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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사회
이광섭  |  h-stai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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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년 11월 09일 (월) 00:29:36 [조회수 : 2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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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이란 말이 있습니다. 갑을 관계에서의 ‘갑’에 어떤 행동을 의미하는 ‘질’을 붙여서 만든 말입니다. 조어적으로 참 낯섭니다. 인터넷 백과사전은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갑질은 뚜렷한 사회현상이 되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말이 되었습니다. 땅콩 회항사건이나 부천 백화점 모녀 사건 등 처음 이 말이 대중들에게 언급 되었을 때만 해도 사회적 공분이 엄청나게 커서 곧 사라질 말처럼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그건 본질을 보지 못하는 짧은 생각이었던 셈입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갑질과 주차요원들에 대한 갑질에서 백화점 판매 직원에 대한 갑질, 대기업이 중소기업에게 행하는 갑질까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갑질 목록이 순식간에 펼쳐집니다. 갑질은 우리 사회의 광범위한 일상입니다. 갑질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무릎을 꿇거나, 90°각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것입니다. 무릎을 꿇고, 허리를 90°로 숙인 ‘을’에게는 인격이 없습니다. ‘갑’의 만족과 우월감을 위한 장식품일 뿐입니다. 갑질을 하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당당합니다.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우리 사회가 보증하고 있다는 태도를 보입니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 우리 사회는 갑질 공화국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런 갑질 사회에 균열을 내는 작은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부산의 한 아파트에 사는 한 여학생이 아파트 승강기에 글을 붙였습니다.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경비 아저씨들이 출근하는 주민들에게 90°각도로 인사하는 모습을 보고 신문에서만 보던 갑질이 우리 아파트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았다. 너무 부끄럽다. 존중받고 싶다면 먼저 남을 존중해야하지 않을까. 경비 아저씨들이 아침에 나와 인사하는 일을 빨리 없앴으면 좋겠다.” 이 글은 순식간에 인터넷과 모바일에 퍼졌고,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좀 더 실질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경우도 있습니다. 도시락 매장 <스노우 폭스>에 붙은 ‘공정서비스 권리 안내문’이 그것입니다. “우리 직원이 고객에게 무례한 행동을 했다면 직원을 내보내겠지만, 우리 직원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면 고객을 내보내겠습니다.” 파격적인 안내문입니다. 이에 대해 김승호 대표는 이렇게 말합니다. “고객이 매장을 찾는 것은 필요한 것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한국에서는 고객만족 교육(CS)을 윤리나 상호존중에 바탕을 두지 않고, 소비자 권리만 강조하는 쪽으로 진행합니다. 외국의 경우, 무례한 고객을 내보낼 권한이 업체에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그렇게 한다면 고객의 갑질 문화는 없어질 것입니다.”

그의 ‘공정서비스 선언문’을 보면서 작은 희망을 갖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일상적인 갑질 문화가 사라질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깁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내재화된 갑질문화에 대한 현상들을 자주 목격하기 때문입니다. 최환석의 <갑질사회>는 이에 대한 보다 분명한 답을 줍니다. “계층화가 심한 불평등 사회일수록 하위계층에 대한 편견이 증가하고 그들에게 우월감을 표시함으로써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는 말처럼 상사에게 꾸지람 듣고 와서 가족에게 분풀이하거나, 자신의 사회적 처지에 분노하며 자신보다 낮은 계층을 무시하는 식이다.” 결국은 불평등 사회가 갑질 문화를 부추킨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한국교회가 갑질 문화에 맞설 내적인 힘을 갖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갑질은 잘못된 개인의 문제라고 방치하고 침묵하면서 현재의 사회 현상에 암묵적으로 동조하고 있는 게 교회의 정확한 실상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갑질 사회에 균열을 내는 작은 움직임을 응원하고, 교회 안에서부터 갑질 퇴치 신앙 실천 운동을 펼쳐나간다면 사회적 공감대를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이득만을 챙기고 현실에 안주했던 당시 유대종교 지도자들을 향해 호되게 질책하셨던 주님의 말씀이 오늘 우리를 향한 예리한 검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하는 교회공동체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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