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통령 오바마가 백인 청년에게 살해된 흑인들을 위한 장례식장에 가서 남부기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 남부기는 남북전쟁 때 노예제도를 지키기 위해서 싸운 남부지역 사람들의 자존심을 나타내는 기이다. 남북전쟁이 끝난 지가 15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주청사에 걸려 있는 남부기에서 오바마는 인종차별과 노예제도를 보았다. 남북전쟁의 원인은 단지 노예제도만이 아니었지만, 당시 노예제도가 큰 이슈였기 때문에 오바마가 그 남부기에서 흑인들을 노예로 부리기를 원했던 남부인들의 인종차별을 본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 남부기

특히 이번 사건은 한 백인 청년이 흑인들의 교회에 가서 흑인들을 살해한 것이기 때문에, 흑백 간의 갈등으로 보인다. 지금 흑인이 대통령이 된 미국 사회에서 아직도 주청사에 남부기를 내걸고 있다는 것은 미국의 인종차별이 얼마나 뿌리 깊은 가를 보여준다. 그동안 흑인의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많은 흑인들이 생명을 바쳐가며 투쟁해 왔지만, 흑인을 노예로 부리던 남부 사람들이 아직도 흑인을 정상적인 인간으로 보기보다는 한낱 노예로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인들이 인간을 노예로 삼았다는 것은 단지 미국의 일만이 아니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란 자연에 속한 것이라고 노예제도를 옹호했다. 로마시대에는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이 정복한 나라에서 전리품을 탈취할 뿐 아니라 적대국의 포로들을 노예로 삼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구약에서도 보면 동족 노예가 있었는가 하면 이방인 노예도 있었는데, 그 노예를 사고팔았다.

이러한 노예를 신분제도가 분명한 한국에서는 하인, 노비 혹은 종이라고 불렀다. 가난한 상민들이 부자집에 들어가서 하인이 되는 경우도 있었고 역적의 자식들이 종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종문서가 있어서 종은 대를 이어서 종의 신분을 면하지 못했고 한국에서의 종은 서양의 노예와 마찬가지로 그 집안의 재산으로 취급되었다. 종(servant)은 정상적인 인간으로 취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마치 짐승과 인간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다른 종(species)인 것처럼 보였다.

미국의 흑인노예는 백인 정복자들이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사로잡아 노예장사를 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15세기 후반에 포르투갈인들이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잡아서 유럽에 끌고 가서 노예로 팔았다. 그 후에 아프리카에서 사탕수수를 대대적으로 재배하면서 거기서 필요한 노동력을 위해서 흑인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부리기 시작했고, 신대륙의 사탕수수 농장과 목화 농장에서 노동자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흑인들을 사냥해서 신대륙으로 끌고 가면서 대대적인 노예무역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백인들이 흑인들을 짐승처럼 팔고사서는 농장에서 힘든 일을 시켰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다. 특히 흑인노예들의 애환을 담은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나 쿤타 킨테의 이야기를 담은 『뿌리』 그리고 스티브 맥퀸이 감독한 『노예 12년』 같은 영화가 처절한 흑인노예들의 삶을 잘 전달해준다. 흑인들이 백인들에게 붙들리면 쇠사슬에 묶여서 배 밑창에 짐짝처럼 실려서 신대륙으로 끌려갔다. 몇 달씩 움직이지도 못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생지옥살이를 하는 동안 많은 흑인들이 죽어나갔다. 그들이 백인의 농장에 팔려가서 일할 때는 극심한 노동과 매질에 시달리면서 짐승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았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처럼 팔려 다니는 백인들의 재산이었기 때문에 남편이 다른 농장으로 팔려 가면 이산가족이 생겨났고 자식이 커서 팔려 가면 또 부모와 자식이 생이별을 해야만 했다. 말을 듣지 않는 노예는 심하게 구타를 당하거나 창고에 갇히는 것은 예사였고 노예를 죽여도 짐승을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법에 저촉되지 않았다.

특히 기독교인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일은 남북전쟁 당시에 노예제도를 유지하고자 했던 남부의 기독교인들이 성경에서 노예제도를 허락했다는 사실을 인용하면서 자기들의 입장을 정당화하려고 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남부를 Bible Belt라고 부를 만큼 남부는 기독교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던 지역이었다. 그들은 구약에서 노아가 함을 저주한 데서부터 노예제도가 시작되었다고 구약을 인용했다. 노아는 함을 저주하여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창 9:25)라고 말했다. 남부인들은 “네 종은 남녀를 막론하고 네 사방 이방인 중에서 취할지니 남녀 종은 이런 자 중에서 사올 것이며”(25:44)라는 레위기의 기록을 인용하기도 했다.

신약에도 종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빌레몬서에서는 오네시모라는 노예가 나오는데, 기록자는 노예제도가 부당하다고 언급하지 않는다. 디모데전서에서 보면 “무릇 멍에 아래에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함이라”(6:1)라고 기록하고 있다. 베드로전서에서 “사환들이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2:18)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이것은 하나님이 주인과 종, 주인과 노예의 관계를 인정하신 것이라고 자기들의 입장을 옹호했다.

신분의 문제는 시대마다 사회마다 다르다. 인도에서는 네 가지 사회적 신분이 아주 명확하다. 조선시대에도 신분의 차이가 심했다. 구약시대나 초대교회 시대에도 노예제도가 사회적으로 허용되었다. 오늘날 인간평등을 강조하는 민주사회에서는 신분의 차이에 대한 발상은 발을 붙이지 못한다. 갑질이 문제가 되는 사회에서 하인, 종, 노예 같은 것은 입에도 올릴 수 없다. 그런데 150년 전 남북전쟁 당시에 흑인을 노예로 매매하는 것이 온당한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이슈가 되었다. 같은 성경을 가지고 한편에서는 이웃 사랑을 강조하는 기독교인이 흑인을 노예로 삼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말하고, 다른 편에서는 노예제도는 성경이 인정하는 일,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장소에 따라서 다르고 시대에 따라 변하는 윤리문제나 사회문제까지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면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라고 믿는 것은 분별력이 부족한 탓이다.

좀 더 나아가서 우리는 여기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겠느냐”(눅 10:36)라는 예수님의 질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흑인들이 백인들을 위해서 특별히 선한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이 이방인을 이웃으로 생각하지 않던 유대인들에게 사마리아인이 이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셨다는 점에서 백인들에게 흑인들이 이웃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농장에서 일할 노동자들이 필요했던 남부인들은 그들의 이기심으로 인해서 예수님의 이웃에 대한 가르침을 잊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흑인들을 짐승처럼 취급한 그들의 행태는 예수님을 따르는 기독교인이 해서는 안 되는 만행이었다. 그러고도 그들은 성경 말씀에 따라 살고 있다고 믿으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독교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으니 참으로 안타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노예제도와 마찬가지로 여성차별은 단지 한국이나 동양의 문제만이 아니라 서양사회에서도 있었던 세계적인 현상이다. 여성차별은 노예제도가 철폐된 것처럼 시급히 없어져야 한다. 노예로 붙들려간 흑인들이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했던 것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자들은 인간으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했다. 흑인이 대통령이 된 미국에서 흑인에 대한 차별의식이 가시지 않은 것처럼, 여성이 대통령이 된 한국에서도 여성에 대한 차별의식이 여전히 남아 있다.

유대사회에서는 여자를 사람의 숫자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여자를 사람의 숫자에 넣지 않았다는 것은 여자를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유대 남자는 자기가 여자가 되지 않은 것을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다. 이러한 여성을 비하하는 생각은 기독교에도 그대로 내려와서 중세교회에서는 여성에게는 영혼이 없다고 믿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은 자녀생산의 수단이었고 성적욕망을 해소하기 위한 대상에 불과했다. 솔로몬이 수천 명의 처첩을 거느리고 있었다는 일, 의자왕에게 삼천 궁녀가 있었다는 사실은 여자들이 인간적인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여자가 남자의 노리갯감이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조선시대에도 궁전에는 수십 명의 궁녀들이 있었고, 왕비는 질투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었다.

인간의 역사는 남성중심의 역사였다. 한국에는 삼종지의라는 것이 있어서 여자는 어려서부터 늙도록 남자를 좇아야 했다. 그리고 여자들에게는 교육을 시키지 않았다. 이러한 일은 서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세기 초의 여류작가 버지니어 울프는 오빠들에게는 대학교육을 시키면서 딸인 자기에게는 학교교육을 전혀 시키지 않은 것을 부당한 일이라고 항변했다. 부부 사이에 아이가 없으면 무조건 여자의 탓이라고 생각했고 남편이 첩을 얻어도 본처는 할 말이 없었다. 이것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삶에서도 한국 사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국에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하는 속담이 있다.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성은 인간됨을 무시당하고 아이를 낳고 집안일을 하고 성적 쾌락을 만족시키는 도구였다.

사회적으로는 여성이 대통령이 되고 호주가 될 수 있지만, 교회에서는 여성들이 여전히 홀대를 받고 있다. 진보적인 교회에서는 진즉부터 여성 장로를 세우고 여성 목사도 나왔지만, 많은 교단에서는 아직도 여성 장로도 여성 목사도 세우지 않는다. 그리고 진보적인 교단에서도 여성 신도들의 숫자에 비해서 여성 장로나 목사는 그 수가 아주 적다. 이렇게 여성을 홀대하는 교단에서는 그 근거를 성경에서 댄다.

그들은 창세기에서 하와는 아담의 갈빗대로 지음을 받은 애당초 열등한 존재라고 말한다. 그리고 하와가 마귀의 꾐에 빠져서 선악과를 따먹었고 남편을 유혹해서 죄를 짓게 한 악한 존재였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여호와가 여자를 저주하여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창 3:16)고 말했다고 창세기의 기사를 인용한다. 신약에 오면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11:9)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고전 14:34)라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여자가 목사나 장로가 되는 것을 반대한다. 가톨릭교회에서도 여성 사제를 세울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내가 교인의 아들 결혼식에 다녀오는 버스 안에서 이웃 교회의 목사와 자리를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방송에 나오는 여성 목사 이야기가 나오고 보수교단에서 여성을 목사로 안수하지 않는 문제를 언급하게 되었다. 그 말을 듣더니 그 목사님은 내 말이 끝나기 바쁘게 그런 일은 성경에서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대로 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당신은 성경에 있는 대로 가르치고 성경에 기록된 것을 진리라고 믿는다는 것이었다. 그 목사임의 어조가 아주 단호했기 때문에, 나는 그 목사님의 확고한 신념을 대하면서 할 말을 잃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는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와서 눈을 흘기는 거냐고 말할 분도 있을 것 같다. 어떻든 참 안타까운 일이다.

선교초기에 여성을 위해서 학교를 세운 교회는 한때 신여성을 키우면서 시대를 앞서 나갔다. 그리고 지금 한국사회에서 여권이 많이 신장되었다. 그 단적인 예를 전에는 ‘고모네 집’이라는 식당이 많았지만, 그 ‘고모네 집’이 모두 ‘이모네 집’으로 바뀌었다는 데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에서 여성을 홀대하는 교회가 그 근거를 성경에서 끌어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인가?

창세기에 기록된 여성의 복종이나 고린도전서에서 말하는 여성차별은 영원한 진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