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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에 키스, 첫 장부터 당황스러웠다[책 뒤안길] 목사 딸이 쓴 산문집 <육체탐구생활>
김학현  |  nazunj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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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년 11월 04일 (수) 18:15:31
최종편집 : 2015년 11월 05일 (목) 03:05:07 [조회수 :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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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 사-알-짝 속았소. 여보! 김현진의 산문집 <육체탐구생활>, 제목이 꽤나 선정적이지 않소? 제목뿐 아니라 표지에 실린 글귀는 더욱 호기심을 자극한다오.

“나를 스쳐간 당신의 몸, 당신의 이마를 한때 어루만졌던 누군가의 손, 아스팔트 위에서 사정없이 깎여나가던 누군가의 피와 살, 철탑에서 얼거나 타들어가는 몸들, 당신이 나를 낚아채주길 바라면서 숨죽여 뺨을 대보았던 당신의 쇄골. 몸은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은밀한 삶을 알고 있다. 이것은 그 ‘몸’에 대한 이야기다.”- <육체탐구생활> 10~11쪽 ‘작가의 말’ 중에서

그러나 내용을 들추고 보니 사-알-짝 속은 기분. 하하하. 어쩌겠소. 거침없는 표현 방식 때문에 당황하고, 재기발랄하면서도 우울한 작가의 내면에 닿아 슬프기도 하오. 첫 장부터 시체와의 키스가 날 당황스럽게 하고 말았소. 그렇게 작가는 느닷없이 독자를 당황시키는 매력이 있다오. 그래서 차라리 통쾌한 여운이 남소.

육체를 작별하는 방법- ‘차갑게’

   
▲ <육체탐구생활>(김현진 지음 / 박하 펴냄 / 2015. 9 / 324쪽 / 1만3000 원)

“그를 그 냉장고에 집어넣기 전에 나는 차가운 그의 얼굴을 살살 만져보았다. 참 많이 사랑했고 미워했고, 너무 사랑받고 싶었고 미움 받기 싫었던 얼굴이었다. 그리고 혈색이 가신 그의 입술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내가 태어나서 해 본 것 중 가장 차가운 키스였다. 그렇게 나와 마지막으로 입을 맞춘 그는 화장터로 옮겨졌다.”- <육체탐구생활> 16쪽에서

여보! 이것이 작가가 죽은 아버지의 육체를 대하는 방식이오.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했던, 재가 된 이들에게 보내는 레퀴엠”이라는 현란한 글귀보다 더 현란한 애증이 작가와 아버지 사이에 흐르고 있다오. 고리타분한 목사 아버지와 삐딱한 목사 딸, 뭐 그림 같은 게 나올 것 같지 않소? 역시 그 그림은 너무나 명작이오.

그녀의 생애에서 가장 차가웠던 ‘그와의 키스’는 이미 육체를 잃고 한 줌의 재가 된 이들 모두에게 보내는 찬양이오. 작가가 다루는 육체 찬양은 보통 사람의 그것이 아니오. 50대의 아버지가 죽자 영양에서 올라온 가문 사람들이 고향에 묻어야 한다고 주장했소. “가서 종이컵들 가져오시오” 외동딸 상주인 작가가 외친 말이오.

“우리가 매장을 한다면 팔 하나 잘라 대구에 묻고, 다리 하나는 영양에 묻고 할 수가 없지만 어차피 화장이지 않습니까? 한 줌 가루가 된다고 하는데 제가 보기에 모두가 나눠 갖기에는 충분히 많네요. 원하시는 분들은 다 밀폐용기를 가져오시면 공평하게 나눠 갖기로 하겠습니다.”- <육체탐구생활> 17쪽에서

물론 이 당돌한 제안을 받아들인 사람은 없소. 하지만 본인은 받아들였소. 생전에 그리도 갈등했던 아버지의 뼈를 빻은 가루 한 줌을 담아 집안에 모셨으니 말이오. 여보, 우리가 딸을 키워낸 목사 부부여서 그런지 이 당돌한 딸내미의 모습이 어딘가 익숙하긴 하오. 하지만 전혀 다른 구석이 너무 많아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오.

가난한 목사 딸로 사는 방법- ‘당차게’

목사 딸이 목사 아버지를 보내는 방법이 너무 차갑고 적나라해 추천하고프진 않지만, 자칭 ‘집도 절도 돈도 빽도 없는 도시빈민이자 비정규직 노동자로 가난한 삶을 건사했던 영혼’으로는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오. 사명감만 충만하지 가족을 건사하는 데는 문외한인 무능한 목사 아버지에는 어울리지 않는 너무나 걸출한 딸이오.

난 목사로서 ‘그 목사 딸’이 그토록 애증하는 ‘그 목사 아버지’가 이해가 안 가오. 외동딸을 고등학교 1학년 때 중퇴하게 만들고, 이후에 가까스로 이어진 대학 시절 내내 녹즙 배달 등을 하며 학비는 물론 자신의 생활비와 부모까지 부양해야 하는 현실에 내던진 그를 용서할 수가 없소. 도대체 그 목사에게 사역이란 무엇이었을까 짚어보게 만드오.

‘목사는 사역 외에 돈벌이를 하면 안 된다’는 기가 막힌 논리로 딸을 압박하고도 모자라, 딸에게 노트패드 사게 100만 원만 달라는... 후에 이 야무진 딸이 그 100만 원을 못 드린 것을 자책하게 만드는... 후! 그런 목사였소. 우리가 아는 유명 목사들과는 질이 다른. 보통 목사들과도 전혀 다른.

세상만사를 전혀 모르는 부모님의 해맑은 얼굴을 보며 피해의식에 시달리며 사는 그녀, 그러나 목사의 딸은 “해맑은 얼굴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깊은 신앙 덕분”이라고 에둘러 좋게 해석하오. 그 아버지보다 그 딸이 훨씬 났소. 그러나 그 사명감 충만했던 목사 아버지는 ‘교인이 아무도 안 오는 교회’의 담임 목사였소.

여보! 또 딸의 기억 속에서 “성경에 자식에게 매를 아끼면 애를 망친다는 말이 있는데, 나의 부모님은 그 말을 잘 지키는 분이었다”고 기억하게 하는 아버지였소. 다행히도 딸이 ‘사랑의 매’로 받아들인 것 같아 한편으로 더 서글프기도 하오. 마지막으로 그리고 결정적으로, 교회건물의 경매로 산 자들(딸과 어머니)을 길거리에 나앉도록 만들고 떠난 목사 아버지.

혼자도 잘 사는 목사 딸- ‘파이팅!’

부모의 무능에 길들여진 딸은, 그것도 외동딸은, 단편영화 감독, 웹진 최연소 편집장,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최연소 합격 등 한 시사주간지에서 ‘성공한 10대’라는 제목으로 그를 표지모델로 쓸 정도로 성공(?)했소. 그러나 아버지의 매맛을 안 그녀는 이러한 결론을 내리고 있소.

“애는 좀 패서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시면 이 말씀 하나만 간곡하게 드리고 싶다. 그렇게 큰 애는, 자기 자신을 아끼는 법을 잘 모르게 된다고. 나아가서 누가 나를 막 대하는 것에 대단히 익숙해진다고.”- <육체탐구생활> 75쪽에서

당차게 자라 준 ‘그 목사의 딸’을 ‘그 목사’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소. 그의 악영향 하에 놓인 딸은 험한 세상에서 너무 잘 큰 것일 뿐이오. 작가는 촛불집회장, 기륭전자 옥상 컨테이너, KTX 고공농성장, 쌍용자동차 굴뚝으로 찾아가 상처 입은 영혼들의 이야기를 글로 썼소.

자신의 상처가 남의 상처를 보듬고 위로하는 데로 향했으니 얼마나 당차고 기특한 일이오. 여보, 제목에 유혹당해 집어 든 책, 하지만 최근 읽은 책들 중 가장 진도가 더뎠던 책이오. 아마 목사인 내가 다른 목사 딸의 아픔을 내 가슴으로 맞닥뜨려서인 듯하오. 이렇게 서평을 쓰는 지금, 숙제를 마무리한 듯하여 홀가분하오. 멋있게 살아가는 목사 딸에게 ‘파이팅’을 보내며.

<육체탐구생활>(김현진 지음 / 박하 펴냄 / 2015. 9 / 324쪽 / 1만3000 원)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이 글에서 말하는 ‘여보’는 제 아내만이 아닙니다. ‘너’요 ‘나’요 ‘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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