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은 이른바 ‘박근혜 법’에 관해 뭐라 할 것인가

유승민 의원이 새누리당 원내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아니 쫓겨났다. 축출 이유는 국회법 개정안 처리를 잘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정말 그 처리를 원내대표 자리에서 쫓겨나야 할 정도로 잘못했는가.

이혜훈 전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JTBC의 손석희 앵커와의 전화 통화에서 국회법 개정안은 “최고위원회의에서 결정된 대로 그리고 의총에서 결정된 대로 원내대표가 실행한 것뿐이잖아요. 그리고 국회의원 여야 211명이 찬성표를 던졌고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어 “그런데 이거를 원내대표 한 사람이 잘못했다고 원내대표 물러나라고 하는 것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았죠”라고도 말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국무회의석상에서 국회법 개정안의 거부권을 행사하며 작심한 듯 포문을 열어 정제되지 않은 거친 표현을 써가며 격앙된 모습을 감추지 않았고, 그 거친 표현은 여당의 원내사령탑 즉 유승민 원대대표를 향해 직격탄을 날리면서 절정에 달해 얼굴에 핏기까지 올렸다.

그런데 유승민 원내대표와 국회를 향한 대통령의 발언은 거의가 상대 유 원내대표보다 대통령 자신에게 더 부합되는 것들이었다.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의 주된 이유로 위헌성이 있다는 것과 삼권분립 원칙을 훼손해서 위헌 소지가 크다는 것의 두 가지를 들었다.

그렇다면 17년 전인 1998년, ‘국회법 개정안’에 공동발의자로 서명했던 국회의원 시절의 박근혜와, 대통령이 되어 같은 내용의 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박근혜는 다른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입장이 달라졌으니 생각도 바뀌었다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새정치민주연합은 17년 전에 박근혜 대통령이 공동으로 발의한 그 ‘국회법 개정안’의 내용 그대로를 ‘박근혜법’이라는 이름으로 재발의 하기에 이르렀다. 여당에서도 거부할 명분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거부할 것이다. 여야가 합의하여 자기들이 통과시킨 법을 대통령의 으름장 한 번으로 폐기처분한 그들이니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

새누리당은 이제 대통령의 일갈에 화들짝 놀라 스스로 무릎을 꿇고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에 동조함으로 청와대의 2중대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벌써부터 항간에는 그런 비아냥이 넘치고 있는데, 자초한 일인데 어쩌겠는가.

누가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를 했나

박근혜 대통령은 유승민 원내대표를 향해,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이라며 몰아붙였는데, 그런 정치는 유 대표가 더했는가. 박 대통령 자신이 더 했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건설 등의 화려한 장밋빛 청사진을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됐다. 그런데 어떤가. 공약들은 잘 이루어져 가고 있는가.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제1공약은 경제민주화였는데, 이는 박 후보의 공동선대위원장을 지낸 김종인 전 의원에게서 나왔다. 그런데 당선되자 이 공약은 빌 공(空)자의 공약이 되고 말았다. 경제민주화는 그것을 낳은 김종인 전 의원과 함께 폐기처분되고 만 것이다.

김 전 의원은 “이 정부가 경제민주화를 더는 거론 안 할 걸로 본다”며, 경제민주화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얘기했던 데 대해 국민들에게 굉장히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대선 때는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의지를 확실하게 믿었으나, 사람 속까지 들여다볼 순 없으니 어쩌겠냐”고도, “한때 내가 너무 과욕을 부린 모양이다”고도 말하여 답답한 속마음을 내보이기도 했다.

어떤가. 그토록 자신만만하게 말했던 대학생들의 반값 등록금은 그 반의반이라도 실현되었는가. 그도 안 되었으면 추진만이라도 하고 있는가.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하겠다고 철석 같이 약속을 해 놓고 왜 식언을 하여 그렇지 않아도 노약해져 서러운 어르신들을 섭섭케 했는가.

소통은 또 어떤가. 박 대통령은 금년 신년기자회견에서 “대면보고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면 그걸 늘려나가는 방향으로 하겠지만”이라는 말에 이어 장관들을 돌아보며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라 말하기도 했다. 대면보고 같은 건 필요치 않다고도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여러 말 할 것도 없이 박 대통령이 지금까지 보여 온 소통의 행적을 보면 정확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세월호 참사 당일의 골든타임 7시간 동안 대면보고 한 번 받지 않았다는데 이에 무슨 말을 더할 수 있겠는가.

MB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통과를 방해한 건 누군가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것이 배신의 정치라고 한 박근혜 대통령의 풀이는 정확하다. 그런데 거듭 말하거니와 박근혜 대통령과 유승민 전 원내대표 중 어느 쪽이 더 국민의 신뢰를 깨고 배신의 정치를 한 것일까. 그리고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도 누가 더 한 것일까. 삼권분립의 원칙은 누가 더 훼손했으며, 위헌 소지는 어느 쪽에 더 크게 있는 것일까.

박근혜 대통령의 유승민 전 원내대표에 대한 속내는 “자기의 정치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하는 말 가운데 잘 드러나 있다. 사실 두 사람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꼬인 시점을 지난 4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때로 보는 견해가 많은데, 그때 유 원내대표는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말로 정부를 비판했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자리에서 밀어내는 것은 대통령으로서 할 일이 못된다. 마음에 맞지 않아도 끌어안고 다독이며 아우르는 것이 어른다움이다. 그리할 수는 없을지라도 하려는 노력만이라도 하는 것이 좋은 정치를 하려는 사람의 자세이다.

세종시 수정안을 통과시키는 것은 MB정부의 주요 과제였다. 그런데 2010년 6월 29일 국회에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직접 나서 세종시 수정안의 부결을 위해 반대토론에 나섰고, 그 법안은 결국 부결되고 말아 MB의 레임덕을 재촉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런데도 유승민 전 원내대표만을 향해 배신의 정치를 했다고 할 수 있는가.

옳은 것이 이기는 세상인 미래가 보인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자리에서 ‘물러나게 해야 한다, 아니다’로 격론이 벌어지고 있을 때 혹자는 ‘옳고 그름을 떠나서’라고 하는 말을 전제로 깔고 자기의 주장을 펴기도 했는데, 참으로 답답한 현상이다. 무엇인가의 결론도출을 위한 찬반토론은 ‘옳고 그름’을 가리는 걸 저변으로 하여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을 떠나서 말하겠다는 것은 결국 상황논리로 끌고 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유승민 의원을 만나 의원총회에서 모아진 사퇴 권고안 결정 내용을 전달한 뒤 유 의원실을 나오며 “책임 여부를 떠나,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현 상태에서는 유 원내대표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대세였다”는 말에 이어 "그런 뜻을 유 원내대표에게 잘 전달했다"고 밝혔다. 자기들이 뽑아 세운 원내대표를 ‘책임여부’와 ‘이유여하’도 무시한 채 ‘대세’가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물러나도록 결정했다는 말이니 기가 다 막힐 노릇이다.

이같이 상황논리가 먹혀들어 가는 상황에서는 힘 있는 자가 선이고 힘없는 사람은 악일 수밖에 없다. 옳아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겨서 옳은 것이 되는 것이다. 강자 즉 선이라는 등식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짐이 곧 법’인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이는 소위 한국적 민주주의, 민주주의 아닌 민주주의의 산물인데, ‘짐이 곧 법’인 세상이 몰고 온 여파의 산물이다.

유승민 찍어내기가 성공함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승자가 되었다. 그러나 진 것은 유승민이 아니라 대한민국이고 국민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후퇴의 고배를 들었고, 다수의 국민은 깊은 상처를 입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대결구도로 본다면 박근혜 패 유승민 승이다. “배신의 정치” 운운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독기 서린 화살을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라고 하는 방패가 막았을 뿐 아니라 덮어 버린 것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10일 공개한 ‘여권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에 따르면 유 전 원내대표는 지지율 19.2%로 1위를 차지했다. 지난달에 비해 지지율이 13.8%포인트나 급등한 것이다. 반면 한국갤럽이 7-9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주보다 2% 포인트 하락한 32%로 나타났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는가.

필자는 방금 박근혜 대통령이 승자가 되었고, 대한민국과 그 국민은 졌다고 했는데, 코앞의 현실만을 놓고 보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미래를 내다보면 그렇지 않다. 이번 일로 이 땅에도 ‘법’과 ‘원칙’과 ‘정의’를 지키고 구현하고자 미련하고도 고집스러울 정도로 노력하고 있는 정치인이 성장해 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으니 대한민국도 국민도 이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