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에두아르트 푹스(Eduard Fuchs)의 『풍속의 역사』를 읽으면서 30년 전쟁(1618-1648) 동안에 독일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전쟁에서 유럽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많이 죽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17세기 초에 독일의 인구가 1,600만 내지 1,700만이었는데, 30년 전쟁이 끝난 뒤 1648년의 총인구는 400만이었다는 것이다. 그 전쟁 동안 전염병이 돌아서 전쟁 자체보다도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고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서 600만 명 가까이, 다시 말해서 인구의 2/5가 죽었으니 그 전쟁이 얼마나 치열하고 참혹했는지 짐작할 만하다.

그 전쟁 동안에 동원된 남자들이 많이 죽었기 때문에 살아남은 남자의 수가 여자 2.5명에 대해서 1.5명의 비율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분명히 전쟁의 결과였다. 인구가 적어서 노동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가능한 한 많은 아이를 낳는 것이 이 시대의 요구여서 자식을 생산하는 것이 생식능력이 있는 모든 남자의 가장 고귀한 도덕적 의무였다고 한다. 그래서 독일의 일부 지방에서는 1부 2처제가 허용되기도 했단다.

▲ 30년 전쟁의 하일라이트 중의 하나였던 바우첸(Bautzen)의 공성과 파괴. 바우첸은 독일 동부, 체코와의 접경지대에 있는 성읍이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이러한 비참한 결과를 가져온 30년 전쟁이 같은 하나님을 믿는 신교와 구교 사이의 싸움이었다는 점이다. 이 끔찍한 전쟁 동안에 신구교 양측에서는 교회 지도자들이 어떤 성경구절을 인용하면서 전쟁을 부추겼을지 궁금하다. 미국의 남북전쟁 동안에는 노예를 원하는 남부의 교회에서는 신구약에 나오는 노예제도를 인정하는 성경구절들을 인용하고, 북부에서는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는 성경구절들을 인용하면서 자기들의 입장을 정당화했다고 한다. 30년 전쟁 동안에는 신구교 양측 모두 예수님이 가르치신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구절을 인용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진로를 막거나 그들을 공격해오는 부족들을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무자비하게 학살한 구약의 구절들을 인용하면서 자기편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전쟁을 부추겼을 것이 분명하다.

그들이 즐겨 인용한 구약의 예는 아마도 출애굽기, 신명기, 사무엘상에 나오는 아말렉에 대한 이스라엘의 철저한 복수였을 것이다. 그 복수는 이스라엘의 뜻이라기보다는 여호와의 뜻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내세워 싸우는 신구교 사이의 30년 전쟁 동안에 설교의 본문으로 삼기에 안성맞춤이다. 출애굽기에서 보면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직후 아말렉이 그들을 공격해왔다. 그들을 물리친 후 여호와는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출 17:14)고 말했다. 그리고 신명기에서는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25:17)는 하나님의 뜻을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전한다. 그 다음 사무엘상에 오면 여호와는 사무엘을 통해서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15:3)고 명하신다. 이 명을 받고 사울은 군대를 끌고 나가서 아말렉을 친다.

그런데 사울이 그 전쟁에서 이기기는 했지만, 여호와의 명령대로 인간과 가축을 모두 죽이지 않고 아말렉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은 죽이지 않았다. 여호와는 사무엘에게 사울이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일부를 남겨두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 사무엘이 사울을 찾아가서 왜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사울은 하나님 여호와께 예배하기 위해서 남겨놓았다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듣고 사무엘은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사 15:22)라고 응대한다. 그러고 나서 아각을 데려다가 사무엘이 손수 “여호와 앞에서 아각을 찍어 쪼개”고 만다. 이렇게 여호와는 원수에게 철저하게 복수하셨다.

설교자들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울의 실수를 다루면서 여호와가 명한 아말렉에 대한 무자비한 복수는 여호와의 명령이었기 때문에 별로 주목하지 않고 넘긴다. 실상 이 진멸사건을 명한 여호와는 원수에 대해서 철저하게 복수하는 잔혹한 신이었다. 그러나 여호와가 그의 선민 이스라엘을 극진히 사랑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보면 여호와는 사랑의 신이었다. 그래서 솔로몬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여호와의 사랑을 노래했다. 그러나 아말렉이나 이스라엘과 대적해야 하는 이웃 부족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스라엘은 요즘 극악한 살상을 벌이는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인 IS 이상으로 만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이었고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여호와는 소름끼칠 만큼 잔인한 신이었다. 그리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아도 여호와는 관용이나 용서를 모르는 철저하게 복수하는 신이었다. 어느 설교자의 말대로, 여호와는 잊지 않고 원수를 갚는, 뒤끝이 있는 분이었다.

한 마디로, 여호와는 잔혹한 전멸주의자였다. 아마 30년 전쟁 동안에 신구교 양측에서 즐겨 인용한 구절들 가운데에는 여호수아서에 나오는 구절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들어가려고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31부족을 칠 때도, 여호와는 여호수아에게 어른들과 아이들을 가리지 않고 모두 죽일 뿐 아니라 우양과 나귀까지도 칼로 쳐서 죽이고 성읍을 모두 불태우라고 명하셨다. 당시에 교회에서는 노아 시대에 세상을 홍수로 심판한 사건이나 죄에 물든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 멸망시킨 사건도 언급했을 것이다. 구약의 여호와는 당신의 마음에 맞지 않는 인간을 철저하게 벌하고 이스라엘의 원수들에게 복수하는 데에 능한 신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복수가 기록된 성경의 본문들은 30년 전쟁 동안 교인들에게 전의를 불태우도록 독려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어쩌면 그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랑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신 구약의 하나님의 사랑에 국한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나와 다른 상대와는 극한 대립을 하고 나와 같은 무리에 속하는 사람들과는 결속하도록 독려하는 데에는 선민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이방인을 적대시한 구약의 하나님의 사랑이 걸맞기 때문이다. 구약에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신 여호와의 사랑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구절도 나온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여호와는 분명히 사랑의 하나님이었다. 그러나 거기에 기록된 사랑은 선민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이고 이스라엘 민족 안에서의 이웃 사랑이지 이방인에 대한 사랑은 아니다. 솔로몬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여호와의 사랑을 노래할 때도 그 목자는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여호와며 그 사랑은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이다.

이러한 구약의 여호와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예수님과는 아주 다르다. 예수님은 모세가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갚으라고 가르친 원수에 대한 복수를 관용과 용서로 바꾸셨다. 예수님은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용서를 가르치셨을 뿐 아니라 용서를 몸소 실천하셨다. 그를 체포하러 온 말고의 귀를 베드로가 칼로 베었을 때 말고의 귀를 만져 치료해 주시면서 베드로에게 칼을 칼집에 넣으라고, 칼을 쓰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당신이 십자가에 달릴 때 예수님은 그 죽음의 고통 중에서도 당신을 처형하는 사람들을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예수님은 당신을 믿는 사람들뿐 아니라 당신을 죽이는 자들까지도 용서한 분이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신구교 그리스도인들이 30년 전쟁 동안 예수님의 관용과 용서를 외면하고 구약의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서 철저하게 복수하려는 싸움에 휘말렸던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 30년 전쟁을 치루고 나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종교전쟁이 얼마나 부질없는, 예수님의 복음에 상반되는 일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 잔재는 지금도 남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도 파당을 지어서 서로 싸우고 모함하고 반목하면서 대화를 외면하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 곁에 있기보다는 여전히 구약의 여호와 곁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30년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