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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령 편지 -눈 내리는 날
홍지향  |  ghdwlgi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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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년 11월 30일 (월) 21:32:56 [조회수 : 2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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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기예보에 따르면 진부령에는 벌써 12센티의 눈이 내렸고, 실제로는 고도에 따라 내린 눈의 양이 판이하게 다릅니다. 날마다 언제 눈이 오는 것이냐고 묻던 아이들은 신이 났습니다. 평소에는 아침마다 두 아이를 깨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잠이 깨면 엄마를 불러서 다리를 주무르라고 한다든가, 안고 거실로 나가달라고 한다든가,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고 엄마나 아빠를 불러서 시중들게 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었습니다. 하지만 눈이 내리던 날 아침에 “눈 왔다.”한마디에 벌떡 일어나서 스스로 옷을 골라서 입고 잠바를 미처 잠그지도 못하고 마당으로 뛰어 나갔습니다.

   눈이 내리자 큰 아이가 다니는 흘리 분교는 1박2일 캠프에 들어갔습니다. 큰 아이는 눈싸움을 하기 위해서 잠바와 스키바지를 여벌로 챙겨서 학교에 갔습니다. 수요예배를 마치고 밤에 학교에 들러보니 아이들이 낮 시간 동안 놀았던 젖은 옷을 말리고 있었습니다. 운동장에는 아이들이 낮에 만든 이글루가 있었습니다. 한 명씩 눈 위에 누우면 다른 아이들이 눈을 덮어서 ‘눈 이불’을 만들고, 그 위에 삽을 꽂아두고 찍은 사진도 있었습니다. 얼마나 신나게 놀았을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출근하지 않는 주말에 두 아이는 더 신이 났습니다. 이렇게 많은 눈을 본 일이 없는 두 아이는 눈만 뜨면 마당에 나가서 놉니다. 지붕 위의 눈이 녹아내리면서 생긴 고드름을 보고 그것을 따달라고 아이들이 졸랐습니다. 안방 창문 앞에 의자를 두고 올라서서 창문 밖 고드름을 효자손으로 ‘톡’쳐서 떨어뜨리면 밖에서 기다리던 아이들이 주워가서는 눈으로 만든 창고에 저장을 했습니다. 이렇게 한동안 작은 아이는 큰 삽으로 눈을 푹 퍼서 옮기며 창고를 만들고, 큰 아이는 모아 둔 고드름을 마치 겨울 김장독 묻듯이 이리저리 묻어가며 놀고, 저는 추위를 이기기 위해 눈 위를 이리저리 걸어 다녔습니다.

   한참을 놀던 작은 아이가 제게 “엄마 그렇게 손 넣고 다니다 넘어지면 크게 다쳐요.”하고 말합니다. 아마도 그 말은 제가 아이들에게 했던 말일 것입니다.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지향아, 추워도 주머니에 손 넣지 말그라. 땅도 얼었는데 넘어지마 크게 다친다.”하고 어린 시절 저의 친정어머니께서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친정어머니가 제가 하신 말씀을 제가 아이들에게 하고, 아이들이 다시 제게 합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눈 오는 추운 겨울의 추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비롭게 느껴집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도 지금 저의 자녀들처럼 놀았습니다. 저의 고향인 대구는 눈이 잘 오지 않았지만, 눈이 오늘 날이면 동네 아이들이 모두 모여 눈사람을 만들고, 언덕에서 눈썰매를 타고, 얼어붙은 논에서 빙판 썰매를 탔었습니다. 그리고 눈이 소복이 쌓인 낮은 소나무 사이에 짚단을 깔고 우리만의 비밀 본부를 만들어 추위를 잊고 그 안에서 놀기도 했었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놀이라는 것은 그저 ‘논다.’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놀이 속에서 ‘죽어도 다시 살 수 있다는 것’, ‘실패해도 또 기회가 온다는 것’,‘이기기 위해서 노는 것은 아니라는 것’,‘때로는 일부러 지는 것이 더 재미있다는 것’등을 쉽게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놀이의 장 안에서 함께 놀고 헤어지기를 반복하고, 싸우고 화해하기를 반복하면서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도 배우게 됩니다.

   어른들은 흔히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을 표현하는 ‘유치’라는 단어를 부정적인 표현으로 사용합니다. 하지만 어린아이와 같은 유치함이야 말로 인생을 반짝 반짝 빛나게 해주는 요소입니다. 이제 곧 마흔을 바라보는 저도 함께 하는 사람이 이해하고 포용해 준다면 과감히 ‘유치’한 모습을 보입니다. 장난치고 깔깔대면서 행복한 에너지를 발산합니다. ‘누가 더 강자인가’는 신경 쓸 필요도 없이 그저 놀이에 집중하며, 스스로의 감정을 충실하게 표현하고, 함께하는 사람을 신뢰합니다.

   눈이 오니 아이들은 마냥 신이 납니다. 내리는 눈도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눈 안에서 더욱 반짝입니다.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면서 놀이를 찾아 즐기는 아이들, 이기고 지는 것은 관심사가 아닌 아이들, 이런 모습이 바로 예수님이 칭찬하신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하는’ 그 모습이 아닐까요? 이것저것 재고 따지자면 끝도 없이 내리는 눈이 반가울 수 없을 것입니다. 올 겨울 눈이 많이 내리고 한파가 밀어 닥쳐도, 이것이 지나면 또 봄이 오고, 여름, 가을이 올 것이니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라는 시처럼, 이 세상에서의 삶을 소풍이라고 생각하면 감사하지 못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부디 이 겨울 어린아이와 같은 충만함이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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