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서는 솔방울로 총알을 만들고, 여기서는 …

지난 봄 가까이 사는 선배와 함께 집에서 멀지 않은 수락산에 오른 적이 있다. 처음에는 철쭉이나 조팝나무꽃 등이 눈에 띄었다. 점점 숨이 가빠지면서 꽃보다는 버티고 서 있는 나무와 바위들이 보였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상에 도달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내려다본 산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산 아래서 위로 쳐다본 산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산에서 내려온 우리는 식당으로 가기 위해 개천을 따라 걸었다. 가다가 좀 쉬려고 의자에 앉았다. 물끄러미 흐르는 물을 바라보고 있는데 ,오리 세 마리가 물길을 거슬러 오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몸집이 큰 오리 한 마리가 앞서고, 작은 오리 두 마리는 그 뒤를 졸졸 따랐다.  오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선배가 불쑥 입을 열었다.

"엄마만 있네 !"

그러자 내 입에서는 다른  말이 나왔다.

"아빠만 있는 거 같은데…."

10월 12일은 콜럼버스가 1492년 남미 대륙에 처음 발을 디딘 날이다.  도처에서 이 날을 '콜럼버스의 날', '신대륙 발견의 날'로 정하고 기념한다. 그러나 베네수엘라는 2001년부터 이날을 '원주민 저항의 날'로 이름을 바꾸었다. 사실 '신대륙 발견'이라는 말보다 더 어불성설인 말도 없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콜럼버스가 그 대륙에 도착하기 전 오랫동안 그 땅에서 살아온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사건이나 역사와  세상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는 문제는 참으로 중요하다.  그 시각에 따라 오늘과 내일의 삶이 결정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세상과 역사를 보는 시각을 알려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구약성경의 중심축인 출애굽 사건은 명백한 시각을 말한다. 출애굽 이야기는 역사나 세상을 강대국 이집트나 바로왕(노예주)의 눈이 아니라 히브리 노예들의 눈으로 본 이야기다. 창조주 야훼 하나님의 우선적 선택을 받은 억압당하는 사람들( 약자, 가난한 자들)의 눈으로 역사와 세상을 본 것이다. 출애굽 사건이 확대, 발전, 심화된 십자가 사건은 그 시각을 더욱 예리하게 다듬었다. 로마제국과 이스라엘 지배계급에게 이중으로 눌린 사람들, 그 억압에 저항한 사람들을 대표한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사건을 중심으로 다루는 신약은  바로 그 예수의 입장에서 역사와 세상을 본 이야기를 한다.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는 일로 온나라가 시끄럽다. 현 정부의 국정화 정책에 많은 국민들이 저항하고 있다.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 역사학자들은 모두 나서서 국정화에 반대하고 있다.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국정화는 역사를 보는 관점을 하나로 고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 같은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시행하고 있는 정책으로서 국민들을 우민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역사를 보는 시각을 소수의 특정 세력이 독점할 때 생기는 폐해를 우리는 북한 역사교과서에서 여실히 볼 수 있다. 3대째 세습을 하고 있는 왕조체제요 수령주의적 병영국가인 북한의 교과서는 김일성이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한 것처럼 허위사실을 기술한다. 그러면서 항일 투쟁 시절 김일성이 모래로 쌀을 만들고, 솔방울로 총알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또 가랑잎을 타고 큰 강을 건너고 축지법을 썼다는 이야기까지 한다.

그런가하면 김정은에 대해서는 한 술 더 뜬다.  북한은 2014년 고급 중학교(우리의 고등학교 과정)에서 가르치는 교과서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 혁명 활동 교수 참고서>를 만들었는데 , 거기서 이렇게 기술한다.

"3살 때 총을 쏘았고, 9세 때는 3초 내에 10발의 총탄을 쏘아 목표를 다 명중시키며 100% 통구멍을 냈다. 3살 때부터 운전을 시작해 8살도 되기 전에 굽이와 경사지가 많은 비포장도로를 몰고 질주했다."

국정역사교과서를 반대하는 두 번째 이유는 승자, 지배자의 시각으로 본 역사를 일방적으로 주입하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 국정화를 추진하는 사람들이 극찬한 역사교과서인 교학사 역사 교과서(2011년 발행)를 보면, 소위 ‘식민지근대화론’에 입각해  친일(매국)과 독재를 미화하고 있다. 이는 명백한 헌법 위반이다. 우리 헌법 전문엔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1974년부터 2006년까지 한국은 중, 고등학교 <역사>교과서가 국정 교과서였다.  그런데 그 시기  전두환 정부가 만든 국정 역사교과서를 보자.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1982년 발행)는 전두환을 다음과 같이 칭송했다.

"제5공화국은 정의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모든 비능률, 모순, 비리를 척결하며, 국민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민주 복지 국가 건설을 지향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의 장래는 밝게 빛날 것이다."(고등학교<한국사> 178쪽)

1979년에 나온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또 보자. 그 책 295 쪽  '2. 민족중흥의 전기' 단원의 개관에서 우리는  "10월 유신을 단행하여 민족중흥의 새 전기를 마련하였다"는 문장을 볼 수 있다. 그리고 300쪽 '10월 유신' 부제의 글에서는 "10월 유신을 단행하였다. 이로부터 전근대적 생활 의식과 사대사상을 제거하여 한국 민주주의의 정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기술했다.

많은 국민의 반대와 저항에도 불구하고 국정화를 강행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국정화를 통해 과거 역사에 대한 해석을 독점함으로써 미래를 독점적으로 확보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본다. 우리가 과거에 대해 공부하고 말하는 이유는 오늘과 내일을 위해서다. 지나간 역사를 보는 시각은 곧 지금과 미래를 보는 시각이다. 때문에 어제를 보는 왜곡된 시각은 필히 오늘과 내일을 왜곡시킨다. 소수가 과거 역사를 보는 시각을 독점하는 목적은 오늘과 내일을 독점하고 농단하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한국교회연합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 3.1운동 이후 적극적 친일을 한 전력을 가진 한국교회는 회개를 한 적이 없다. 8.15해방 이후 수십 년이 자났건만 ,그동안  한국교회는 민족 앞에 친일의 죄를 참회하기는커녕 오히려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처벌을 방해하고 독재에 협력했다. 한국사회가 지난 수십 년 동안 권위주의적인 문화로 굳어지는 과정에서 권위주의적인 체질을 가진 대다수 한국교회의 역할은 지대했다. 그러면서 대다수 한국교회는 반공이라는 명분 아래서 맘몬과 손잡고 교회성장에 몰두했다. 그 결과 몸은 비대해졌지만 신앙적 건강지수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이제 비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심히 걱정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한국교회가 갖고 있는 시각은 무엇인가? 한국교회는 어떤 눈으로 역사와 세상을 보는가? 성경이 가르치는 눈을 갖고 있는가?  노예의 눈으로 보는가, 바로왕의 눈으로 보는가? 예수의 눈으로 보는가, 빌라도나 대제사장의 눈으로 보는가? 콜럼버스처럼 북미대륙을 침략해 수천만의 원주민들을 살상하며 땅과 황금을 빼앗은 백인 정복자-승자의 시각으로 보는가, 원주민의 시각으로 보는가?

"안약을 사서 눈에 바르라"(계3:18)

성령께서 하시는 이 말씀이 내 귀에 쟁쟁하다.

김달성목사(평안감리교회.  '교회에서 신을 만드는 사람들'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