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은 기쁘고 즐거운 명절이고, 긴 연휴지만 이를 기피하는 사람도 많다. 명절 동안 친지간에도 삼가해야할 질문 리스트를 보면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언제 결혼 할거냐? 언제까지 놀거냐? 좋은 대학 갈 수 있냐?”와 같은 질문을 듣는 대상은 모두 함께 하는 명절이 두렵다.

  사실 가장 불편한 당사자는 아내들이다. 기혼 며느리 명절 스트레스 1위는 ‘여자들 온종일 음식 준비시키고, 남자들은 TV만 볼 때’(YTN 조사, 49%)라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 여성에게는 명절기피증이 있다. 이혼이 가장 많은 때도 명절증후군이 나타나는 시점이라고 한다. 기피증의 배후에는 불편한 시(媤) 월드의 존재가 있다. 가급적 시댁 방문은 짧게, 친정 방문은 여유롭게 하기를 원하는 이유다.

  명절 뿐 아니다. 막장드라마가 아니어도, 대체로 TV에서 부부는 자주 긴장하고, 갈등하는 관계로 그려진다. 어떤 남자가 ‘왜 아내와 시장에 가면 자주 다툴까?’라는 글을 썼다. 그는 부부의 쇼핑경험을 예로 들었다. 대형마트에서 두부를 사려고 하면 두부 코너에 가서 두부만 사면되는데, 두부를 사러 가던 아내가 다른 판매대를 기웃거리며 지체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였다.

  만약 남자에게 구매 리스트를 쥐어 준다면 그는 빠른 시간에 그 임무를 완수할 수 있다. 단, 목록은 정확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만약 ‘맛있는 것’ 사오라, ‘저녁 찬거리’를 마련해오라, 특히 ‘알아서!’와 같은 추상적 지시는 수능시험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 이유는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여자와 달리, 남자는 몸과 마음을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몰빵 DNA’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거창하게 말하면 남녀는 우선 그 출생성분부터 다르다. 미셸 투르니에는 그 차이를 이렇게 구별한다. “아담이 사막의 먼지(흙)에서 태어났다면, 하와는 낙원의 수많은 꽃과 나무 아래에서 태어났다.” 존 그레이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서 남자와 여자의 근본적인 성격과 기질의 차이를 강조한다. 칼 마르크스도 한마디 하였다. 그는 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회경제적 관계에 주목하였다. “여자는 남자의 프롤레타리아이다.”

  그들은 ‘서로 다른 유전인자를 가진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이 되어 사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냐고 묻는다. 물론 우리 시대는 사정이 달라져 ‘일부 경우에 따라’ 남녀 사이의 역전(逆轉)현상을 말하기도 한다. 특히 SNS 유머는 은퇴한 남성을 향해 온갖 우스개로 조롱한다. 한마디로 ‘노후난민’이 된 남성들은 처량하다. 

  예를 들면, 나이가 들면 남자든 여자든 꼭 필요한 것이 있다고 한다. 다섯 가지만 꼽으면 여자의 경우가 ‘돈, 건강, 딸, 친구, 강아지’라면, 은퇴한 남자에게는 ‘아내, 와이프, 처, 마누라, 안사람’이라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듣자면 해로하는 부부사이, 남자와 여자 간 권력이동은 이미 이루어진 지 오래다.

  중요한 것은 부부 관계가 갑자기 좋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좋은 부부 역시 젊어서부터 노력하고, 신뢰를 쌓아가야 나중에도 좋은 법이다. 좋은 남편과 좋은 아내는 돈을 많이 벌어 와서, 사근사근해서, 청소를 잘해줘서, 비싼 선물 때문에 관계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가장 좋은 사람은 ‘그냥’ 좋은 사람이다. 부부 사이는 남과 비교되는 특별함 때문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그냥’ 좋은 사이여야 한다.

  이젠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았지만, 추석 무렵 초가지붕마다 둥근 박이 열렸다. 박꽃은 밤에만 피고, 아침이면 누렇게 시든다. 밤에만 꽃이 피면 어떻게 박이 열까, 란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박꽃에게 수정을 시켜주는 천생연분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박각시나방’이다.

  부부는 천생연분인 ‘박꽃과 박가시나방’으로 만났다.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는 마치 삼위일체처럼 ‘신성가족’이다. 부부든, 식구든, 친지 끼리든 좋은 사이가 되려면 특별한 조건이나 보상을 배경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때문에’ 사랑하시지 않으시듯, 사랑은 ‘그냥’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