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오면 마음 보다 몸이 바빠져서 호주에서 처럼 한가하게 뉴스에 접할 시간이 전혀 없다.
호텔에서 혼자 자는 날이 많지만 TV 를 켜서 뉴스를 볼 생각이 전혀 나지 않는다. 그 대신 거리에서 사람들 얼굴을 보고 느껴지는 것이 많다.

전철에서 강제로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관람해야 하는 느낌이 특별하다. 한 마디로 컬러 TV를 보다가 흑백 TV를 보는 느낌이다.

한국 사람들의 피부색갈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인상이 그렇다는 것이다. 한국이 물질문명 면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지만 필경 얼굴에서 느껴질 수 밖에 없는 정신적인 면에서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한 마디로 무리하게 돌아가는 사회가 주는 “대체로 어두움”이다. 그래도 아프리카에서 흔히 보는 ‘겁먹은’얼굴들 보다는 났지만 무엇인가 불만에 차 있는 듯한 한국인들의 얼굴들도 만만치 않다.

누가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구조물을 무엇일까?'라고 물어온다면 나는 단연코 ‘사람의 얼굴’이라고 답하겠다. 엥? 얼굴이라니? 사실 면적으로 따지자면 사람의 얼굴은 고작 가로 20 cm 세로 30 cm에 불과하다.
그 좁은 면적에서 아름다움과 추함이 평가되고 수 만 가지 복잡 미묘한 인상이 만들어지지 않는가?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서는 미움과 사랑은 물론 심지어는 자살이나 살인까지 벌어진다.
그것도 영원불변한 것도 아니고 시간이 가면서 변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인간의 얼굴이 어찌 아니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구조물이 아니겠는가?

정통한 소식통에 의하면(?) 최근에 한국 사람들 때문에 천국에 주민등록증 대조 시스템이 도입되었다고 하는 소식이 있다. 왜냐하면 한국인들이 성형을 하도 많이 해서 본인 확인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란다.

나의 얼굴을 내가 보는 두 가지 방법은 거울을 보는 법과 사진을 찍어 보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방법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는 일은 아무리 객관적 이려고 해도 일종의 공범(共犯) 같은 기분이 느껴지는 반면에 사진은 다르다. 그래서 사진이 발명된 당시에 사진으로 자신의 얼굴을 본 사람은 녹음기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불쾌감을 금할 수 없었다.”(가라타니 고진, 『트랜스크리틱』)는 말이 있다.

물론 거울과 사진의 차이는 필름 없이 수없이 되풀이 찍을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으로 사라졌다. 더군다나 포토삽 때문에 이제 사진은 거울 보다 더 믿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에 거울 앞을 떠나듯, 가장 아름다운 사진을 얻었을 때 사진 찍기를 끝낸다. 그래서 가끔 사진을 보면 "이 사진이 내가 아는 그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얼굴 사진은 꾸며진 것 보다는 본인의 모습이 가장 잘 표현된 것이라야 좋은 사진일 것이다. 그래서 ‘잘 나온’ 사진이란 대개 ‘실제보다 잘 나온’ 사진이고 그러므로 ‘실제와는 좀 다른’ 사진이다. 그러므로 범죄로 비유한다면 나는 나의 얼굴과 공범 관계이다.

얼굴에 대해서 가장 심오한 이야기를 한 사람은 프랑스의 유대인 철학자 임마뉴엘 레비나스이다. 그는 리투아니아 출신 유태인으로 히틀러의 수용소에서 부모와 형제를 읽고 자신도 독인군의 포로로 잡혀 수용소 생활을 하다 전쟁이 끝나서 돌아오게 된다. 그런데 유대인으로서 개 보다 못한 취급을 받다가 구사일생으로 집에 돌아오면서 자기 집 에서 기르던 개가 자기를 반길 때 그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개는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낮선 사람에 대해서 항상 기대를 걸고 바라보고 있는데 인간은 자기 밖에 모른다는 것이다.

레비나스는 얼굴이 자기 스스로 내보이는 방식을 '계시'라고 부른다. 그가 다른 말이 아니고 '계시'라는 종교적 언어를 굳이 사용하고 있는 까닭은, 얼굴과의 만남은 절대적 경험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타인은 나에게 얼굴을 통해 다가온다. 한 편, 내게 다가오는 타인의 얼굴에 대해 나도 얼굴을 가지고 대해야 한다. 우리의 관계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는 관계이어야 한다. 타인의 얼굴을 피하거나 부정해서도 안 되지만 자신의 얼굴을 감추어서도 안 된다.

얼굴과 머리는 다르다 .머리는 하나의 물체지만, 얼굴은 표정을 말하고 그 표정 안에는 모든 게 다 들어있다. 그래서 얼굴은 우리에게 '호소'하고 메시지를 주고 느낌을 전달한다.
오늘 한국인의 얼굴에서 어떤 메시지를 찾을 수 있을까? 반쯤은 이방인은 나의 눈에 읽혀지는 한국인의 얼굴에서 오는 메시지는 '어떤 답답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