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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일기2새 밭에 씨 뿌린 파종의 기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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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07월 08일 (금) 00:00:00 [조회수 : 30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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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4일(월) 갬.
퇴근 후 혼자 밭을 찾았는데 말뚝이 안 보인다. 어딨지 하며 뚤레뚤레 찾으며 허탈해진 마음을 추스리는데, 저만치 주차장 부스에서 나를 보고 아가씨가 튀어나온다. 어제 시청 직원이 와서 이 곳에다 경작하지 말라며 말뚝을 뽑았다는 것이다. 풀도 채 못 뽑고 물도 빼지 못한 밭이라 씨 뿌릴 날만 기다리는 판인데 말뚝이 뽑히다니 억울했다. 붉은 비닐 끈이 바람에 팔락거리는 게 보기 좋았지만, 그게 표적이 될 줄이야. 공무원들이야 경작을 못하도록 예고해 두어야 분쟁이 생길 경우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을 거란다. 농사에는 짐승이나 벌레 못지않게 관청과 법이라는 것도 방해꾼이 되는가 싶다. 자기 밭이 아닌 공유지에 농사를 시작할 때부터 허탈해질 일이 생길 거라고 각오는 했지만 속상하다. 그 동안 신발과 옷가지를 버리면서 땅 갈고 풀 뽑고 돌 고르고 물길을 낸 게 다 헛수고란 말인가? 자기 터 없이 농사 짓는 일이 얼마나 터무니 없고 애처로운 일인지! 나라 잃는 사람들의 설움이 떠올랐다.
비둘기나 비, 관청의 간섭 등도 농사를 지어 보려고 마음 먹기 전에는 전혀 내 생활과 무관했던 것들이다. 텃밭을 일군다는 이유만으로 처음 보는 사람들이 다가와 호기심을 보이며, 무엇을 어떻게 심는가 물어 보는 등 쉽게 친해지는 경험을 해 보았다. 게다가 아낌 없이 종자도 나누어 주고 기술도 가르쳐 주는 등 도와주고 싶어하는 인정을 배워 가는 중이었다. 학교 울타리 안에서는 교사들끼리 세대 간에 벽이 두터워지고, 컴퓨터 앞에서만 장시간 앉아 일을 보지, 묻고 배우려는 대화가 사라지는 풍토이다. 우리가 시도한 텃밭 가꾸기는 새로운 공동체와 인간관계의 회복을 가르치는 생생한 학습장이었는데...
손에 흙을 묻혀 보고 씨가 새로운 생명으로 움트는 것을 즐기고 열매를 따 보는 희열을 느껴 보려고 시작한 일이지만 그것도 그리 쉽지 않았다. 그 밭은 없어져도 그만이지만, 강제로 금지 당하고 가진 것을 앗긴다는 것은 애달픈 일이었다. 그것은 수수천년 한국인의 유전자에 심긴 땅과 흙에 대한 강한 애착 때문이 아닐까 싶다.
7월 5일(화) 흐림
내동댕이쳐진 말뚝과 헝클어진 비닐 끈 앞에서 심란한 표정으로 김 선생님이 서 계셨다. 우리 밭머리에 부천시장의 경고판도 감시꾼처럼 당당히 서 있다. 불법 경작을 하면 벌금이 이백만 원이라니 가슴이 턱 막혔다. 그녀는 갈아엎을 때까지는 씨를 뿌리자고 하지만 소심한 나는 불안했다. 관에서 금지하는 것이 꺼려지는 데다, 물과 풀과 돌 많고 경작하는 사람들도 많아 그 밭은 신경이 쓰였다. 첫 밭은 좋은 땅은 아니었다. 어떻게 할까 생각하며 어제 집에 가다가 찜해 둔 야인시대 세트장 뒤편 호젓한 풀밭에 다시 밭을 만들자고 했다. 김 선생님도 보고는 찬성하셨다. 두 사람은 즉시 팔을 걷어 부치고 흙을 뽑고 호미로 땅을 갈기 시작했다. 풀도 잘 뽑히고 물이 없어 일하기가 훨씬 수월했다.
밭을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 누가 버린 골판지 위에 흙이 덮여 풀이 거의 안 자란 안쪽 땅에다는 피마자를 심었다. 길 가까운 풀밭에는 두둑을 만들어 콩을 심고, 두 밭 사이의 풀밭에는 줄줄이 총롱무 씨를 심었다. 공룡 전시관 앞 땅에 토란과 콩을 심은 할머니가 와 보고는 풀 없이 노는 땅도 많은데 왜 풀밭에 애써 심느냐고 해서, 그 할머니 밭 옆에도 무씨를 뿌려 두었다. 졸지에 밭이 3개로 늘었다. 내일 아침에는 원래 일구어 둔 밭에다 들깨 씨를 흩어뿌리기로 했다.
7월 6일(수) 맑음.
아침에 새 밭에 들렀다. 콩을 심은 밭에 말랑말랑한 비둘기 똥들이 보였다. 비둘기 놈들이 어느새 냄새를 맡고 와서 파먹은 모양이다. 물이 올라 엄마 젖처럼 퉁퉁 분 흰콩 몇 개가 드러나 있다. 사진을 찍어 두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실에 보내 범인을 고발할 거라고 하니 김 선생님도 씩 웃으신다.
그리고 들깨 씨 세 봉 중에서 한 봉을 앞밭 노 부부에게 드리고, 흙에 씨를 섞어 흩어 뿌렸다. 나올 놈은 나오고 썩을 놈을 썩어도 상관 않겠다는 심보로 뿌렸다. 난생처음 씨 뿌리는 자가 되어 보았다. 성경의 씨 뿌리는 자 비유가 떠올랐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 비유에서는 씨나 씨 뿌리는 자에게 주목하기 보다는, 열매맺는 데 방해하는 환경과 그 결과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길가, 돌투성이 밭, 가시덤불밭, 옥토. 우리가 처음 택했던 밭은 두 번째 밭과 비슷했다. 물론 물이 잘 안 빠지는 물밭이라는 흠도 더 있지만... 밭을 경작해 보면서 과연 내 마음밭의 상태는 어떤 스타일일지 궁금해졌다. 이 세상의 쾌락과 욕심, 부의 속임수에 찔려 열매가 거의 없는 가시덤불은 혹 아닐까?
7월 7일(목) 흐림.
저녁에 와서 풀을 뽑아 주었다. 풀뿌리가 살짝 들춰지면 껍질이 터지고 어린뿌리가 나오는 콩들이 따라 올라온다. 김 선생님은 통통한 게 정말 예쁘다며 연신 감탄하신다.
"우리에게는 하루라는 짧은 시간이 저 친구들에겐 십년이 될지도 몰라요. 밤새 어떻게 물을 흡수하여 싹을 튀울지만 궁리했을 거예요. 어머. 저 토실토실한 뽀얀 살 좀 보아요."
마치 터질 듯 말 듯한 처녀 가슴 같다고나 할까? 아직도 내 맘은 푸른지 손으로 만져보고 싶도록 탐난다.‘마음은 콩밭에 있다’는 속담이 이런 것을 두고 했던 말일까?
그런데 옆 밭에서도 줄줄이 심은 파란 총롱무 싹들이 살짝 얼굴을 드민다. 가려다 말고 그것들을 헤쳐 보는 재미에 넋을 놓고 앉아 풀을 뽑아 주었는데, 놀랍게도 그 일이 전혀 힘들지 않다. 기분좋을 만큼 이마와 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아쉬운 마음을 접고 집에 가는 길에 는개가 흩날렸다. 빗방울이 굵어지면 내일 다른 씨들의 환한 얼굴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주 기분이 좋았다.
7월 8일(금) 흐림.
아침에 무밭에도 비둘기 마른 똥이 몇 알 보였다. 어린 무싹들이 자기 발로 다들 일어섰다. 어서 잘 자라라 축복을 해 주었다. 하도 이뻐서 새싹 사진을 찍었다. 비둘기들이 이 새싹들도 따 먹을까 염려가 된다. 오늘 저녁에는 골판지 위에 심어둔 피마자 씨를 파 보고 시원찮으면, 골판지를 걷어 내고 다시 심어 줄 생각이다.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씨는 우리가 뿌렸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수확의 기쁨을 누리고 이웃에게도 나누어 줄 날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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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작 금지판 앞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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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섶에 만든 새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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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둘기가 헤쳐놓고 간 콩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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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개를 든 총롱무싹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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