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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쿠데타 또는 역사적 혁명?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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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년 10월 18일 (일) 00:46:21 [조회수 :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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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역사전쟁에 불이 붙었다. 오래 동안 이런저런 여론을 쑤석거리며 군불을 때던 정부가 마침내 국사교과서 국정화를 결정하면서 확전하고 나선 것이다. 기존 7종 검인정 국사교과서를 좌파에 경도되었다고 단정하고, 90퍼센트 국사학자에게 좌파 혐의를 뒤집어씌운 싸움의 당사자들은 아무래도 무리수를 둔 것처럼 보인다. 역사를 올바로 세운다면서 역사적 사실을 뒤집고, 진실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주도한 난데없는 역사 획일화는 보수색을 더 강화하려는 배경이지만, 번지를 잘못 짚었다. 사실 보수든, 진보든 역사는 사실과 그것을 해석하는 관점의 문제인데, 애초에 단정을 짓고, 낙인을 찍는 방식으로 사회과학으로서 역사학을 접근하는 것부터 시대착오적이다. 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입장은 ‘친일을 은폐하고, 독재를 미화하려는’ 의도로 의심하기 때문인데, 그것 역시 지난 경험의 역사에서 얻은 교훈이다.

  먼저 검인정 교과서에 대해 빨간색 덧칠을 하는 여당정치인들은 자신의 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만약 민주국가의 토대를 흔들 만큼 이념적으로 경사된 교과서라면 그 1차적 책임을 물을 곳은 저자와 출판사이지만, 집필 범위와 한계를 정하고 지침을 심의하고 내용을 검증한 감독기관의 책임의 무게는 더욱 막중하다. 직무유기도 문제지만, 암묵적이든 명시적이든 동조세력이 되고 만 것이다. 더군다나 현 정권이 만든 교과서이니만큼, 그 멍에를 짊어져야할 장본인은 바로 고발자인 그들 자신이다.

  그런 불편한 배경을 감추고 마치 남 말하듯 시비를 걸고, 심판관처럼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듣는 국민입장에서 영 괴롭기 짝이 없다. 정치인들이 오만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은 자기 이익, 자신의 정당과 정파의 이해 이전에 국민의 대변자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권력게임 하는 정치인만 정치인이 아니라 “시민들이 다 정치인”이란 말을 하였다. 국민도 주장과 정견이 있다는 점에서 정치인들은 국민의 대표자 역할에 신중해야 할 것이다.     
 
  과거 국정교과서 시절, 1961년의 군사쿠데타와 1980년 5월의 광주 그리고 이어진 5공화국 정권의 만행에 대한 국사교과서의 기술은 누구나 알듯 거짓말 투성이였다. 친일세력에 대한 철저한 단죄가 생략된 결과, 식민지 이후 독립국가에 넘겨진 해묵은 과제는 변변한 해결을 보지 못한 채 여기까지 왔다. 광복 70년을 맞은 올해, 다시 역사왜곡에 불을 지피려는 이들의 실체를 알 만한 국민은 다 안다. 나중에라도 그들에게 소방수로서 헌신과 희생을 기대하기는 애초부터 어렵게 느껴진다.

  지금 국정교과서에 가장 반대하는 이들은 이런 역사를 샅샅이 아는 전문가 그룹이고, 어쩌면 역사적 실체의 언저리에서 고통을 겪었던 개인들이다. 국정교과서 채택에 가장 찬성하는 이들은 역사쿠데타를 해서라도 진실을 감추고, 이념을 잣대로 편 가름하려는 집단일 것이다. 한때 교학사가 만든 검인정 국사교과서의 주도자들도 그런 역사혁명을 하는 심정이었을 터이다.

  역사쿠데타는 잠깐 성공할지 모른다. 그들은 신뢰여부와 상관없이 교과서 편찬에 대한 행정력을 갖고 있고, 공신력은 없지만 국민이 부여한 공적 권력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권력은 무한하지 않고 한시적임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교과서 사용 시기를 처음부터 못 박고, 대화와 타협 없이 밀어붙이는 것을 능사로 여기고 있다. 언제까지 역사적 교훈을 일회용으로만 국한시킬 것인가?  

  역사적 환난에서 우리 기독교 역시 할 말은 없다. 오늘 기독교 지도자들의 의식구조가 교학사 역사교과서 보다 더욱 객관적이고, 사실에 기초해 있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구한말 일제의 침략에 저항한 대안세력도 기독교이지만, 일제지배에 굴종하고 친일하던 대표세력도 기독교였다. 군사독재 시대에 가장 치열한 저항세력도, 가장 낯 뜨거운 부역집단도 기독교였다. 그런데 누구 한 사람, 어느 시기의 교회도 친일과 독재에 대해 구체적인 죄책과 반성을 남기지 못하였다.

  역사를 논할 때 가장 자주 인용되는 E.H 카는 이런 말도 남겼다. “역사는 언제나 다시 쓰는 현대사이다.” 오늘 한국사회가 무섭게 흔들리는 것도, 교회의 생태계가 처방전 없이 중병을 앓는 이유도 현대사 이전에 왜곡된 역사 때문이고, 청산하지 못한 폐습 때문이다. 그것은 감춰도 좋을 사실이 아닌, 반드시 치유해야할 진실이다. 중요한 것은 과거도 과거지만 희망을 잃어버린 미래의 역사이다. 누구든 역사의 뿌리를 흔들어대지 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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