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4일 광복 70주년 대통령 특별사면을 받고 출소한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성경책을 들고 의정부교도소를 나왔다.(MBN 뉴스 갈무리)

지난 14일 박근혜 대통령은 광복절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특별사면의 혜택을 입은 이들 중에는 기업인들도 있었는데 가장 세인의 관심을 끈 인물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다. 지난 14일 특별사면 대상자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새벽 0시 5분께 최 회장이 수감 중이던 의정부교도소에서 나왔다. 수감된 지 2년 7개월, 그간 수감되었던 그룹 총수들 중 가장 긴 925일만의 일이다.

최 회장은 지난 2012년 1월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었다. 당시 검찰은 SK그룹 계열사가 창업투자회사 베넥스인베스트먼트에 투자한 자금을 횡령하고, SK그룹의 임원들의 성과급을 지급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되돌려 받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다.

1심 재판부는 최 회장의 혐의를 대부분 인정하고 검찰의 4년 구형대로 징역 4년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최 회장이 선물 투자를 위해 회사 자금을 횡령했다는 점을 인정해 징역형을 선고한 것이다. 이어 벌어진 2심 재판에서도 4년 실형이 선고되었고, 2014년 2월 최종 대법원 판결에서도 역시 4년 실형이 선고되어 확정되었다.

2013년 1월 재판부가 최 회장에게 유죄를 판결하고 법정 구속한 사건은 재벌 총수라도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을 보여 준 사건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유행할 때 최 회장의 수감은 의미 있는 판결이었다.

재판부는 "자신이 지배하는 계열사를 범행의 수단으로 삼아 기업을 사유화한 최태원 회장은 비난받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SK그룹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저버려 참으로 심대한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수감 후 2년 7개월째 서울구치소와 의정부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해왔다. 최 회장은 이번에 박 대통령의 광복 70주년 특별사면으로 남은 약 1년 5개월의 형기를 면제받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

최태원 회장 - 성경책을 보여주다

그런데 출소하는 그의 왼손에는 성경책이 들려있었다. 정장의 말끔한 차림으로 왼쪽 옷깃에 SK로고가 있는 배지를 부착하고 왼손에는 성경책을 들고 나왔다. 사면 받은 최태원 회장의 왼손에 들린 성경책, 그 상징성은 말 안 해도 알 수 있다.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성경대로 살겠다'는 게 아닐까.

그리스도인에게 성경은 그 믿음의 기초이며 근간이다. 교회가 세워진 이유도, 목사나 장로 등 교회의 직분이 존재하는 이유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모든 기준도, 기독교적 가치관의 근거도 모두 성경이다. 구약과 신약으로 이뤄진 66권 성경이 정경(正經, Cannon)이 된 이래(397년 카르타고에서 열린 교회회의에서 신약이 정경이 됨) 성경은 변함없는 기독교 진리다.

이런 성경을 최태원 회장이 수감생활을 면제받고 나오면서 굳이 들고 나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분명히 최 회장은 무엇인가 보여주려고 한 게 틀림없다. 최 회장의 왼손에 들린 성경책은 최 회장이 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변했다고 알리고 싶다는 뜻이다.

'나는 변했습니다. 수감 전의 최 회장이 아닙니다. 수감 생활을 하면서 많이 반성했습니다. 죄를 짓지 않고 살겠습니다'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언론은 벌써부터 호들갑을 떨며 '최 회장이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변했다'고 쓰고 있다. 최 회장이 성경책을 들고 나오며 하고자 했던 말을 언론이 고스란히 받아쓰는 모양새다.

SK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최 회장은 수감 중 틈만 나면 성경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리고 기도했다고 한다. 그가 들고 나온 성경책도 좀은 낡아 있는 걸 볼 때, 성경책의 상태로만 본다면(새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고 볼 때) 재소 기간 중 성경을 여러 번 통독한 게 분명하다. 측근들도 그렇게 말한다.

최 회장 횡령사건을 말할 때 전 SK해운 고문이었던 김홍원 씨를 떼놓을 수 없다. 그런데 김홍원 씨는 무속성향이 강한 사람이다. 최 회장은 김홍원 전 고문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기독교 신앙심이 더욱 두터워졌다는 주변의 이야기다.

최 회장 역시 2013년 9월 항소심 재판 때 김원홍 전 고문과의 관계를 언급했다. "내가 뭐에 홀렸던 것 같다. 나 스스로 사기 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워 신앙생활을 시작했다"고 했다. SK그룹의 한 관계자도 "2003년 분식회계 파동에 이어 믿었던 측근 인사에게 배신과 사기를 당했고 이 같은 아픈 기억을 극복하고 반성하는 과정에서 신앙심이 더욱 깊어지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최태원 회장 - 이제는 성경의 삶을 보여주라

최 회장은 실제로 10여년 전부터 신앙생활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이 2003년, 7개월 간 수감생활을 한 후 보석으로 풀려난 적이 있었다. 그때 부인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관장과 함께 강남에 있는 한 개척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또 고 하용조 목사 생전에 온누리교회에서 성경강해를 들었던 적도 있었다.

이번에 성경책을 왼손에 들고 나올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인'(언론의 표현대로)이 되어 출감한 것은  극동방송 사장인 김장환 목사의 영향이라고 하는 후론이다. 수감 중 김장한 목사를 비롯한 몇몇 목사들과 함께 성경을 읽으며 공부했다고 한다. 출감하는 그의 손에는 오직 성경만 들려 있었다. 최 회장은 이제 성경대로 살겠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이 수감 중 성경을 여러 차례 읽었으며 사회적 기업에 관련된 책들을 중심으로 독서했다고 하는데 이는 기업을 통하여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최 회장은 출감하는 자리에서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잘못했음을 인정하는 자세로 읽힌다. 그리고는 "먼저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려서 대단히 죄송하다"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이어 "국민께 사랑받는 SK 기업으로 거듭 태어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출감하고 첫 마디가 '잘못했다'는 것이고, 이젠 '국민에게 사랑받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말만으로 보면, 기독교적 관점으로 잘못을 회개하고 기업을 통하여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뜻이다.

그간 우리는 사회에 기여하면서 죄를 짓는 기독인 기업인들을 누차 봐왔다. 방산비리 하면 떠오르는 일광그룹의 이규태 회장, 정의승 장로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교회에서 돈 세탁을 하여 비자금을 조성하고 페이퍼컴퍼니를 동원 중계수수료를 빼돌린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로 유명한 고 성완종 회장도 기독교인이다. 이들은 교회나 교육관을 지어 봉헌하는 통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이들을 독실한 기독교인이라고 말하기엔 무언가 허전함이 있다. 이번에 특별사면을 받고 출감하는 최태원 회장의 손에 들린 성경책을 보며, 그가 보여주는 게 성경책만이 아니길 바란다. 자신이 말했듯 죄를 회개하는 마음으로 "국가 경제 발전과 사회 발전에 최선"을 다하고 성경의 가치관인 '빛과 소금'으로 살아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