼자 가도 무섭다며 집 안에서 모든 곳에 엄마나 아빠를 데리고 다니는 작은 아이가 ‘징징이’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엄마의 불호령을 받고야 말았습니다.

   화장실에 혼자 들어가는 두려움을 이기고 겨우 양치를 하고 나온 작은 아이에게, 온 욕실에 비눗방울 액을 다 쏟아두고 손발에 비누를 다 묻히고 침대가로 나오는 행동은 잘못된 것이라고 단단히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크게 소리를 지른 것은 엄마가 화를 참지 못하고 한 잘못된 행동이라 미안하다.”고 사과했습니다. 제주도에서 화를 냈을 때도 제가 사과를 하자 큰 아이가 피식 웃으며 “엄마, 사실은요. (베시시 웃으면서) 아까 엄마가 화낼 때, 저는 엄마도 ‘징징이’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해 한바탕 웃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화를 낼 때는 육체적으로 몹시 피곤할 때였습니다. 그리고 두 아이가 ‘징징이’를 하는 것도 대개는 정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저녁 혼이 난 둘째도 비눗방울을 주렁주렁 달고 안방으로 뛰어나온 자기만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노는 동안에는 신이 나서 괜찮았지만 막상 양치를 하려고 하니 혼자 있는 것이 무서웠던 것입니다. 힘이 약한 두 아이는 약한 ‘징징이’로 자신들의 상태를 표현한 것이고, 성인이고 힘이 센 저는 강한 ‘징징이’를 한 셈입니다.

      사실 비슷한 상황이 수없이 많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냥 지나갑니다. 찬찬히 설명해주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하지만 제가 피곤하고 힘들 때는 그만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하고 맙니다. 그래도 착한 자녀들은 “엄마는 너를 사랑해서 한 말인데, 표현하는 방법이 잘못됐어. 미안해.”라는 말과 따듯한 포옹이면 금방 “엄마 슬픈 마음이 여기까지 내려갔어요.”하면서 손으로 배꼽을 가리켜 보입니다. 어린이들은 단순하고 너그러워서 쉽게 용서해 주니 정말 다행입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화’라는 것은 결국 아이들의 ‘징징이’가 만들어 내는 것도 주변의 환경이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제 안에 있는 것이고, 어떤 사건에 의해서 표출되었을 뿐입니다.  같은 일을 만나도 어떤 때는 괜찮던 것이, 어떤 때는 참을 수 없이 괴롭다면, 저를 괴롭히는 것은 그 일이 아니라 바로 저 자신의 마음입니다. 저로 하여금 ‘화’라는 감정을 표출하게 한 사건을 탓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아무리 탓해봐야 비슷한 상황을 만나면 또 화를 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모든 지킬 만한 것 중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지켜야 한다는 것은 소중하다는 의미이며 용도에 맞게 잘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화’역시 그 소중한 마음 중에 하나입니다. 제거 되어야 할 것이 제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용할지 잘 모르는 것이 제 마음 안에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그 소중한 것을 어떻게 적절한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마음을 지키는 일, 쉽지 않겠지만 생명의 근원이 그곳에서 난다고 하니 이보다 더 중차대한 일도 없습니다. 타인과 외부 환경을 탓하기 전에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지혜를 얻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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