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빌리은행

우리나라 자살률은 OECD국가들 중에서 1위다. 하루 평균 40명 정도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 현실이다. 지난 2013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자살한 사람들의 숫자는 일만 사천 사백 이십 칠 명이었다. WHO의 통계에 의하면 자살증가율도 우리나라가 1위다.  우리 자살률은 IMF 이후 급증했고 계속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그런데 자살하는 사람들을 남녀 비율로 보면 남자가 여자보다 2배 정도 높고 ,나이는 40-50대가 크게 증가하는 현상이 보인다. 물론 노인 자살률이 OECD국가들 중에서 가장 높은 것도 심각한 문제지만 중년의 자살률 증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년  남자의 자살률이 높은 현상은 우리나라 자살 현상의 특징을 말해 준다. 즉 경제적 요인이 두드러지다는 점이다. 그래서 최근엔 '경제적 자살'(Econocide)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고 있다.

다분히 경제적 자살이라는 성격을 가진 우리나라의 자살 현상을 볼 때 ,빚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많을 것은 뻔하다. 빚은 사람의 숨통을 죄거나 피를 말린다. 때로는 죽음으로 몰아가기까지 한다. 우리나라 가계 부채는 2015년 상반기 말 현재 1130조 5천 억원을 넘어섰다. 이에 반해 같은 시기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저축금(사내유보금)은 1000조나 된다. 그런데 그 가계 부채 숫자에는 가령 은행의 소액 대출을 감당하지 못해 파산한 개인의 빚은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정부가 발표한 가계 부채 금액은 제도권 금융 회사에서 연체되지 않은 빚의 합계일 뿐이다. 전문가들은 집계되지 않은 가계 부채 규모를 대략 100조 정도로 본다. 이 100조가 가계 부채 중에서도 악성 부채라고 할 수 있다.

몇 년 전 부산에서는 세 젊은이(20대)가 자살을 시도했다. 두 명은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고 한명은 간신히 살아났다. 그 세 명은 모두 빚에 쫓기고 시달리다 못해 동반 자살을 시도했던 것이다. 그 중 한 사람은 인터넷 관련업체에서 일을 하면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다 그만 1억원의 빚을 졌다. 다른 한 사람은 사진촬영 이벤트회사를 운영하다 4천만 원의 빚을 졌다. 나머지 한 사람은 실직한 상태에서 1천만 원 가량의 카드빚을 지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제도권 금융회사들은 연체된 사람의 빚은 손절해 버린다. 손실로 처리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고 금융회사는  그것을 대부업체로 넘긴다. 이게 문제다. 이렇게 넘겨받은 부채는 계속 살아남아 채무자를 두고두고 괴롭힌다. 파생금융시장에서 헐값에 사들인 그 채권을 갖고 대부업체들은 채무자에게 원금은 물론 이자까지 갚으라고 압박하고 괴롭히는 것이다. 추징을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한다. 때로는 악랄한 수법으로 추심읋 하는 바람에 개인이나 한 가족이 자살로 몰리는 경우가 빈번하게 생긴다. 대부업체로 넘어간 부채는 이미 금융회사가 손실로 처리한 돈이다. 그러므로 채무자는 갚은 의무가 전혀 없다. 소멸시효 5년이 지나 금융회사가 이미 상각 처리한 빚은 갚지 않아도 된다고 양심적인 금융전문가들은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우리나라에 '주빌리은행'이 생겼다. 대표는  제윤경, 명예은행장은 이재명 성남시장과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맡았다. 이 은행은 은행법에 따라 설립된 은행이 아니라 일종의 '부채탕감운동'을 하는 시민단체다. 이 단체가 하는 구체적인 일은 생계형 소액 채권 소각운동이다. 수백만 원에서 1천만 원 대의 빚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고, 또 고리사채에 눌려 기를 피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의  부실 채권을 주빌리은행은 매입해 탕감해주는 일을 한다. 이 은행은 모금한 돈으로 부실 무담보 대출 채권을 원금의 3-5% 정도를 주고 사들인다. 그리고 원금의 5-7% 정도를 채무자에게 갚으라고 권고한다. 그러니까 가령, 500만 원짜리 부실 채무자가 있다면 25만원 - 35만 원 정도를 받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채무자가 빚을 말끔히 청산하고 새로운 생활을 홀가분하게 하도록 돕는다. 이런 식으로 일을 추진하면 어느 정도의 기금을 갖고도 지속적으로 부실 채권을 정리해 나가는 자금을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 단체는 국가 차원에서 금융 회사들의 약탈적 대출을 규제하고, 이런 탕감 정책을 시행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이 은행은 출범 첫날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출범 당일만 해도  1983명의 빚 37억 원을 탕감했다.

이 주빌리은행이 출범하기 이전부터 이미 성남시는 부채탕감운동을 전개해왔다. 이재명 시장(집사)은 성남 기독교연합회와 지역 기업 그리고 시민들의 성금으로 기금을 마련해  '소액 채권 소각운동'을 전개해왔다. 2015년 상반기만 해도  성남기독교연합회는 1억원이 넘는 기금을 모금해 이 운동에 동참했다. 성남시는 지난 해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7차례에 걸쳐 생계형 채무자 792명의 부실 채권을 매입해 소각했다.

주빌리은행운동은 2012년 미국에서 일어난 바가 있다. ‘롤링 주빌리(Rolling Jubilee)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시민들의 성금 155억원을 모아 부실채권을 매입하는 등 부채탕감운동을 벌였다. 이는  미국의 금융위기를 맞아 일어난 시민운동,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의 일환으로 전개된 것이다.

희년

주빌리란 본래 희년禧年(Year of Jubilee.요벨의 해, 수양의 뿔의 해)에서 나온 말이다. 희년이란 7년마다 한 번씩 지키는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낸 다음 해를 말한다. 즉 이는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백성이 50년마다 한 번씩 지키도록 했던 특별한 해로서 대대적인 사회 변혁운동의 성격을 갖는다. 단순한 자선-복지사업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개혁 프로그램이다. 안식일- 안식년- 희년, 이렇게 이어지는 제도는 애굽을 탈출하고 가나안땅에 들어가 새로운 삶의 둥지를 튼 이스라엘백성이 지켜야할 매우 중요한 제도였다. 애굽의 노예살이에서 탈출한 히브리인들은 이제 가나안에서 새로운 살림을 해야 했다.즉 바로왕처럼 지배하는 자들도 없고 노예처럼 지배를 당하는 사람들도 없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살림이다. 젖과 꿀이 흐른다는 말은 바로 그런 삶과 사회를 의미한다. 자유롭고 평등한 사람들의 사랑의 공동체이다. 그런 공동체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희년법과 제도가 꼭 필요했다.

 억압하는 계층도 없고  억압당하는 계층도 없는 사회, 착취하는 사람도 없고 착취당하는 사람도 없는 세상, 북한 같은 일당 독재적인 전체주의도 아니고 돈이 왕 노릇하지도 않는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하나님은 애당초 출애굽의 은총을 베푸신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세상을 가나안에서 일시적으로 만들어놓고 사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 야훼 하나님은 안식일, 안식년, 희년법과 제도를 마련해 주셨다. 이에 부응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다. 그런 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에 기꺼이 순종하기로  약속했다.

안식일에는 누구나 노동을 멈추고 출애굽의 하나님을 기억하며 예배를 드렸다. 노예주가 자신의 소유물인 노예를 밤낮없이 부려먹던 고대 노예제 시대에 누구나 한 주에 하루 노동을 쉬도록 하는 동시에 노예를 해방시키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더욱 모시도록 한 법과 제도는 의미가 매우 크다. 또한 7년에 한 번씩 실시한 안식년에는 일 년 동안 누구나 노동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땅과 가축들도 쉬게 했다. 지난 6년 동안 부지런히 일해서 얻은 수확물을 갖고 사람들은 한 해를 지냈다. 아울러 안식년에는 모든 빚을 탕감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놀리는 땅에서 자생적으로 나고 자란 농작물의 수확물은 가난한 사람들이 차지하도록 했다. 안식년은 안식일 정신을  훨씬 강화한 것이다. 이는 생태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노예적인 노동도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도 주었다.

노동은 개인의 삶이나 사회에서 필수적인 요소다. 하지만 안식년 제도는 사람들이 노동에 매이거나 노동의 소외를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제도요 법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일반 노동자들이 7년에 한 번씩, 일 년 동안 유급휴가를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가능한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특수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극히 일부 계층만 누리는 안식년 제도의 혜택을 일반 노동자도 누리는 사회는 과연 어떤 사회일까? 안식년 제도나 법의 동기는 그런 세상을 염두에 두고 주어진 것이다. 노예 노동이 아니라 진정 자아실현을 위한 노동, 고통스런 노동이 아니라 기쁜 노동을 위한 제도다. 인생이나 사회를 장거리 경주로 본다면 이게 지혜로운 방식 아닐까.

50년마다 한 번씩 지키도록 한 희년법과 제도는 안식년의 원리를 연장한 것으로서 지금 우리의 눈으로 봐도 매우 개혁적이다. 아주 신선하고 은혜롭다. 기원 전 10세기 이전의 시대에 그런 법과 제도가 마련되었다는 점이 놀라울 뿐이다. 레위기 25장에 의하면 , 희년에는 크게 3가지 실천을 해야 한다. 수양의 뿔(요벨)을 세차게 불어제치면서 시작되는 희년에는 이스라엘사회 전체가 3가지를 실천해야 했다.

첫째, 모든 종(노예)을 자유롭게 풀어주라. 아무 조건 없이 풀어주라.

이를 오늘 우리의 현실에 적용한다면, 예를 들어 9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화시켜주어야 한다. 그리고 생산의 주역인 노동자들이 기업 경영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땅을 본래의 주인에게 되돌려주라.

본래 땅은 하나님의 것이다. 사람은 단지 땅을 관리하고 사용하는 청지기일 뿐이다. 그러나 살다보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사용하던 자신의 땅을 남에게 넘기는 수가 있다. 이스라엘사회에서 가난 때문에 남에게 넘긴 땅은 희년에 본 주인에게 되돌려주어야 했다.

오늘날 우리나라 토지 소유 상태는 매우 심하게 불균형하다. 우리나라의 부 서열 상위1%가 전국 개인 소유의 토지 50% 이상을 갖고 있다! 이런 불균형 상태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잘 아는 국민이라면, 어느  누구도 공정한 과정이 그동안 있었다고 인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해방 뒤 전산 가옥이나 토지를 나눈 과정에서부터 온갖 불법적인 부동산 투기 등의 과정을 안다면 말이다. 희년법의 두 번째 항목의 뜻을 그대로 살려 우리 사회에 적용하는 일은 대다수 국민에게 큰 기쁨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리 하려면 우리의 의식 수준이 한층 고양되어야만 한다.

현 시점에서는 토지공개념에 의한 토지세 정책이라도 시행하면 좋겠다. 가령, 토지가치세(Land value taxes)가 있다. 이는 기존의 토지세(Land taxes)와는 다른 것이다. 토지가치세는 토지 소유자에 의해 토지에 가해진 수고와 상관없이 ,인구증가나 사회발전 등 외부효과에 의해 늘어난 토지가치(불로소득)에 대해 부과되는 세금을 말한다.  높은 토지세는 토지 이용을 위축시키거나 효율적 이용을 해칠 수 있으나 토지가치세는 오히려 불로소득도 거두어들이면서 토지 이용을 활성화할 수 있다. 일거양득이다. 토지가치세가 부과되면 토지 투기를 목적으로 토지를 사재기하여 유휴지로 그냥 방치해두는 현상은 줄어든다. 아무튼 토지문제는 우리 사회의 질적 성장을 위해 반드시 풀어야할 사안이다. 인간만이 아니라 토지까지 상품화한 것은 자본주의사회의 원죄와 같은 것이다.

셋째 , 경작하던 땅을 쉬게 하라.

이는 생태환경문제 방지와 녹색환경을 만들기 위한 조치라 하겠다. 끊이지 않는 난개발과 생태계 파괴 사업을 모두 금지 시키고 원상 복귀시키는 작업의 근거가 되겠다. 토건 업자와 관료들이 손잡고 벌이는 무분별하고 탐욕적인 토건사업들은 멈춰야 한다. 이 법의 정신에 순종한다면 당장 4대강의 땜들은 철거하고 강을  원상회복시켜야 한다. 또한 화장실 없는 맨션아파트 같은 핵발전소는 폐기하고 태양에너지 같은 재생에너지를 확산시켜야 한다. 가정에서도 할 일이 많다. 참고로 나는 집에서 설거지 할 때 화학세제를 쓰지 않고 밀가루를 사용한다.

희년법과 제도는 가나안에서 이스라엘이 자유롭고 평등하고 형제애가 넘치는 사회를 건설하며 살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도 항구적으로. 야훼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이 만드는 사회가 모름지기 하나님의 공동체가 되려면, 반드시 안식일과 안식년만이 아니라 희년을 지켜야만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안식일과 안식년법의 정신과 제도를 저버리고 말았다. 껍데기  형식만 남고, 속 내용은 내팽개치기 일쑤였다. 더구나 희년은 더 했다. 희년법 실천은 고사하고 그 정신마저 더 멀리 집어던졌다. 이기심과 탐욕을 좇아 사느라 정신이 없던 그들은 희년이라는 단어조차 잊어버렸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부자유하고 불평등하고 사랑이 메마른 정글 같은 사회로 전락되고 말았다. 과거 종살이했던 애굽 사회 못지않은 지옥 같은 사회가 된 것이다.하나님과의 언약을 헌신짝처럼 버린 사람들과 사회가 받은 고통과 저주는 결코 작지 않았다.

'주님의 은혜의 해'를 이루신 예수님

혹시 희년법은 구약시대에나 유효했던 법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그 법은 폐기되었다고 믿는가?

누가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의 공생애 첫 일성은 희년이었다. 그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처음으로 밝힌 자신의 사명은 바로 희년 실현이었다. (눅 4:16-22) 예수께서는 이사야가 증거한 메시아에 관한 예언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자신이 바로 메시아임을 선언하셨다. 그리고 그 메시아 예언에 관한 말씀이 오늘날 이루어졌다고 단언하셨다. 그런데 그 예언 가운데열쇳말은 '주의 은혜의 해'다.(눅4:19) 이 '주의 은혜의 해'(쉐나트 하요벨, 수양의 뿔의 해)라는 것이 곧 희년이다. 그 단언하신 말씀을 직접 들어보자.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눅4:21)

예수님은 희년법을 완성하러 오신 분이다. 그는 희년법 정신을 전 세계에 확산시키고 ,그 정신을 발전 ,심화시키셨다. 그 정신을 인류 사회에 확장시킬 뿐 아니라 인간의 내면 깊숙이 침투시키고 새기기 위한 길을 닦으신 분이다. 예수께서 선포하신 모든 말씀의 주제는 하나님 나라였다. 그런데 그 하나님 나라의 기초는 희년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와 평등과 사랑 ,이는 희년 정신의 알맹이다. 예수께서는 사랑과 자유와 평등의 나라를 사람 속과 사람 사이에 세우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 희년 정신을 기초로 한 하나님 나라가 언제까지나 개개인 속 깊이 스며들게 할 뿐 아니라 사회 구석구석까지  파고들게 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칭의-구원과 희년

사도 바울이 강조한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는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 복음의 구원론적 표현이다. 즉 희년법을 실현하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예수를 구주로 믿는 개인과 사회가 받도록 하는 게 칭의의 목적이다.  예수를 믿음으로 얻는 칭의(Justification)의 본질적 요소는 하나님과 올바른(의로운) 관계를 맺고 사는 삶이다. 이 관계적 차원이 칭의의 법정적(Juridical) 차원보다 더 본질적이다. 법정적 차원이 하나님과 어긋나게 살던 죄인이 사면(죄 사함)을 받고, 의인이라는 신분을 얻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얻는 은총(선물)이라면 ,관계적 차원은 이제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화목 관계)를 유지하며 사는 삶 자체를 말한다. 예수를 믿음으로 얻는 칭의-구원은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연합되어 사는 것이다.

칭의란 의인이라는 인정을 받는 정도가 아니라, 성령의 도움으로 실제 의인의 삶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제 나에게 하나님 노릇해 주시고,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도움을 받으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삶이다. 성령의 도움을 받으며 이제 사랑의 이중 계명 즉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사는 삶이 곧 칭의를 받은 삶이요 구원을 맛보며 사는 삶이다. 이 삶은 인간이 자력으로 양심이나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살려고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서, 그리스도를 힘입어 하나님적 생명을 누리는 삶이다. 그런데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사는 그리스도인이 지켜야할 하나님의 법의 뼈대는 희년 정신이다.

종교개혁 이후 주류 개신교회는 수백 년 동안 칭의의 법정적(Juridical) 차원을 강조해왔다. 그에 더하여 한국교회에는 소위 구원파적인 칭의 -구원론이 만연되어 있다. 구원파를 이단으로 정죄하면서 구원파적인 구원론을 교회에서 암암리에 퍼트리고 있다. 많은 교인들이 예수를 믿고 세례 받으면 내세 천국 가는 티켓을 이미 받아놓은 것으로 굳게 믿는다. 그리고는 방종한 생활을 한다. 예수를 이용하여 부자 되고, 성공하는 일에 매진한다.  내세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이미 따 놓은 당상이고, 의의 열매를 맺으며 사는 것은 옵션이라고 굳게 믿고 사는 목사와 교인들이 허다하다. 선한 열매를 맺고 사는 일은 선택사항으로 밀어놓음으로써 결국 방종한 생활을 조장하는 왜곡된 칭의- 구원론은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와는 전혀 다른 가르침이다. 이런 한국교회 풍토에서 '주의 은혜의 해'에 관한 말씀 선포나 실천은 요원한 일이다. 평생 교회 생활하면서 희년이라는 단어를 단 한 번도 못 들어본 교인들이 허다할 것이다.

안식일(주일)을 목숨처럼 지키라, 고 가르치는 목회자들을 숱하게  보았다. 물론 십일조도 엄격하게 바치라는 가르침과 함께. 나도 그렇게 가르치며 목회를 한 적이 있다. 또한 안식년을 에누리 없이 찾아 누리는 목회자들도 적지 않게 봤다. 교회에서 일 년 동안 생활비를 꼬박꼬박 받아 가면서 자유로운 시간을 갖는 모습을 흔히 보았다. 그러나 희년법을 지키자(지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은 별로 없다. 교회 강단에서 희년에 관한 말씀을 갖고 설교를 하는 경우도 희귀하다. 주님의 은혜의 해를 목숨처럼 지키자는 설교는 고사하고 희년에 관한 한 조각 설교조차 듣기가 힘든 현실이 한국 교회의 현실이다. 희년 정신을 오늘의 현실에 적용한 메시지를 듣기란 어렵다. 희년을 영적으로 푼다는 영지주의자 같은 헛소리는 흔히 듣는다. 머리로는 두 발을 땅에서 떼고 공중부양하듯 하지만 몸은 현실의 이해관계에 재빨리 탐욕적으로 악착같이 매달리는 오늘의 영지주의자들.

교회의 이런 전통은 왜, 어떻게 생긴 걸까?

역사적으로 대략 서기 4세기경부터 그리스도의 교회는 희년 정신을 버렸다.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면서부터 그리스도의 교회는 지배계급과 짝하게 되었고 , 그와 동시에 희년 정신을 왜곡시키거나 멀리 내던졌다. 목회자나 교인들의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성향은 국교가 되는 기회를 타고 칡넝쿨처럼 뻗어나갔다. 교회 안팎으로. 16세기에 이르러  종교개혁을 했지만 개신교회가 희년 정신을 회복하는 경지까지는 못 갔다. 주류 개신교회는 새롭게 등장한 부르주아 계급과 짝하거나 함께 호흡하는 체질을 갖고 살아왔을 뿐이다.

더구나 주로 미국을 통해 들어온 한국 개신교, 지금도 천민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의 주류 기독교가 만든 종교 상품을 직수입해 사용하는 한국교회는 지배 계층과 더욱 유착된 체질과 성향을 갖고 있다. 한국교회 대부분의 회중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대다수 한국교회의  체질과 성향은 기득권자들의 논리에다가 종교적인 포장을 한 경향이 농후하다. 우리는 성경 말씀대로 믿는다며 말씀, 말씀을 강조하는 근본주의 교회나, 성령을 특허 낸 듯이 입만 열면 성령을 강조하는 교회일수록 기득권층과 더욱 짝한 역사를 갖고 있다. 기독교라는 간판을 단 교회가 속으로는 돈신을 높이며 물신주의로 돌아가기에 희년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 희년을 멸시한 지 오래다. 잊은 지 오래다.

'주님의 은혜의 해' 정신은 땅을 기경하듯 인간의 마음과 사회를 기경하라는 것이다. 농부가 풍성한 수확을 위해 묵은 땅을 때를 따라 기경하듯 마음과 사회를 주기적으로 기경하라는 가르침이다. 이는 온 우주와 세계를 창조하시고 경영하시는 하나님께서 일러주시는 가르침이기에 그  가르침을 따르면 개인, 사회, 세계는 평안하고 ,따르지 않으면 고통과 저주를 자초한다. 역사에 개입하시되 오직 출애굽 사건을 일으키고 희년을 이루기 위해 개입하시는 하나님을 그리스도 안에서 따르는 개인과 사회는 진정한 평안을 맛보게 된다. 물론 사회가 기경되려면 인간의 마음이 기경되어야 하고 ,인간의 마음이 기경되려면 사회가 기경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성령은 바로 이 일을 위해 쉼 없이 일하시는 영이시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간의 죄된 마음을 기경하는 일에 집중하는 공동체다. 그리고 예배 때마다 기경의 은혜를 받은 성도들은 각자 가정과 일터에서 사회를 기경하는 사명을 수행한다. 묵은 땅처럼 허물로 굳어진 마음을 날마다 기경하지 않으면 사회의 제도와 법이 아무리 잘 마련되어 있어도 소용없다. 물론 개인의 마음이 아무리 기경되었어도 사회가 구조적으로 혼탁하면 그 마음도 혼탁해지기 쉽다. 마음의 기경과 사회의 기경은 동시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교회는 마음의 기경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본다. 사회의 기경은 성도들이 다양한  삶의 현장에 나아가 할 일이다.

한국교회가 이제 성령을 제대로 받고, 성령을 좇아 사는 진정한 영적 부흥의 계절을 맞이하면 좋겠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도들이 성령을 사모하다가 불같은 성령을 받았듯이 성령을 이제 제대로 받기 위해 힘쓰면 좋겠다.  교회 안에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탐욕적 소원을 비는 열심을 북돋아주는 종교의 영(귀신)은 이제 물리치자. 기복적인 종교심을 이용하는 종교장사는 이제 그만 걷어치우자. 탐욕적인 자아를 십자가에 날마다 못 박아 죽이고, 희년을 이루신 그리스도로 살도록 감동 ,감화하시는 성령을 진정 모시자.  처음 교회 시절 공유공동체를 이루도록 역사하신 성령을 이제 제대로 받자.

김달성목사(평안감리교회 .'교회에서 신을 만드는 사람들'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