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날마다 숲을 봅니다. 그야말로 울창한 산들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탁 트입니다. 가끔 읍내로 장을 보러 나갈 때는 가도 가도 첩첩 산중을 뚫고 내려가는 기분이 마치 산 사이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만 같습니다. 창문을 열면 시원한 바람이 일품입니다.

 집과 맞닿은 뒷산에는 뽕나무, 도토리나무, 잣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음지식물인 칡덩굴이 어찌나 잘 자라는지 집 마당까지 줄기를 뻗고 나옵니다. 가끔 전지가위로 잘라 주어도 금새 다시 자라나옵니다.

   얼마 전 제주도 곶자왈 환상숲에서 갈등나무에 대해 해설을 들은 것이 떠오릅니다. 칡 ‘葛’, 등나무 ‘藤’을 합쳐서 ‘葛藤’이 됩니다. 칡과 등나무는 둘 다 덩굴식물인데, 칡은 오른쪽으로만 감아 올라가고 등나무는 왼쪽으로만 감아 올라간다고 합니다. 극양수림인 소나무가 빛을 받기 위해 높이 자라 잎을 드리우면, 음지에서 빛을 받지 못하는 칡과 등나무가 그 소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들은 서로 얽히고설키며 자라다가 어느 순간에는 등나무 덩굴이 칡덩굴을 눌러서 끊어버립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자라난 칡덩굴이 등나무 덩굴을 눌러 끊어버립니다. 이 모습을 보고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적대시 하거나 충돌함’이라는 사전적인 의미의 ‘갈등’이 나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덩굴이 끊어진다고 해서 칡이나 등나무가 죽는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높이 뻗어 자기 할 일을 다 한 덩굴은 끊어지고 새로운 순이 뿌리로부터 뻗어 올라 제 몫을 감당하는 자연스러운 생명의 순환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때로는 아픈 순간이 다가오기도 하지만, 소나무도 칡도 등나무도 숲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각자 본래의 모습대로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집 뒷산의 뽕나무, 도토리나무, 잣나무들도 각자 지음 받은 모양대로 자기 몫의 역할을 하면서 자랍니다. 그 아래 칡덩굴과 고사리, 이름 모를 풀들도 자유롭게 자라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모여서 울창한 숲을 만들어 냅니다. 인간과 동물이 숲에서 안식을 얻는 것은 이렇게 각기 잘 자라난 나무와 풀들이 함께 어울려 있기 때문입니다.

  선물로 받은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이 경쟁하는지 모릅니다. 세상은 계속해서 정해진 기준을 통과해야만 의미 있는 인생이라고 속삭입니다. ‘학력을 갖추어야 한다.’, ‘어느 정도 소유해야 한다.’, ‘이정도 외모는 되어야 한다.’라고 말입니다. 같은 규격과 품질을 요하는 상품처럼 우리의 삶을 재단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기준을 통과하기 위해서 피땀 흘리며 달려갑니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이 요구하는 모든 기준을 만족시키며 살아갈 수 없습니다. 누구나 각자 자기 나름의 삶이 있습니다. 숲에서 가장 훌륭한 나무란 없습니다. 그런데도 모든 나무가 어느 한 훌륭한 나무를 본받으라고 한다면 숲이 대경실색 할 일입니다. 그저 자기 열매를 맺으며 자라나는 건강한 나무들이 모여 아름다운 숲이 되듯이, 자기만의 삶, 즉 ‘자신의 소명’을 따라 살아가는 건강한 사람들이 모여 아름다운 세상이 만들어 집니다.

성경은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고전 7:20)고 했습니다.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한다면(고전 7:24), 저 푸른 숲의 나무들과 같이 우리는 있는 그대로 참 아름답습니다. 나무들이 자기만의 열매를 맺으며 충실한 삶을 살아가듯, 우리도 그렇게 자신의 소명을 따라 살아가는 아름다운 인생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