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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거지이다”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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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년 10월 25일 (일) 00:08:33 [조회수 :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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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가을, 한국기독교회협의회(NCCK)는 90주년 총회를 맞으면서 ‘흔들리는 교회, 다시 광야로’를 주제로 내 걸었다. 표어가 좋다고 해마다 바꾸던 표어를 앞으로 100주년 까지 10년 동안 계속 똑같이 사용하기로 했다. 그만큼 위기의식이 큰 것이다.

  어느 날 JTBC 뉴스 앵커브리핑에서 손석희 씨가 ‘흔들리는 교회, 다시 광야로’를 인용하였다. 그는 한국교회의 위기감을 전하고, 그런 문제의식에 대해 공감을 피력하였다. 교회와 사회가 같은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교회 안에서 느끼는 절박함보다 교회 밖에서 느끼는 우려감이 클 것이다.

  ‘어쩔거나 한국교회’(신앙과지성사)를 쓴 신성남 집사는 그간 터부시 되어온 교회의 금기를 건드린다. 기독교를 ‘목사교’라고 하고, 평신도를 ‘맹신도’라 부른다. 깨어난 평신도 중 다수는 ‘가나안교회’를 선택하여 더 이상 교회 다니기를 포기하였다. 교회 밖으로 내 몰린 그들은 언제쯤 다시 ‘가나교회로’ 들어가 혼인잔칫집의 흥겨움을 회복할 수 있을까?

  교회는 가장 자주 영성을 말하지만 진정한 영적 발랄함이 없다. 형제애와 섬김을 입버릇처럼 되뇌지만 ‘항존(恒存)하는’ 계급의식이 교회를 지배한다. 신앙공동체인 교회는 ‘자기 비움, 내적 충만함, 십자가의 고난, 그리스도인의 자유, 예언자 의식’을 잃어버렸다. 입으로는 ‘무릎 꿇음, 섬김, 내려놓음, 나눔과 봉사’를 말하지만 선한 의도와 달리 대체로 위선적으로 비춰진다.

  한국교회는 압축성장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심지어 세계 50대 대형교회 중 한국에만 23개가 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하였다. 목사의 카리스마와 개체교회 간 경쟁으로 짧은 기간 고도성장은 가능했지만, 단 한 세대 만에 압축쇠퇴로 흔들리고 있다. 성장신화 만들기에 성공한 한국의 주역들은 비리와 세습 등으로 스스로 만든 기반을 허물고 있다.

  한국교회는 성장주의와 번영신학에 큰 영향을 받았다. 1970년대 군사독재와 경제성장 시대의 ‘잘살아보세’ 이데올로기는 무엇보다 교회에 가장 빨리 흡수되었다. 한국 재벌과 대형교회가 형성과정이 흡사한 배경이다. 둘 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독재적 리더십에 의해 숨 가쁘게 성장하는데 성공하였다. 대형화된 교회는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기업의 조직원리를 도입하였다. ‘꿩 잡는 게 매’란 말처럼 성장이라면 어떤 수단방법도 불사하는 이유다.

  압축성장의 현기증세와 압축쇠퇴로 인한 자기 분열, 이것은 비단 교회만 겪는 증상이 아니다. 한국교회의 진통처럼 한국사회도 똑같은 증상을 앓고 있다. 압축적으로 이룬 경제성장의 결과 지금 한국사회는 분배든 복지든 제대로 해본적도 없이 압축퇴행 중이다. 한국사회의 실상을 보여주는 객관적 지표는 ‘세계 최고의 자살률, 세계 최고의 이혼율,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 세계 최장의 학습시간, 세계 최고 수준의 비정규직 비율, 세계 최고 수준의 사회적 불평등, OECD 최저의 독서율’로 요약된다.

  이러한 한국사회의 현상은 한국교회의 만화경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인구추이에서 보듯 출산율의 급격한 감소처럼 새 신자 전도는 급격히 위축되었고, 높은 이혼율을 빗대듯 교회는 잦은 분쟁으로 분열하고 있다. 1인 가족이 증가하듯 교회는 대체로 개인주의 경향이며, 고령인구의 증가 보다 더 빠른 속도로 교회 구성원은 점점 고령화하는 중이다. 재벌이 한국경제를 대표하듯, 한국교회에는 마치 대형교회가 전부인 듯 비췬다.

  한국교회는 대안과 비전이 필요하다. 미국의 크리스탈교회에서 보듯 교회가 계속해서 성장하지 않으면 흔들리게 되고, 결국 무너지게 마련이다. 우리 주변에서 급성장한 건설기업들이 동네아파트마다 브랜드 이름만 남기고 급속히 사라진 이유이다. 교회와 기업의 존재방식이 유사한 까닭에, 그 결과를 예측하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다.

  이제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한국교회는 ‘물질주의, 특권의식, 개인주의, 폐쇄성’을 버리고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너나없이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구호와 설교에만 장단을 맞추기에는 한가롭지 않다. 그것마저 공허하게 들리는 까닭은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지 않던가? 가장 작은 실천부터 구체적으로 예수운동화 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 확실한 문제의식과 분명한 진로모색이 필요한 배경이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세상을 뜨기 직전에 “우리는 거지이다. 이 말은 참되다”(Wir sind Bettler, das ist wahr)라고 말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한국루터교회는 “나그네로 살자, 거지로 살자, 머슴으로 살자”란 슬로건을 내걸었다. 지금 우리는 빈손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겸손히 시인하고, 고백할 때다. 위기는 바로 하나님의 뜻을 새롭게 품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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