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곤 바

독일 통일의 장기적 기반을 다진 '동방정책'의 설계자로 평가받는 에곤 바(Egon Bahr)가 향년 93세 로 2015.8.19일(현지시간) 밤새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고 독일 주간지 슈테른 이 보도했다. 독일 요아힘 가우크 대통령은 바의 부인 아델하이트에게 "우리는 독일 전후 역사에서 활약한 중요한 정치인 한 분을 잃었다"며 보낸 추도 서한에서 위로를 전했다.

그는 튀링겐에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베를린으로 이주하였고 사회민주당( )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지그마어 가브리엘 사회민주당(SPD) 당수는 "고인은 용기있는 진정한 사회민주주의이자 독일 통일의 설계자로 유럽 평화에 기여했다"며 추모했다.

에곤 바의 동방정책은 2차 세계대전 후 소련 및 동유럽대에서 독일이 가해국으로서 반성과 화해의 손길을 내밀며 다가가며, 동독에 대해선 실체를 인정하고 접근을 통해 변화(Wandel durch Annaeherung)를 모색하는 정책을 담고있으며, 이것은 독일 통일의 기본이 되었다. 작은 발걸음 정책이라 불리는 그의 동방정책 기본 방향은 브란트 총리 집권으로 실행에 옮겨지고, 기민당 정권도 정책기조를 이어 받아 추진되었다. 그의 정책들은 후에 모스크바 조약, 바르샤바 조약,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로 결실을 맺어 냉전으로 얼어붙었던 동서 간 긴장 완화와 동서독 평화 질서를 촉진했고, 결국 1990년 독일 통일을 이루는 원격의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에곤 바의 동방정책은 같은 조국분단의 경험을 갖는 우리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그가 우리의 여러 정책 담당자들을 만나서 대담도 하고 조언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김대중 정부 시절 그의 동방정책은 햇볕정책과 비교되며 토론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며 당시 햇볕정책의 실무책임자였던 임동원 통일부 장관과 만나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다.

▲ 빌리 브란트와 에곤 바

그는 평화포럼 참석을 위해 2001년 방한 당시 기자회견에서 통일과정에서 가장 유념해야 할 것으로 남북한이 서로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점을 꼽았다. "우리는 (통일 당시) 동서독 사람들 간의 정신적 차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면서 "한국은 분단기간이 더 긴 만큼 상호차이가 더 날 테니 서로 협력할 분야를 찾아 상호공조하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적을 향해 가야지 적과 등을 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서 "작은 걸음으로 하나하나 과정을 시작하다 보면 진보된 상태가 올 것"이라고도 조언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퇴임 당시에는 그는 서신을 보내 "지구 상 마지막 남은 최악의 분단을 극복해 냉전 시대의 종말을 고하고, 평화와 긴장완화, 교류협력을 강화하는 대북정책을 추진해온 것은 한국인들에 커다란 행운"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어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주된 조언자 역할을 하여,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독일을 방문했던 2005년 바를 만나 독일 통일의 경험을 전수받았다. 당시에는 특히 통일 후 정치, 경제, 사회적 후유증을 극복하는 과정을 파악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독일의 통일과 관련한 대담에서 그는 “...통일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 독일국민도 대부분 분단시대로 되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통일과정에서 많은 잘못이 저질러진 것도 사실이다. 특히 배상보다 반환이 우선한다는 원칙 하에 서독의 원소유자에게 분단이전 동독지역에 지니고 있던 재산을 되돌려주었던 일은 치명적인 잘못이었다. 통일과정에서 생겨난 대부분의 문제는 콜 당시 총리가 서독 마르크화로 모든 것을 이루어낼 수 있다고 자만했던 데 기인한다...”라 말하기도 했다.

▲ 헬뮤트 콜

자신의 회고록, '빌리 브란트를 기억하다'를 한국어로 번역출간 하며, 북한 거부적 태도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며, 남한의 햇볕정책은 한반도 통일의 올바른 길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는 당시에도 독일의 보수 언론의 비난과 집중포화를 맞기도 했으나, 독일의 통찰력 있는 지도자들은 소속정당과 무관하게 에곤 바를 인정하고 정당의 이익이 아니라 민족전체와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그의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여 통일에 이를 수 있었다. 그는 독일 통일 당시 총리였던 콜(H. Kohl )이 통일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실수를 저질렀으며, 지금도 우리는 그가 저지른 정치적, 경제적 과오의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남북긴장과 전쟁 위험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에곤 바와 같은 선견력있는 설계와 비전 제시가 절실하며, 그런 정책과 전문가를 정당의 이해와 무관하게 민족차원에서 일관되게 추진하는 리더십이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