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 흙수저와 하나님 나라

최근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이는 젊은이들의 자조적 표현이지만, 한국 사회의 객관적 현실을 이성적으로 반영한 이야기다. 단지 주관적이거나 감상적인 표현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른바 '금수저-흙수저 계급론'은 크게 2가지 사회 현실을 드러낸다. 첫째는 한국사회의 계급적 현실이다. 과거 노예주와 노예, 양반과 상놈, 지주와 노비가 있었듯이 21세기인 오늘도 금수저와 흙주저가 있는 것이다. 원활한 상호 이동과 소통이 어려운 금 같은 계급과 흙 같은 계급이 엄연히 있다. 이 두 계급 사이는 주종관계(갑을관계)이다. 둘째는 금수저와 흙수저가 대물림 되는 현실이다. 소수의 금 같은 계층의 부와 지위 그리고 다수의 흙 같은 계층의 부와 지위는 당대에 끝나지 않는다. 그 양극화 상태는 대를 이어 지속된다. 부의 대물림 현상이 뚜렷한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입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거나 흙수저를 물고 태어날 뿐 아니라 금수저 인생, 흙수저 인생이 이미 결정되는 것이다. 매우 야만적이고 절망적인 사회다.

상위 10%가 부의 66% 점유 현상 대물림

김낙년 교수(동국대, 경제학)는 한국 사회의 양극화 현상에 오랫동안 주목한 학자다. 그가 최근 '한국의 부의 불평등 2000~ 2013 '보고서를 내놨다. 이 보고서는 수저계급론을 충분히 뒷받침한다. 국세청 과세 자료를 기반으로 이루어진 이 자산(부동산과 금융자산 등) 불평등 보고서는 소득의 극심한 불평등 현실과 더불어   수저계급론이 단순한 느낌이 아님을 입증한다.

김 교수의 보고서에 의하면, 2010 ~ 2013년 동안 상위 1%가 보유한 자산 비중은 25.9%였다. 또한 상위 10%가 가진 자산 비중은 66%로 ,국민 전체 자산의 절반을 훌쩍 넘었다. 그런가하면 하위 50%의 사람들이 보유한 자산 비중은 고작 2% 였다. 전체 국민을 10명으로 본다면,  10명 중 한 사람이 나라 전체 자산의 66%를 차지한 반면, 5명은 겨우 2%를 갖고 있는 꼴이다. 이보다 더 우려스러운 사실은 부(자산)의 불평등이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부자들의 자산은 꾸준히 불어나는 데 반해 가난한 사람들의 부는 상대적으로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2000~ 2007년 동안 상위 1%가 전체 부의 24.2%, 상위 10%가 63.2%를 차지했다. 그런데 2010~ 2013년 동안 이들의 자산 비중이 각각 1.7%, 2.8%씩 상승했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비유

성경은 '차별적인 부'에 집중적인 관심을 갖는다. 부 자체에 대한 사변적인 이야기엔 전혀 관심 없는 성경은 '차별적인 부'의 현실에 항상 주목한다. 성경의 중심에 서 계신 예수께서는  차별적인 부에 주목할 뿐 아니라 그런 부를 비판했다. 차별적인 부의 현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심히 거스른다. 그것은 사랑과는 상극이기 때문이다. 불행과 공멸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는 차별적인 부의 현실을 결코 외면하거나 묵인하거나 긍정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 현실에 적당히 적응하지도 않았다. 그는 차별적인 부의 현상이 구조적으로 만연된 세상(사회)에 충격을 주며 맞섰고, 변화를 도모했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비유'(눅16:19-31)는 좋은 사례이다. 이 비유의 초점은 우선 부자가 응징과 심판을 받은 이유에 맞추어진다. 예수께서는 그 이유를 이렇게 천명하셨다.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25절)

이 비유에 나타난 부자는 특별히 악한 데가 있는 사람이 아니다. 특별히 타락한 자였거나 다른 부자들이 저지르지 않는 특정한 죄를 지은 사람도 아니다. 그저 한 사람의 부자로서 부자답게 살았던 사람이다. 고운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겼다는 표현(19절)은 부자답게 산 모습일뿐이다. 비록 부의 획득과 축적 과정이 공정하였다 해도(세상에 그런 법은 희박하지만) 차별적인 부는 성령을 거스른다. 하물며 그 과정이 공정하지 않았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세상에는 합법적인 불공정과 착취가 얼마든지 있다. 법이나 시행령이라는 것이 소수의 부자들을 위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사회에서 부의 형성 과정이 공정했다고 결코 말 할 수 없다. 공정했다고 주장할 사람은 아마도 10%가 안 될 것이다.

아무튼 예수께서는 차별적인 부 자체를 문제 삼으신 것이 분명하다. 예수님은 차별적인 부에 대해 문제 삼았을 뿐만 아니라 차별적인 부의 현상을 가진 사회를 변혁하는 데 집중하셨다. 위 비유의 목적은 내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데 있지 않다.  현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양극화된 현실을  바꾸려는 데 목적이 있다.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18:36)

이는 예수께서 빌라도 법정에서 재판을 받으며 하신 말씀이다.

당신은 이 말씀을 어떻게 읽는가? 특히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라는 구절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궁금하다. 여기서 물론 하나님 나라는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시는 삶이요 사회를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개인이자 사회이다. 헌데 그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그 나라는 내세, 피안에나 있다는 말인가? 이 땅에 있되, 차별적인 부가 만연된 비정한 사회와는 다른 차원의 사회(세상)가 있다는 말인가?

예로부터 불의한 부자들일수록 하나님 나라를 저 세상, 피안의 세계로 밀어냈다. 소수의 기득권자, 지배계급이 하나님 나라를 저 세상으로 몰아내는 데 집요하게 몰두하는 이유는 현세의 기득권을 유지하거나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런가하면 부자들에게 세뇌된 다수 가난한 사람들도 하나님 나라를 저 피안의 세계로 넘겨버렸다. 그러면서 가난한 사람들은 차별적인 부가 존재하는 현실  세상에 순응하고 적응하는 데 급급했다. 종교는 가난한 사람들을 세뇌시키거나 길들이기 위해 부자들이 아주 요긴하게 써먹는 수단이다. 돈에 종노릇하는 종교는 흔히 왜곡된 전생론이나 내세론을 갖고 가난한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지금 흙수저로 사는 까닭은 전생에서 지은 죄의 업보이니 숙명하라거나, 차별적인 부가 없는 세상은 내세에서나 가능하다는 식으로 혹세무민하는 것이다. 또한 부자와 짝한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복적인 환상을 심어주며 부자되기를 꿈꾸게 한다. 그 교회는 가령 로또복권에 기적적으로 당첨되도록 돕는 차원의 전능한 신을 만들어 팔아먹는다.

한편  긍정적인 사고방식 또한 소수의 부자들이 움켜쥔 정부, 언론, 학교만이 아니라 교회에서 잘 써먹는  정신교육 도구다. 금수저- 흙수저 계급이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저 그 현실에 순응하는 인간을 만드는 데 그 사고방식은 널리 쓰임받는다.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무장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이 '나는 흙수저이다','나는 계급 구조 속에 살고 있다'는 이성적 분별력을 갖는 순간 자학에 빠지지 말라는 충고를 흔히 한다. 불의한 금수저일수록  양극화된 사회를 직시하는 흙수저를 싫어하고 두려워한다.

성령 충만한 초대교회 교인들의 생활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뒤 그의 성령을 받은 처음 교회가 보여주는 가장 큰 특징은 뭐니 뭐니 해도 공유공동체 생활이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료를 따라 나눠 주며…."(행 2:44-45)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행4:32-35)

주님의 성령을 충만히 받은 초대 교회 교인들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헌신했다. 위 두 구절이 증거하는 초대교회 생활상은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진 모습이다. 이는 겨자씨와 같고 누룩과 같은 것으로서 앞으로 널리 확산되고 성장할 공동체의 모습이었다. 성령 안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사람들이 이룬 그 사랑의 공동체가 비록 널리 확산되지는 못했지만  , 그 공동체는 그리스도인들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영적 자산이다. 성령을 모신 그리스도인이라면 지금도 그 공동체 정신을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실현하는 데 헌신해야 할 것이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가 저 세상에 있다는 가르침이 아니다. 그 나라는 이 땅에 이루어지되 차별적인 부가 없는 새 사회이다. 저마다 능력과 달란트를 따라 성실하게 일하고 필요에 따라 나누는 새로운 사회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룬 경험(부분적이나마)을 가진 초대교회를 본받을 뿐 아니라 그 경험을 널리 확산시키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첩경은 성령을 충만히 모시는 데 있다. 그런데 성령을 충만히 모시려면 소수의 금수저로 살겠다는 의식이나 흙수저로 만족하며 사는 정신을 마음속에서 밀어내야만 한다. 성령의 도움으로 기복신앙, 내세주의 신앙, 개인경건주의 등을 심령에서 밀어낼수록 성령은 더욱 임하신다. 성령은 차별적인 부로 굳어진 사회(세상)에 길들여진 의식을 마음에서 밀어낼수록(회개할수록) 임하신다.

끝으로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새삼 드린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

김달성목사(평안감리교회. '교회에서 신을 만드는 사람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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