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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실함
이진경  |  jinkyung.lee@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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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년 11월 13일 (금) 21:32:32 [조회수 :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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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철학자라 불리는 미국의 사회 철학자 에릭 호퍼는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평생 떠돌이 노동자로 살았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그를 소위 철학자의 반열에 올려놓은 발판은 방대한 양의 독서와 사색이었다고 한다. 인간에 대한 깊은 사색. 그렇게 그는 20세기 미국 사상에 중요한 발자국을 남겼다. 

그가 그렇게 많은 책을 읽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뜻밖에도 어린 시절 사고 때문이었다. 그는 다섯 살 때 어머니와 함께 계단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겪었다. 이 사고로 결국 그의 어머니는 2년 뒤에 죽고 말았고, 호퍼 자신 역시 2년 후인 일곱 살 때 시력을 잃게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잃었던 시력이 그가 열다섯 살 때 기적적으로 되살아났다. 하지만 호퍼는 이 회복을 일시적인 것이라 믿었고, 그리하여 그때부터 엄청나게 책을 읽어대기 시작했다. 얼마 후 다시 시력을 잃게 될 것이니 다시 눈이 멀기 전에 읽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읽어둬야지, 그는 이렇게 생각하며 눈이 혹사당하는 것도 개의치 않고 정신없이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이 어린 시절의 엄청난 독서가 그의 지성을 위한 자양분이 되었을 것임은 분명하다. 

절실함. 그를 키운 것은 아마도 팔 할이 절실함이었을 것이다. 앞으로 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마음은 얼마나 봄에 애탈 것이며, 앞으로 들을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마음은 얼마나 들음에 애탈 것이며, 앞으로 만날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마음은 얼마나 사람에 애탈 것이며, 앞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마음은 얼마나 생에 애탈 것인가. 끝도 없이 펼쳐진 수천의 날을 마치 한 장의 종이로 압축한 것처럼, 그렇게 절실한 마음의 사람들은 바로 그 하루라는 종이 한 장에 자신의 전 삶을 피로 새겨 넣을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절실함을 자주 말한다. 절실함으로 하나님을 만났던 사람들의 응답을,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라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전한다. 그러나 이 절실함은 오직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것만일까? 그렇지 않다. 믿음이 쌍방향이듯 절실함 또한 쌍방향이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믿음’이란 관계의 표현, 어느 한 쪽만의 일방적 믿음으로 ‘관계’가 이루어질 리 없다. 그러니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믿음과 신뢰의 관계라면 거기에는 반드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믿음이 담겨 있음을.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절실함. 성경은 이 절실함을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드려진 예수의 기도로 보여준다. 마침내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예수는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리며 자신의 말을 이 세상에 남긴다.(요 17:6-11) 남기는 말, 그것은 말 그대로 예수의 유언(遺言)이었다. “나는 그들을 위하여 빕니다. 나는 세상을 위하여 비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사람들을 위하여 빕니다.” 세상을 그렇게 사랑하신다는 주님도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는 남겨진 사람들이 애타게 눈에 밟히셨던 모양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으나 그들은 세상에 있습니다.” 남은 자들을 향한 애타는 마음으로 주님은 간절하게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는다. “거룩하신 아버지, 그들을 지켜주십시오!”(요 17:11) 그렇게 이 말은 이 세상에 남은 우리 모두를 위한 말이 되었다. 그러니 잊지 말기로 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절실함을 입은 사람들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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