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1년에 출간된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의 소설, <왕자와 거지(The Prince and the Pauper)>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에드워드 튜더 왕자와 거지 톰 캔트가 장난삼아 옷을 바꿔 입는다. 둘은 한날한시에 태어났고 얼굴도 꼭 닮았다. 왕궁을 동경하던 거지 톰은 왕자와 옷을 바꿔 입고 왕자 노릇을 한다. 옷이 바뀌자 병사들은 자신과 왕자를 구별하지 못한다. 톰은 꿈에 그리던 왕궁생활을 하게 된다.

만 원짜리는 만 원의 가치가 있다고 믿고, 5만 원짜리는 5만 원의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반대로 얼굴이 똑같은 왕자 에드워드는 거지의 옷을 입고 왕 노릇을 하려 한다. 왕자가 거지 톰을 괴롭혔던 병사를 혼내기 위해 왕궁 정문으로 간다. 병사는 왕자를 못 알아보고 성문 밖으로 쫓아낸다. 결국 왕자는 성문 밖에서 거지가 되어 산다.

이들의 뒤바뀐 삶은 무엇 때문일까. 물론 겉으로는 옷 때문이다. 그러나 더 엄밀히 말하면 왕자를 거지라고 생각하는 병사들의 믿음, 거지를 왕자라고 생각하는 병사들의 단호한 믿음 때문에 이리 운명이 바뀌고 만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기반으로 하는 믿음은 이처럼 거침이 없다. 아무리 자신이 왕자라고 말해도 병사는 믿지 않는다. 그건 자신이 생각하는 왕자의 옷을 입은 왕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왕자와 거지>는 우화다. 왕의 삶과 거지의 삶의 치환을 통해 당시 왕가의 사치를 비판하고 있다.

왕자를 거지로 믿고, 거지를 왕자로 믿는 이야기는 돈에도 적용된다. 돈은 무엇인가를 교환하는 물건이다. 만 원으로는 만 원어치의 물건이나 서비스를 교환할 수 있다. 5만 원으로는 5만 원어치를 교환할 수 있다.

그러나 만 원짜리와 5만 원짜리 지폐 자체는 그만한 값어치가 없다. 또한 만 원짜리 지폐나 5만 원짜리 지폐나 제작하는데 들어가는 돈은 거의 비슷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 원짜리는 만 원의 가치가 있다고 믿고, 5만 원짜리는 5만 원의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바로 이 믿음을 기초로 돈의 가치가 형성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5만 원 지폐를 5만 원의 가치가 있다고 믿는 믿음이 바로 돈의 가치의 기준이란 뜻이다. 혹시 사람들의 믿음이 우르르 무너져 5만 원을 5만 원의 가치가 있다고 믿지 않게 되면 돈은 그야말로 휴지조각이 된다.

북한의 경우가 그 경우다. 북한 돈의 가치를 다른 나라 사람들은 물론 북한 사람들도 믿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거래할 때 아예 달러나 위안화를 사용한다고 한다. 그건 북한 돈의 가치를 믿지 못한 데서 발생하는 문제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사회는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체제다. 돈이 돈인 것은 돈을 돈으로 믿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돈이 가치 있기 위해서는 이 믿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개인 혼자만이 아니라 국가나 사회 전 구성원이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믿음’은 종교에 국한되는 게 아니다. 돈뿐 아니라 사회의 제기반이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