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의 잔잔한 변화

그렇게도 더럽던 주변 환경이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원하던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방문한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누구나 주변 환경이 매우 지저분한 것을 체험하셨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이곳 환경도 역겨울 정도로 지저분합니다.

이곳에 오자마자 깨끗한 환경을 위하여 수시로 기도하였습니다.

먼지와 악취가 심하여 참을 수 없어서이지요.

전혀 환경미화엔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

참 신기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세르반테스가 조금씩 깨끗해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나의 생각을 어떻게 여길지 모르지만 난 기도의 응답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환경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고

주변 환경을 깨끗이 할 만한 예산도 없었기 때문이지요.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해야 환경에도 관심을 갖게 되지

하루 종일 벌어 하루 먹기도 힘든 형편에

주변 환경에 대하여 신경 쓸 마음의 여유가 없는 분들입니다.

아침에 산후안 거리를 워킹하다가

허허들판을 가로질러 난 국도변에서 큰 쓰레기봉투를 들고

길가에 마구 버려진 휴지와 쓰레기를 열심히 수거하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전에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모습입니다.

그냥 할 사람들이 아니라 의아해서 물어보았지요.

예상대로 바랑가이 캡틴이 시킨 일이었고

일을 한 만큼 수당을 지급 받는 다고!

환경심사를 대비하라고 시에서 바랑가이에 지시한 모양입니다.

타의이든 자의이든 어찌 되었든 전에 없던 일을 하는 게

나로선 신기하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참으로 좋은 일을 한다고 쓰레기 줍는 이들을 격려하니

밝은 표정을 지으며 더 열심히 하는군요.

요즈음 이곳 공무원들이

환경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시 주관으로 깨끗한 환경 가꾸기 캠페인을 벌이고

시청의 환경 평가원들이 각 바랑가이를 방문하며

청결상태를 점검하여 점수를 매기고

돌아오는 4월 시 축제기간에는 시상도 한답니다.

오늘은 13개 바랑가이 중 맨 마지막으로

산후안 바랑가이를 점검하고 평가할 차례입니다.

시청 환경평가원들은 아침 일찍 출발하여

산후안의 빤따르 시초우를 시작으로 여기 저기 시초우를 방문하며

마을 구석구석의 청결상태를 점검합니다.

나는 이곳 시청의 정식공무원은 아니지만

이들의 보건위생 및 의료 행정에 참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습니다.

시에서 나에게 의료분야 컨설턴트(고문)로 위촉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여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시 발전을 위하여 협력할 수 있습니다.

컨설턴트는 이곳에서 의료분야의 최고 권위자에게 수여하는 직분인데

첩첩산중 지방자치제에서 왕 같은 권한을 가진 시장님이

과분하게도 나에게 이런 직분을 주셨습니다.

아마 치료를 받고 큰 효험을 본 대가인 모양입니다.

그리고 또한 시에서 실버 시티즌 증도 발급하여 주어

국내선 항공기, 호텔, 대중교통, 병원 등에서

20%의 할인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각 바랑가이의 환경점검을 하는 마지막 날이라

모든 일을 제처 놓고 옵서버로 참여하였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깨끗하게 변할 수 있단 말인가요.

그동안 그렇게도 더럽게 방치되어 있던 마을길들이

누가 보아도 칭찬할 만큼 깨끗하게 정리되었습니다.

초등학교의 교정은 마치 시골호텔의 정원처럼 예쁘게 변하였습니다.

주변이 깨끗하니 교사나 학생들도 다르게 보이는군요.

통치자의 강력한 리더십과 적절한 재정지원

그리고 교육과 국민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이루어 간다면

더러운 필리핀의 환경도 점차 깨끗하게 변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봅니다.

언덕을 넘고, 출렁다리와 징검다리를 건너고

추수하는 논과 밭을 가로 질러 여기 저기 마을을 다니며

모두들 열심히 환경상태를 점검하였습니다.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지만 현재로선

우리나라 농촌 못지않게 깨끗이 단장되었습니다.

약 10여 년 전 일본을 방문하고

그들의 청결한 주위 한경에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도시의 골목엔 휴지 한 장 버려진 것이 없고

주택가의 조그만 공간은 개인 가정의 정원처럼 깨끗이 단장되어 있었습니다.

음식점에 가니 음식 또한 청결할 뿐만 아니라

여럿이 단체로 식사를 할 경우, 다른 사람이 손 댄 음식을 먹지 않도록

각자 외상을 차려 주어 자기 것만 먹도록 하였습니다.

위생 상태 또한 철저히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게 너무 깨끗하여 얄미울 정도였습니다.

농촌을 방문하니 모든 농가마다 우리네 별장 같았습니다.

논둑엔 향나무나 정원수를 심어서 논이 마치 정원의 한 부분 같았습니다.

농가는 별장처럼 꾸며 놓았고 집집마다 자가용과 트랙터가 있었으며

일터에 나가는 농부가 입고 나가는 일복은

우리네 등산복처럼 편리하고 잘 어울렸습니다.

70이 넘은 노부부가 자가용을 타고 일복을 갖추어 입고

잘 정리된 들판에 일하러 가는 모습은

농부의 모습이 아니라 마치 골프를 치러 가는 모습 같았습니다.

선진국 사람들은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일하는 것도 무언가 달랐습니다.

한 나라의 선진상태를 파악하려면

무엇보다 그 나라의 환경을 먼저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필리핀의 도시와 농촌 환경은 거지소굴과 같은 흉측한 모습이지만

오늘 산후안 바랑가이의 잘 정리된 모습을 보고 희망을 가져봅니다.

그냥 행사치레로 해서는 얼마 못 가겠지요, 의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환경과 자연에 대한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아무리 감시하고 지시하고 격려해도 오래 가지 못할 것입니다.

함께 평가원으로 갔던 책임자 중 한 사람이

자기가 먹던 음식의 빈 봉투를 슬며시 숲속에 버립니다.

먼저 지시하는 입장에 있는 공무원들의 의식이 먼저 바뀌지 않는 한,

깨끗한 환경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나는 아무 권리도 자격도 없지만,

그러나 내가 건의하면 어느 정도 받아들여질 수도 있습니다.

컨설턴트이기 때문이지요.

아무 연고도 없고 외국인은 한 사람도 없는

머나먼 이국땅 오지에 하나님만 믿고 왔더니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과 땅을 위하여 일할 수 있도록

지위와 일터와 숙소까지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를 보며 히브리서 기자의 말씀을 생각하게 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11:1)

믿음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요,

믿음대로 나아갈 때 이루어지는 영적에너지라 생각합니다.

행정적으로는 이들을 지시할 아무런 자격이 없지만

난 그들의 뒤를 따라 다니며 늘 마음속으로 기도합니다.

일 년 내내 백여 종이나 되는 각종 과일나무가 줄줄이 열매 맺는

풍성한 과일 천국 그리고 수백여 종의 꽃들이 연이어 지칠 줄 모르고

사시사철 피어나는 아름다운 자연을 소유한 이 나라 백성들이

하나님이 주신 이 천혜의 자연을 잘 보호하게 되길!

이들은 자연환경만 잘 관리하고 보전해도

남의 나라에 국제가정부나 노동자로 나가 고생하지 않아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는 훌륭한 관광자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잘 가꾸고 활용하지 못하여

마치 거지 소굴처럼 꾸미고 사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세르반테스만 해도 타 지역에서 읍내로 진입하는 산악 도로변의 풍광이

예사롭지 않고, 또한 양질의 온천수가 여기저기에서 많이 흘러나오지만

전혀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지 못하여 방치되고 있습니다.

누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우리는 행복은 우리가 가지지 못한 어떤 것을

얻는 결과로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인식하고

감사하는 데서 온다는 사실을 잊는 경향이 있다.“

We tend to forget that happiness doesn’t come

as a result of getting something we don’t have

but rather of recognizing and appreciating what we do have.

함께 지내는 이곳 공무원들은

하나님이 주신 좋은 환경을 개선시키거나 발전시키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모든 이유를 재정이 없어 할 수 없다고 핑계 대며 가난 타령만 매일 합니다.

그러나 식사는 매일 하루 여섯 끼씩 먹으며

“우리는 가난해! 우리는 가난 해!”

마치 가난이 자랑인 것처럼 누군가 우리를 도와주어야 한다는

식민지적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합니다.

아마 350여 년 간이라는 긴 세월동안 제국주의자들로부터

피식민지 생활을 한 것이 몸에 밴 모양입니다.

이들의 의식이 변하지 않는 한 환경개선이나 가난극복은 어려울 것입니다.

선교사는 직접 환경운동이나 사회운동에 나서기에 앞서

먼저 삶속에서 실천의 본을 보이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들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일이 더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이른 아침마다 한 외국인 늙은이가

빗자루를 들고 혼자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던 모습이

이들에게 다소나마 도전이 된 모양입니다.

2015년 3월 20일 금요일

산후안 방문을 마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