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왁

리메이저스 팀하고는 처음 선교 나가는 날입니다.

월요일 오전 8시, 시청 앞 뜰에서

시청직원 국기게양식 및 조회를 마치고 나니

선교팀들이 내 숙소인 하프웨이 홈으로 모입니다.

먼저 대원들과 마켓에 가서 장을 봅니다.

생닭, 쌀 그리고 아이들 줄 사탕을 푸짐하게 샀습니다.

더 많이 가져가고 싶지만 배낭으로 날라야 하므로

무거워 많이 가져 갈 수가 없네요.

반의 승객이 평소보다 비교적 일찍 많이 모였군요.

이곳에는 버스가 없고 외국에서 폐차 시킨 승합차를

사들여와 그것을 공영버스 대용으로 운행합니다.

그 차를 여기 발음으로 ‘반(van)’이라고 부르지요.

일정한 출발 시간이 없고 사람이 차는 대로 출발합니다.

약 한 시간 정도 기다리니 반이 만차 되고

기사가 막 출발하려 하는데 여자 손님이 한 명 더 와서

라첼 집사가 자리를 양보하고 차 지붕위에 올라탑니다.

오늘은 손님이 많아 지붕위에도 네 명을 더 태웠으니

운전기사가 매우 만족한 표정입니다.

심하게 구부러진 산비탈 식삭 도로를 지날 때 마다 항상 고통입니다.

현기증과 구토증세도 오고 머리가 어질어질합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고 이 곳 사람들도 모두 그런 증세를 느끼지요.

허지만 높이 올라갈 때마다 먼 산들이 서서히 눈 아래로 내려다보이고

구름이 산허리를 감도는 모습이 볼거리를 만들어 장관을 이룹니다.

꼬불꼬불 약 50분간 돌고 돌아 베상파스 고개에서 내립니다.

라첼집사도 위험한 차 지붕위에서 떨어지지 않고 잘 도착하였습니다.

50세가 넘은 분이 손잡이도 제대로 없는 차 지붕위에서

많은 고생을 하였을 겁니다.

각자 짐을 짊어지고 비왁 마을 쪽으로 산행을 시작합니다.

아직 이른 오전이지만 부지런한 한 농부가 벌써

농작물을 메고 내려오다 쉬며 잠시 땀을 식히는군요.

깊은 산속의 자연은 언제보아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초록 잎사귀들 사이로 펼쳐지는 하늘과 흰 구름 그리고

산수화 병풍처럼 널리 겹겹이 퍼져있는 산의 풍경을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잔잔한 심호흡과 함께 마음이 평안해 집니다.

얼마쯤 올라가니 서쪽 해안으로 통과하는 도로가

요리조리 산 계곡을 따라 마치 똬리를 틀다가 막 풀어지는

뱀의 몸처럼 꼬불꼬불 이어져 있습니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어낸 아름다운 풍경이지요.

산페르난도 갈 때 지나는 길입니다.

마닐라 공항을 저 길로 가면, 바기오의 산악 길을 통과하지 않고

평평한 내륙 길로, 쉬지 않고 달려 약 12시간이면 갈 수 있습니다.

도시 사람들은 고층건물을 자랑스러워 하지만

이 곳 산 사람들은 높은 산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바다 사람들은 더 깊은 바다를 향하여 출항계획을 세우지만

산 사람들은 더 높은 산으로 땔감을 구하러 나섭니다.

더운 지역의 사람들은 높은 산악지역의 서늘한 환경을 동경하지요.

약 1000미터 고지 쯤 오르니 갑자기 기후변화가 일어나는군요.

안개구름이 앞을 가렸다 열었다를 반복하고

햇볕 아래서는 몹시 뜨겁고, 그늘 아래 걸을 땐 몸이 오싹합니다.

더웠다 추웠다를 반복하다 어느 덧 마을에 도착합니다.

산언덕 마을 어귀에 많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앉아서

가마솥에서 죽을 퍼 나누어 먹고 있습니다.

오늘이 마침 ‘데이케어’ 졸업식 날이라는군요.

아이들과 함께 앉아 그들이 먹는 죽을 얻어먹어 봅니다.

아무 맛도 없군요. 고기 한처럼도 들어가지 않은 맹맹한 까모떼 죽입니다.

그들과 동지의식을 갖기 위하여 그냥 한 술 얻어먹었습니다.

아무 맛도 없는 죽을 먹다보니,

1960년 대, 우리나라가 총체적으로 궁핍하던 초등학교 시절,

점심을 먹지 못하는 가난한 아이들을 위하여

학교에서 옥수수 죽을 끓여 무상 급식하던 것이 생각나는군요.

그렇게 가난하게 살던 나라의 사람이

국가와 국민 경제가 좋아지고 복음의 선진국이 되어

먼 이곳까지 복음과 섬김의 사도로 오게 되었으니

참으로 우리는 복 받은 나라 복 받은 민족입니다.

높고 깊은 산속에

아직 네 살도 안 된 데이케어 아이들이 바글바글합니다.

풍년입니다. 이곳은 어딜 가든지 아이들 풍년입니다.

이렇게 자라나는 아이들은 성장하면 일자리를 찾아 도시국가로 진출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그 곳에 자리를 잡으며 인구감소의 문제를 해결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수 세대가 지나면 자연스럽게 인구변화도 이루어 질 것입니다.

창조 초기시대에 바벨탑 사건으로 인간이 온 지구로 흩어 졌듯이

오늘날은 살기 위하여 직장을 찾아 세계 각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들지요.

도시를 장악하고 부와 성공의 바벨탑을 쌓던 유능한 이들은

경제난 극복과 행복추구를 이유로 저출산低出産)이나 금산(禁産) 하는 이가 늘어나고

그런 관습이 수세기를 지남에 따라

자연히 도시의 원주민 인구는 감소와 함께 서서히 소멸될 것이고

이런 산속에서 끊임없이 출산되는 어린생명들이

다음 도시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오랜 도시생활에 익숙하다보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차차 도시인들의 생활습성을 따르게 될 것이고

또다시 저개발 국가에서 직업을 찾아 밀려 온 이들에게

도시를 물려주고 그들 또한 수세기에 걸쳐 서서히 소멸되겠지요.

순환의 역사는 이처럼 계속되며 따라서 인구이동도 계속 이어질 것이고

지구촌의 각 민족은 자연스럽게 혼합되고,

모두들 자기가 현재 위치한 장소가 자신의 고향이요

뿌리라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자기민족 자기혈통을 지키기 위하여

‘전통 보존’이라는 이유로 투쟁하는 민족주의자들도 생길 것입니다.

모두가 부질없는 일이지요.

정확한 사실은 창조주 하나님 안에서

모든 피조물은 한 뿌리에서 나 온 한 겨레라는 점이지요.

넓게 바라보면 민족과 전통의 문제로

전혀 자랑하거나 독창성을 말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지요.

넓은 땅과 높은 건물들의 주인이라 으스대던 이들도

세월의 흐름 앞에서 자연의 순리를 거역하지 못하고

서서히 한 줌 흙으로 사라져 버릴 것이고

결국 땅의 주인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하나님이시지요.

그것이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에서 언급한 메시지가 아닐까요?

영겁의 세계에서 볼 때 우리가 잠시 왔다가는 인생은

그저 찰나에 지나지 않는데, 그 짧은 인생을 살면서

왜들 그리 하나님의 땅을 가지고 경쟁을 하며 시끄럽게 사는지요.

사는 동안만이라도 좀 넉넉하게 살다 가겠다. 그 이유겠지요.

하나님은 지구촌에 생명체가 멸종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천지창조 시 모든 생물은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명하셨지요.

오늘날 하나님이 지구촌의 생명 존립을 위해 특별히 택하신

오지의 골자기마다 호박처럼 주렁주렁 많은 아이들에게

관심 갖고 협력하는 일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기여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그렇게 많을 줄 모르고

가져간 네 봉지의 사탕이 겨우 하나씩 만 돌아가는군요.

사탕을 주어도 아이들이 고개를 숙이고 손을 내밀지 못합니다.

도시 빈민가 아이들은 서로 달래다 못해 탈취라도 하려고 달려드는데 비해

이 곳 아이들은 깊은 숲속의 연한 풀잎처럼 수줍어하네요.

자연은 지나친 욕심이나 술수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자연은 정도와 순리와 야성(野性)으로 피조물을 강인하게 양육합니다.

자연에서 자란 이들은 연약한 것 같으면서도 야무집니다.

그들은 수줍어할지언정 두려워하진 않습니다.

1500미터 가파른 고산지대에 가옥이 45가구나 되며

인구는 무려 200여 명이 넘게 사는군요.

고랭지 채소를 경작하여 겨우 살아가는

농민들의 1년 수입은 가구당 약 100만원 미만이랍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보건소에 1년 계약직으로 들어 온 간호사가

매월 50여만 원 봉급을 받는 것에 비하면

농부들의 연간 수입은 비참할 정도로 적습니다.

그러나 이 곳 사람들은 자연의 넉넉한 모습을 닮아 그런지

아니면 주변에 비교의 대상이 되는 큰 부자가 없어 그런지

가난과 궁핍에 찌든 모습은 전혀 보이질 않고 맑고 밝습니다.

현지 전도사가 우리가 가져간 식재료로

열심히 점심을 만드는 동안 나는 환자들을 돌봅니다.

지역마다 환자들의 증세가 조금씩 다릅니다.

이 곳 사람들은 무거운 짐을 지고 산비탈을 많이 오르내려서

허리 아픈 사람들이 많고 좌골신경통 환자가 많습니다.

한의학적 소견에 의하면

이런 증세는 심한 노동에서 오는 외상병인 경우도 있지만,

신장질환과 같은 내상병이 원인인 경우도 많습니다.

노동으로 많은 땀을 흘리는 것에 비해,

식수가 부족하여 수분 섭취량이 부족할 수 있고,

이들이 짠 음식을 주로 먹는 것,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진한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여

매일 많은 양의 커피를 마시고

밤에 잠자기 전에도 꼭 커피를 마시고 자는 습성,

그리고 과도한 성생활 등이 신장에 무리를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신장은 뼈를 주관하기 때문에 신장에 무리가 가면

허리나 무릎 등, 뼈에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되지요.

이런 환자들은 단순히 진통제로 치료하려 들면

더 몸이 망가지거나 독한 진통제를 장기간 복용할 경우

위나 간 대장 등의 장기에 무리가 갈 수 있습니다.

경험과 고서의 가르침에 의하면

이런 만성병은 침과 뜸의 면역요법이 효과가 좋습니다.

침과 뜸은 위에 부담을 주지 않고 오히려 소화가 잘 되도록 도우며

전신 균형요법을 통하여 몸의 각 장기의 혈과 기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여

서서히 무릎 통증이나 허리 통증까지 완화시킵니다.

고등학교시절 유도 선수생활을 하며 다친 무릎으로 인해

지속적인 슬통으로 30여 년 동안 약물치료를 꾸준히 했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하다가 침뜸 요법으로 완전히 치료가 되었습니다.

하여 그 후 내 무릎 상태를 시험해 볼 겸

네팔의 희말라야 높고 험한 산군을 두 번이나 치유사역을 다녀왔지만

여전히 무릎엔 이상이 없습니다.

오래되지 않은 허리나 무릎의 가벼운 통증은

단 한 번의 시술로도 큰 호전효과를 보게 됩니다.

참 놀라운 일이지요. 기도 받고 낫는 것처럼 신통한 일입니다.

처음 치료받을 때는 누구나 머뭇거리지만

한 번 치료를 받고 효과를 체험 한 이들은 지속적으로 받길 원합니다.

각 사람의 증세에 따라 몸에 뜸자리를 잡아주면

전문가가 필요 없이 환자 스스로 집에서 혼자 그 뜸자리에

뜸을 뜨며 자기 건강을 관리할 수 있습니다.

한 번 치료해 주고 가면 다시 만나기 힘든 단기의료서비스에서

기대할 수 없는 지속적 치료방법이지요.

이곳에 다음으로 많은 환자는 비염환자들입니다.

고산지대라 물안개가 자주 끼어 항상 습도가 많고

밤과 낮 그리고 양지와 음지의 기온차가 심하여

감기에 쉽게 걸리게 되고, 당연히 비염환자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비염환자의 근본 원인은 폐기능의 허에서 비롯됩니다.

이런 경우 침과 뜸으로 몸의 상하좌우 앞과 뒤

전체의 밸런스를 맞추어 기혈순행을 원활하게 도와주고

비염의 염증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아시혈 차원에서

혈자리를 추가해 주면 상상외로 좋은 결과가 나타납니다.

매우 습한 고산지역인 바기오 모처에 근무하는

두마이(Dumay) 또한 비염으로 수년간 고생하다가

나의 치료를 받고, 호전상태가 아니라 거의 완벽하게 치료가 되어

그는 신통함에 매로 되어 동양의술 학도가 되었고

스스로 나의 충실한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들 요통, 슬통과 같은 뼈의 통증이나 비염과 같은 증세는,

약을 써도 별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는 약을 사러 갈 형편도 못되고 약도 없습니다.

마침 나의 면역요법이 이들에게 큰 효과를 가져다주니

이도 하나님이 이들을 사랑하시어 이 먼 곳까지

보내시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더 정성껏 돌보게 됩니다.

드디어 저녁 집회시간이 왔군요.

이곳 교인들은 모두가 숙달된 복음전도의 조교들입니다.

배우지 않고도 기타나 드럼을 잘도 쳐 반주를 잘 합니다.

지난 해 실내체육관에서 있었던 시청직원들 크리스마스 행사 때,

나 혼자 독창하는 독솔로지를 준비하면서

시청 직원 중 기타를 잘 치는 친구에게

멜로디를 익히기 위해서 좀 쳐 달라고 했더니,

악보를 보여 주어도 키보드의 멜로디를 누를 줄 모릅니다.

어디가 ‘도레미파시도’인지 알지를 못하는 겁니다.

그래도 그들은 노래가 나오면 기타와 키보드와 드럼으로

신나게 반주를 잘도 하지요, 이 역시 참 신기한 일입니다.

한 번도 학원에 가서 배운 적도 없고, 악보를 볼 줄 몰라도 연주를 잘합니다.

오늘 나와 함께 참여한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습도 없이 그리고 악보도 없이 무작정 왔는데

기타와 드럼을 보자 자기들끼리 하나씩 잡고 신나게 연주를 합니다.

배움을 평생 학교와 학원에만 의존하는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상상이 안가는 일이지요.

이들은 음악도 느낌으로 배우고

어학도 느낌으로 배워 CNN 뉴스도 잘 이해합니다.

돈도 없고, 교사도 없고, 학원도 없으나

배우기를 원하면, 하나님이 직접 가르치시는가봅니다.

이들은 예배를 드리면 보통 두 시간 이상 드립니다.

한 참 찬송을 부르다 간증시간을 갖더니

네 명의 간증자 들이 스스로 나와 약 한 시간 이상 간증을 합니다.

마음이 순수해서 그런지 복음도 잘 받아들이니

말씀 전하기도 매우 쉽고 재미있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일을 하여 피곤할 텐데도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잘도 받아들이고 아멘 아멘 합니다.

나도 덩달아 신이나 준비도 안한 예화가 막 튀어나옵니다.

한국 상황에 익숙한 나는 모든 스텝들에게 빨리 끝낼 것을 주문하지요.

내일 아침 일찍 일터에 나갈 사람들이 걱정이 돼서요.

그러나 간증까지 합하여 세 시간 이상 집회를 하는데도

이들은 모두 아쉬워하는 눈치입니다.

깊은 산속에서만 지내다보니 만남이 그리워 그런가봅니다.

만남이 그리운 사람들에겐 그저 만나 주기만 해도 복음입니다.

손을 잡아주기만 해도 사랑이고 축복입니다.

그저 들어주고 이해해 주고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해 주면,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말로 기도해도 눈물을 흘리며 은혜를 받습니다.

은혜는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나의 기도소리를 듣고 그로인해 이루어지는 게 아니었습니다.

잠자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젊을 때는 잘나가는 운동선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질병으로 몸이 심히 쇠약해 지고부턴 항상 추위가 두렵습니다.

이제 한국의 겨울은 내 체력으로 지켜내기에 너무 힘듭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이런 건강상태를 미리 아시고

사시사철 항상 춥지 않은 곳으로 인도하셨으니

늘 감사하고, 세미하신 배려에 감격하며 지냅니다.

그렇지만 아열대 지역도 산악지역의 밤은 제법 쌀쌀하지요.

밤에 추울까봐 운동복도 가져오고, 스타킹, 슬리핑 백

그리고 겨울 잠바도 하나 가져왔습니다.

가져간 옷을 모두 다 껴입고 슬리핑백으로 들어가

지퍼를 잠그고 그 위에 담요를 하나 더 덮습니다.

그래도 자다보니 춥기는 마찬가집니다.

여러 번의 수술과 30여 년이나 되는 오랜 동안의 약 복용으로 인해

내 몸이 너무 상한 탓도 있고 나이 탓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지금은 병원과 약 대신, 말씀과 기도와 면역요법

그리고 생수와 호흡요법으로 마음과 몸을 다스리니

약에 찌들었던 장기와 세포가 해독되고 생기를 얻어 살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쇠약해진 몸은 추위에 매우 민감합니다.

양철지붕과 양철 벽으로만 이루어진 한 평 정도 되는

조그만 방이라 열전도율이 상당히 빠르군요.

낮에는 작열하게 뜨겁고, 밤에는 한대처럼 찬 기운이 돕니다.

영하로 떨어지는 기온은 아니더라도 난방시설이 없고,

나무로 만든 침대에서 매트리스도 없이

맨 바닥에 담요만 깔고 자니 찬 기운이 몸으로 솟아오릅니다.

나무마루 침대바닥의 구멍에서 찬바람이 세차게 들어와

자다가 머리가 너무 시려 모자를 찾아 씁니다.

그래도 춥긴 마찬가집니다. 꼭 얼어 죽을 것만 같습니다.

아열대 지역에서 얼어 죽었다면 누가 믿어 줄까요.

얼어 죽는 것은 반드시 물이 얼듯이 그렇게 얼어 죽는 것만이 아니지요.

술에 만취한 자가 길바닥에 쓰러져 자다가

갑자기 체온이 떨어지면 저체온 현상에 의해서 사망하는 수도 있습니다.

마찬 가지로 평소에 몸이 약한 내가 너무 추운 곳에서

잠시 깜박하고 잠이 들면 저 체온 현상으로 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나의 혈압은 보통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낮은 저혈압이고

냉한 곳에서 저체온 현상이 빨리 오는 것을 스스로도 느낍니다.

평소에도 나의 몸과 손은 항상 얼음처럼 차지요.

밤새도록 무릎이 시려 한잠도 못자고 양발로 무릎을 비비며

쏟아지는 잠을 물리쳐 봅니다. 잠과의 전쟁입니다.

분주히 달려가는 시계의 초침을 누가 잡을 수 있으리오.

멈춘 것만 같았던 지루하고 적막한 시간이 드디어 침묵을 깹니다.

기쁜 소식의 전령, 닭 우는 소리가 멀리 창밖에서 들립니다.

어둠의 세력들은 물러가고 이제 영광의 호각소리와 함께

동이 곧 튼다는 반가운 소리입니다.

양철 벽 틈사이로 연한 햇빛이 스며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아침에 솟아오르는 태양이 이리도 감사하고 좋은 줄을

오랜만에 다시 체험하게 되는군요.

빛은 흑암의 권세를 단번에 물리칠 가장 훌륭한 지원병이지요.

하여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 빛을 제일 먼저 만드셔서

곳곳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군요.

빛은 곧 빠른 속도로 어두움과 안개를 걷어내어

양철 벽에 맺혔던 이슬방울을 말려 버림과 동시에 추위를 물리치고

밝고 맑은 공기와 함께 새 아침을 엽니다.

“아! 천지창조의 아침이 바로 이런 모습이었겠구나!”

이제 밤새도록 추위와 싸우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빛은 생명이요, 희망이요, 부활이었습니다!

이 어둠의 세상에 빛으로 오신 그 분께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나옵니다.

돌아오는 길.

추위로 밤을 새기가 좀 힘들었지만, 우리 모두는 행복하고 즐거운 표정입니다.

아무도 불평하는 이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모험 끼가 좀 있는 모양입니다.

남들은 멀다고 오기도 싫어하는 지역을 먹을 것을 싸 짊어지고

땀을 흘리며 고생고생 올라왔어도, 그리고 밤에 자다 추워 죽을 뻔 했어도

모두들 또 다시 오고 싶어 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등산가들이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희말라야 정상 정복을 꿈꾸는가 봅니다.

메삭 목사는 어제 밤 광고시간에 나의 허락도 받지 않고

매월 한 번씩 오겠다고 교인들에게 약속도 하였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기쁨은 육체의 불편함을 일시에 잊게 만드는군요.

물질이 낭비되고 시간이 허비되어도 문제가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시간은 가장 기쁘고 즐거운 순간입니다.

예수님의 긍휼과 자비의 손길로 환자들의 환부를 어루만지고

환자들이 생기를 얻는 모습을 볼 때는 가장 행복하고 보람된 순간입니다.

해산의 고통을 겪던 여인이 자기가 낳은 아이를 보자마자

모든 고통을 잊어버리는 기분을 알 것 같습니다.

이른 아침을 먹고 마을을 통과하며

만나는 마을 사람들과 일일이 정겹게 악수를 나눕니다.

모두들 자주 오길 바라는 눈칩니다.

베상파스 언덕까지 한 숨에 걸어 내려와

일행을 데리고 베상파스를 경계하는 군부대 초소도 방문하고

새로 지은 매점 옥상에 데리고 가

태초의 지구처럼 광활하게 펼쳐진 망망 산군을 바라보며

즉석 컵라면도 하나씩 공급하니, 모두가 나이 든 어른들이지만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처럼 좋아하는군요.

한 시간을 기다려도 산을 통과하는 차가 없네요.

더 한참 후 큰 트럭이 거센 엔진소리를 내며 힘겹게 올라옵니다.

맘 좋은 운전수가 차를 세워 주는 바람에

모두들 트럭 짐칸에 타고 읍내에 무사히 도착합니다.

목수인 메삭 목사는 곧 다시 4시간 걸리는 바기오 일터로 향하고

레오날드 전도사와 라첼 집사는 리메이저스 바랑가이 집으로 가고

나는 환자들이 기다리는 보건소로 와서 각자의 일과를 시작합니다.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흐뭇하고 행복합니다.

2015년 3월 18일

비왁마을 치유선교를 다녀와서