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어머니

10월 1일 수요일

그날 이후 가끔 혼자 많은 상념에 잠기곤 합니다.

여인의 모성애란 참으로 하늘 같이 귀하고 거룩하다는 생각.

어쩌면 모든 여인은 태초에 하나님이 이브에게 주셨던

‘생명의 창조성’을 갖고 태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세상은 남성의 정복욕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여성의 포용력에 의하여 유지되고 지속 된다는 생각 등 등---.

가끔 잠을 자려고 누워있다가도

아열대의 소나기가 천둥번개와 함께 요란하게 퍼부어 대는 날

환자를 돌보다가도 물끄러미 창밖으로 쏟아지는 소나기를 바라보며

여성성의 고결함에 대하여 생각하곤 합니다.

그 날 그 여인은 허름한 꾸보하우스 엉성한 대나무

마룻바닥에 누워있는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참 침묵이 흐른 후,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 하였지요.

아기를 낳은 후 남편과 시부모가 놀래서 내다 버리라 하였고,

아기를 내다 버리지 않으면 이혼한다고 남편이 강력히 협박하였지만

그녀는 남편대신 아이를 택하였으며

결국 남편에게 이혼당하여 시골 부모님 근처 카니키 섬에 오게 되었다고!

자기 배로 나았다고 저렇게 아이를 귀여워 할 수 있을까!

끔찍하게도 흉하게 생긴 아기를 어쩌면 저렇게 예뻐 할 수 있을까!

아기의 모습이 너무 흉악하여 꿈에 나타날까봐 겁나기도 한

장애아를 안고 귀여워하는 순수한 모정을 보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선교사로서 그녀만도 못한 나의 성정이

들통 난 것 같아 한없이 부끄럽고 창피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참으로 위대하고 거룩합니다.

모든 어머니들은 각자의 처지와 환경에서 자기 자녀들을 위하여

신과 같은 위대한 사랑과 헌신을 아끼지 않는 분들입니다.

모든 여성은 생명을 주는 이브(Eve)의 모사(模寫)입니다.

모든 여성은 하나님 사랑의 전령이요, 생명의 공급자로

이 세상에 태어난 분들입니다.

임시진료실을 찾아 온 그녀가

아기를 데려 올 수 없다고 자기 집으로 안내하여 따라가 보니

생후 12개월 째 되는 아기가 마치 판타지 영화에서나 봄직한

외계인처럼 생겼고 머리는 큰 농구공만큼이나 컸지요.

그 아기를 보자 처음엔 괴물 같아서 깜짝 놀랐지만

부모가 실망할까봐 전혀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고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기를 바라봅니다.

그러나 아무리 마음을 가다듬어도

집 주변의 허름한 분위기와 아기의 모습은

현실을 떠나 이상한 악마의 나라에 온 것 같은

섬뜩한 느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너무 크게 자란 아기의 머리는 이제는 수술을 한다 해도

뼈가 굳어버려 머리 사이즈의 크기를 줄이는 건 불가능 할 것 같습니다.

머리를 만지니 고무풍선처럼 물렁물렁하고 물이 가득 차 출렁출렁하여

무언가로 찌르면 금방이라도 물이 터져 나올 것 같네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습니다.

한숨과 연이어 “주여! 주여!” 하는 혼잣말만 나올 뿐입니다.

아이를 손으로 쓰다듬어 주며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구하지도 않고 그저 기도만 하였습니다.

무슨 기도를 하였는지 생각은 나지 않지만 그저 기도만 하였습니다.

남편도 없이 혼자 어촌에서 날품을 팔며 불구 아이를 키우는

그녀가 불쌍하기도 하고 한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며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임하기만을 기도 하였습니다.

이 아기는 눈은 있으나 보지는 못하고, 귀는 좀 알아듣는 것 같다더군요.

한 참 눈을 감고 기도를 끝마친 후 아기를 어루만지며 예뻐 해 주니

아기가 귀를 조금씩 움직이며 고맙다는 듯 반응을 보여 줍니다.

어린이를 포함하여 불과 130여명이 모여 사는

이 작은 섬마을에서 지내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참 이상한 마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눈이 한쪽 없는 아이가 태어나는가 하면

요사이 흔치 않은 언청이 아이들이 몇몇 눈에 보이고

또 오늘처럼 머리가 이티(외계인)처럼 가분수인 아이도 있고

어른 남자들은 대부분 절뚝거리며 걷고

우중충하게 색이바래 곧 쓰러질 듯 한 꾸보 하우스 ---

속속 내면으로 들어가 보면 볼수록 보통 마을과 달리

이상한 모습들이 발견됩니다.

등골이 오싹해지며 약간 겁이 나기도 하지요.

그런 가운데도 불구아기를 향한 정성어린 어미의 모정은

마귀의 소굴이 아니고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 일깨워줍니다.

그 아기가 닷새 후면 돌이 된다고 돌잔치를 준비하며

일어나지도 못하는 아기 볼에 입을 맞추며 귀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미의 자식을 향한 마음이 얼마나 애틋한지요.

어미닭이 하루 종일 땡볕을 누비고 다니며

새끼 병아리들에게 헌신적으로 모이를

주워 먹이든 모습과 비견할 바가 아닙니다.

본래 여성성(femaleness)은 신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네팔에 가면 두루가(Durga)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은데

이는 힌두교 신화에서 창조적 여성적 힘의 전형이며 최강의 신이라 불립니다.

네팔엔 또한 인구수보다도 신의 숫자가 더 많은데

그 중엔 쿠마리(Kumiri)라는 살아있는 신도 있지요.

이 신도 역시 여성입니다.

카투만두, 더르바르 광장에 가면 쿠마리 신이 사는 신전이 있습니다.

이 살아있는 신은 어린 여자아이가 2-4세 일 때,

까다로운 자격요건을 갖추어 선발하는데

흠없고 아름다운 여아를 택하여 신으로 섬기다가

생리가 시작되면 신의 임무를 마치게 됩니다.

그녀가 신의 임무를 행하는 동안 가끔 정오에 백성들을 위하여

그녀가 사는 3층 사원의 창문으로 잠시 모습을 보여 주는데

그 때 많은 네팔인 들이 살아있는 쿠마리 신을 보려고 몰려듭니다.

그들은 쿠마리 신을 보면 행운을 얻는다 하지요.

나도 우연히 그 곳에 갔다가 살아 있는 쿠마리 신을 보게 되는

행운(?)을 얻은 적이 있습니다.

또한 힌두교에서 샤크티(Shakti, 시바의 아내)는

여성이 지닌 창조적인 힘을 말합니다.

아담의 배필인 이브(Eve)는 ‘생명을 주는 자’ 라는 말이지요.

지금 세상은 3W(Woman, World, Web) 시대라는 말이 나올 만큼

여성성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괴물처럼 생긴 장애아를 성심껏 돌보는 엄마의 성품은

헌신적이고 아가페적인 신의 성품을 보는 듯합니다.

여성은 선천적으로 감수성이 예민하고 인정이 많고 영성이 풍부하지요.

예수님의 죽음을 끝까지 안타깝게 지켜본 이도 그런 여성들이었으며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 알린 사람도 여성이었고

초대교회 이후 지금까지 말없이 교회를 섬겨온 이들도 여성들입니다.

장애아 모친의 지극한 모성애에 감동되어

지나치리만큼 여성성을 예찬한 느낌이 드는군요.

그녀는 나에게 가장 엄격하면서도 헌신적이셨던 여인

나의 어머니를 생각나게 합니다.

우리를 잉태하고 나아주시고 길러주시느라 고생하신

우리들의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감히 어디에 비교할 수 있을는지요.

어머니!

당신은 창조자의 생명의 대리인이요,

관리인이요, 지배인이며 담지자이십니다.

당신은 하나님 다음으로 위대한 제2의 신이십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존경합니다. 어머니.

이순이 넘었어도 어린아이처럼 여전히 어머니가 그리우며

당신은 내 생각 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쉬는

영생하시는 사랑이십니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는 어머니.

이국의 외딴 작은 섬

새카만 밤하늘 찬란한 반딧불을 바라보며

혹시 은하수 속에서 나를 지켜보실

당신을 불러 봅니다.

어머니!

곧 죽을 것 같은 나를 껴안고

살려 달라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셨던 어머니!

저는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나보다 더 연약한 자들을 돌보며

재미나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요

어머니의 기도 덕분입니다.

어머니.

선교사는 한 영혼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는

생명 살리는 일을 해야 한다고

은하수 속에서 들려주시는 듯한

당신의 음성을 생각하며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한 그렇게 살다가

생명이 다 하는 날

어머니 곁에 가렵니다.

‘And He has made all things beautiful in his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